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용 메뉴는 어떻게 짜면 좋을까요?”
  • 김유진 푸드 칼럼니스트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9.09 10:35
  • 호수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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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법, 외식업 관계자들에게 직격탄···유사 이래 최악의 불경기 견디고 있어

처음 ‘착한 식당’이라는 프로그램에 출연섭외를 받았을 때, 필자는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왜 하필 착한 식당일까? 식당이 착해야 하는 건 당연할진대, 나쁜 식당이 얼마나 많으면 전문가들까지 동원해 착한 식당을 찾는단 말인가. 헛헛한 실소가 배어나왔던 기억이 또렷하다. 그러고 보니 ‘김영란법’도 닮은 점이 많다. 얼마나 부정청탁 및 금품 수수가 만연해 있으면 이런 법안을 만들었겠는가. 지금 당장이라도 각종 포털 사이트에 들어가 보시라. 실소를 금할 수 없는 타이틀로 도배가 된 지 오래다. 

 

‘궁금증 해결, 김영란법 간략 핵심 정리’ ‘그것이 알고 싶다. 김영란법 총 정리’ ‘김영란법 선물, 제주 오메기떡 그리고 귤떡’ ‘김영란법, 국회 선물은?’ ‘김영란법 대응을 위한 민·관 공동 청렴콘서트 개최’. 타이틀만 보자면 《개그콘서트》보다 수위가 높고, 《코미디 빅리그》보다 짜릿하다. 온 국민이 김영란법의 공포에 떠는 사이 외신들은 앞다퉈 이 신기하고도 희한한 법을 뉴스로 다루느라 정신이 없다. 

 

문제는 엉뚱한 곳에서 피해자들이 속출하고 있다는 점이다. 공직사회 기강 확립을 위해 발의한 법안이 엉뚱하게 자영업자들에게까지 불똥이 튀고 있다. 그것도 아주 심각하게 말이다. 대한민국 외식업 시장들은 지금 유사 이래 최악의 불경기를 견디고 있다. 정부가 나서서 경기부양은 못할망정 ‘밥장사’들 다 죽인다고 국회로 청와대로 다들 몰려갈 판이다. 관공서와 학교 주변의 고급 식당들은 벌써 폐업 수순을 밟고 있는 실정이다. 그나마 아등바등 살아보겠다고 아이디어를 내놓고 있는 식당들이 안쓰러워 눈 뜨고는 못 볼 지경이다. 

 

 

© 일러스트 정찬동


상대적으로 저렴한 재료 찾기 위해 혈안

 

계층으로 구분 지을 필요까지는 없지만, 사는 사람과 얻어먹는 사람 사이에는 암묵적 동의가 있기 마련이다. 관계를 돈독하게 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에서 7000원짜리 김치찌개를 주문한다면? 반대로 가볍게 인사 정도 하자는데 1인분에 20만원이나 하는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의 코스를 주문한다면? 서로에게 부담이 되게 마련이다. 그러다 보니 나름 시장가가 형성된 지 오래다. 점심은 2만5000원에서 5만원, 저녁은 5만원에서 15만원. 20년 넘게 외식업 메뉴판만 보고 살아온 사람이니 신뢰해도 좋을 사실이다. 혹시 이보다 훨씬 더한 접대를 쭉 받고 살아왔다면 가슴에 손을 얹고 미안해할 필요가 있다. 그대들 덕분에 이런 해괴망측한 법이 등장했으니 말이다. 서울·대전·광주·여수 등등. 지난주에도 예닐곱이 넘는 외식업 오너들에게 문의 전화를 받았다. 거개의 내용은 이렇다.

 

“코치님~ 김영란법용 메뉴는 어떻게 짜면 좋을까요?” 이게 현실이다. 앞으로는 3만원이 끌려들어가지 않을 마지노선이다. 그런데 사실 현행법을 알고 나면 크게 놀랍지도 않다. 3만원이라는 식사비용은 현행 공무원 행동강령(3만원)을 그대로 적용한 것이다. 이 사실을 모르는 외식업 오너들이 아주 많다. 지금도 법에 저촉된다면 신고할 사람 숱하게 많다고 농을 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인당 객단가를 2만원에서 2만5000원 사이로 맞추고 싶은 건 다치기 싫어서다. 시범케이스가 되면 줄초상이다. 만약 영업정지라도 얻어맞는다면 그대로 끝이다. 더 무서운 것은 피아가 구분이 안 된다는 사실이다. 누가 고발을 하고 당할 것인지 예측을 할 수 없다는 것도 공포의 한 축을 맡고 있다. 그럴 리야 없겠지만 시간제 근무자나 아르바이트가 신고를 할 수도 있는 일이다.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겪어낸 역전의 용사들이 이제는 심리전까지 대비해야 할 판이다. 

 

시행이 되면 분명 한동안은 모두가 움츠러들 것이다. 소득이 있어도 소비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니 어디가 끝인지 알 수도 없다. 김영란법은 외식업 관계자들에게는 직격탄이 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 그래서 대비를 하려 애를 쓰지만 고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한정식 한상차림의 경우, 메뉴의 수를 줄이는 건 모험이나 다름없다. 외식업계에는 이런 말이 있다. ‘첩(=반상기 한 벌에 갖추어진 쟁첩을 세는 단위)을 빼면 객(客)도 빠진다.’ 그러니 양을 줄이거나 상대적으로 저렴한 재료를 찾기 위해 혈안이다.

