판사와 검사 징계에는 ‘파면’이 없다
  • 김경민 기자 (kkim@sisapress.com)
  • 승인 2016.09.09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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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면 해도 해도 너무한 수준이다. 대한민국 법조계 종사자의 도덕적 해이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한 두 사람의 비위 행위 적발로 기관 전체를 싸잡아 말할 순 없겠지만, ‘이 정도면 비위 없이 깨끗한 사람을 찾는 게 더 빠를 것’이란 자조적인 목소리가 법조계 내부에서도 흘러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오죽하면 사법 권력의 수장인 대법원장이 직접 대국민 사과에 나서기까지 했을까. 

 

현재 법조계에 닥친 위기는 한 두 명의 ‘일탈 행위’로 받아들이기에 심각한 수준으로 보인다. 먼저 검사 쪽을 보자. 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에게 금품을 받은 검사장 출신 홍만표 변호사가 6월 구속된 데 이어 금품 수수 혐의로 진경준 전 검사장이 7월 구속됐다. ‘현직 검사장 신분으로서 첫 구속’이란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여의도 저승사자’로 불리던 김형준 검사가 고교동창 스폰서 의혹에 휘말렸다. 

 

판사 비위 사건은 검사에 비하면 수적으론 적지만 충격의 크기는 만만치 않다. 김수천 부장판사가 직무와 관련해 뒷돈을 받은 혐의로 9월2일 구속됐다. 현직 판사가 구속된 것은 지난해 이른바 ‘명동 사채왕’에게 청탁과 함께 금품을 받은 혐의로 긴급체포돼 징역 3년형을 받은 최민호 전 판사 이후 1년 8개월만에 생긴 일이다. 공정한 심판과 수사를 위해 헌법으로 독립성을 보장해줬지만, 외려 그 안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부패의 싹을 틔워온 셈이다. 

 


법치주의 최후의 보루, 사법부가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관련 통계를 들여다 보면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새누리당 홍일표(인천 남구갑) 의원이 법무부와 대법원으로부터 받은 징계현황 자료에 따르면,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 간 각종 비위를 저질러 징계를 받은 검사는 46명, 판사는 10명이다.

 

검사의 경우 2011년 7명, 2012년 2명이었다가 2013년 16명, 2014년 15명으로 급증했다. 지난해에도 6명이 징계를 받았다. 검사의 비위 유형은 금품·향응수수와 품위손상이 11명으로 가장 많았다. 규정위반 7명, 음주운전·사고 6명, 직무태만 5명, 직무상의무 위반 4명, 재산등록 관련 2명 등이 뒤를 이었다.

 

같은 기간 동안 징계를 받은 판사는 2011년 1명, 2012년 4명, 2013년 2명, 2014년 2명, 지난해 1명이다. 5년 간 징계를 받은 판사 중 6명이 부장판사였다. 판사의 징계 사유는 품위유지의무 위반이 8명이었으며 나머지 2명은 직무상의무 위반이었다. 이 품위유지의무를 위반한 판사 가운데 2명은 금품이나 향응을 수수했다가 적발됐다. 

 

그렇다면 이들에 대한 징계 수위는 어땠을까. 최근 5년간 징계를 받은 검사 46명 중 해임된 검사는 3명뿐이었다. 5명은 스스로 사표를 제출해 면직처분을 받았다. 판사의 경우에도 정직 1년이 가장 높은 수위의 징계였다. 현직 판사로 구속된 최민호 전 판사였다. 

 

일련의 사법부 비위 사건을 두고 율사(律士)들의 징계 수위가 너무 약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법을 다루는 이들에 대해 일반인보다 더 높은 수준의 도덕성이 요구돼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다. 현실은 어떨까. 

 

현행 검사징계법상 징계 종류는 해임․면직․정직․감봉․견책 등 5가지뿐이다. 판사의 징계 수위는 더 제한적이다. 판사징계법은 정직․감봉․견책이 3단계로 제한돼 있다. 다시 말해 판․검사는 재임 중 비위를 저질러도 지금까지 누려온 직책의 혜택을 박탈당하거나 재임용에 어려움을 겪을 일이 없다는 것이다. 

 

 


공무원법 등 일반적 징계처분 중 가장 강도 높은 징계처벌은 ‘파면’이다. 파면은 현재의 직책에서 강제로 퇴직시키고 재임용과 퇴직급여의 지급에 있어 강도 높은 제약을 거는 중징계처분이다.

 

판사나 검사 징계법에는 ‘파면’이 없다. 가장 수위가 센 징계인 해임은 절차를 거쳐 직위를 박탈하는 데 그친다. 징계를 받아도 이로 인해 퇴직금이 줄어들거나 퇴직 후 변호사 개업을 하는 데도 제약이 없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현직 판․검사가 징계를 받더라도 ‘지금만 넘기자’는 생각이 횡행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법조계 내부에서도 근본적인 대책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분위기다. 한 검사출신의 변호사는 “내부에서 징계를 받아 전보 조치돼도 ‘잠깐 엎드려 있다 오자’는 식의 안일한 생각이 있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 혹은 고강도의 징계 처분근거가 마련돼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받는 배경이다.

 

고위공직자나 대학교수 등 다른 ‘사회지도층’의 처벌은 어떨까. 국가공무원법상 공무원의 징계는 파면․해임․강등․정직․감봉․견책으로 구분된다. 최고 수위인 파면이 확정되면 5년간 공무원 임용이 제한되고 퇴직금은 절반만 받게 된다. 연금 역시 본인이 낸 만큼만 받을 수 있다. 최근 ‘민중은 개·돼지’라는 막말 파문을 일으킨 나향욱 전 교육부 정책기획관은 결국 파면 조치됐다. 

 

대학에서도 ‘파면’은 극단적인 처벌 수단으로 종종 활용된다. 2011년 제자 폭행으로 이아무개씨가 2014년 제자 성희롱과 개인교습 논란으로 음대 교수 박아무개씨가 서울대 교수직에서 파면 당했으며 지난해 ‘인분교수’ 장아무개씨가 파면되는 등 수차례 파면 결정이 난 바 있다. 교육공무원법에 따르면, 파면 처분된 사람은 임용 및 특별 채용에 제한이 있다. 

 

한편 판․검사에 대한 더욱 강력한 도덕적 잣대가 필요하다는 주장에 동의하면서도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수도권의 한 지방법원 부장판사는 “재판 독립성이 위축되면 그야말로 큰일 날 일”이라며 이번 사태로 재판의 독립성까지 위축될까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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