 

 

최고급 사케와 위스키 대신 소주 팔 계획 

 

늘 그렇듯 첫 번째 타자는 한우다. 그다음은 전복. 방도가 없다 보니 수입산으로 대체하거나 ‘점’이나 ‘미’를 뺀다. 사실 고객을 위한 상차림에 밥과 국, 탕, 찌개, 나물, 장류는 금전적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거개는 희소성이 있는 식재료와 요리가 부담스럽기 마련이다. 그 덕에 발 빠른 오너들은 전국을 누빈다. 한우를 대체하기 위해 사연 있는 국내산 육우들을 찾기도 하고, 이미 가격이 빤하게 노출되어 있는 브랜드 돈육 대신 개별 농장을 노크하기도 한다. 해산물 중에서는 전복이 철퇴를 맞을 수밖에 없다. 급작스레 냉동 전복의 수요가 늘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도매업자들이 귀띔해 준다. 

 

한식도 한식이지만 일식은 거의 무방비 상태다. 최근 ‘란파라치’(김영란법 위반을 적발하는 파파라치) 학원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신고해서 애국자가 되자고 외치는 이 학원들에서는 몰래카메라를 판매하며 온갖 촬영기술을 전수하고 있다. 이들의 주된 먹이가 바로 일식집이다. 고가의 한식당은 거의 방으로 구성되어 있어 노출이 쉽지 않은 데 반해, 일식집은 고유의 ‘다찌’ 문화가 있어 상대적으로 노출이 쉽다. 포상금을 노리는 하이에나들과의 한판 심리전이 예상된다. 30년 가까이 강남에서 일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초로의 오너 셰프는 거의 자포자기 상태다.

 

“죽자고 덤비면 방법 없어요.” 법도, 파파라치도, 그리고 발길을 뚝 끊어버린 단골들도 그에게는 이미 미움의 대상이 되었다. “둘째가 아직 장가를 안 갔어요. 어떻게든 예전처럼 손님들을 부르게 아이디어를 짜봐야죠.” 최고급 사케와 위스키를 팔던 원칙을 깰 참이라고 했다. 대신 일반 소주를 팔 계획이라고 고백했다. 그리고 가게 외벽과 내부에 가격을 적어 붙일 작정이란다. 고가의 일식당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기획이지만 생존을 위해서는 유일한 해결책이란 답도 함께 주었다. 

 

도미노는 혼자만 쓰러지는 법이 없다. 고객이 줄자 도매상들이 울상이 되었다. 고가의 식재료가 소진되지 않으니 재고가 쌓이고, 채산성이 맞지 않는다고 판단하면 한우의 예처럼 아예 양식을 포기하는 생산업자들이 생길 것이다. 이 결과는 부메랑처럼 돌아올 게 뻔하다. 날아갈 때보다 훨씬 더 큰 회전과 파급력을 가지고 말이다. 결국 시장에 돈이 돌지 않으면 그 몫은 국민들에게 돌아올 것이 빤하니 이래저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중식당이라고 크게 다를 바 없다. 메뉴 개편은 물론이고 ‘가성비’ 뛰어난 코스를 짜느라 여념이 없다. 특히 고급 중식당들의 경우 김영란법의 최전방에 노출되어 있어 생존을 위한 노력이 눈물겨울 정도다. 이탈리안과 프렌치 레스토랑도 도긴개긴이다. 위에서 언급한 세 부류의 식당들은 주류에 특히 집중한다. 자칫 술김에 도를 넘어서면 낭패를 볼 수 있어 신경이 날카롭다. 

 

 

한 식당에서 김영란법에 맞춘 ‘영란 세트’를 새로운 메뉴로 선보였다. © 시사저널 최준필

 

 

 

“식재료 원가는 그대로 두고 경비를 줄여야”

 

이런저런 아이디어가 속출하고 있는 가운데, 주목받을 만한 대처법이 있어 한 곳을 소개하고자 한다. 24년간 서울 강남구 삼성동을 지킨 한정식집 ‘대장금’의 이야기다. 그간 수백만 명이 다녀갔다는 명성답게 평일 낮과 저녁, 손님으로 그득하다. 김영란법 이야기를 꺼냈더니 엉뚱하게도 인건비를 꼬집고 나온다. 고객은 절대로 너그럽지 않단다. 어리숙하지도 않고 한번 찍히면 그걸로 끝이기에 함부로 재료에 손을 댔다가는 영원히 잊히는 수가 있단다. 24년간 한자리를 지킨 노하우라 했다. 대안을 물으니 공식을 하나 들이댄다. ‘수익 = 매출 - (식재료 원가 + 경비)’ 

 

결국 이 심난한 상황에서 살아남으려면 식재료 원가는 그대로 두고 경비를 줄여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이 땅의 모든 외식업자에게 적용되는지 알아보기 위해 잠자코 듣기로 했다. 경비 중에서도 인건비를 낮추면 해볼 만하다는 게 김인숙 오너 셰프의 말이다. 일반적인 한정식의 경우 홀 직원이 서빙을 위해 평균 10회 가까이 룸에 드나든다. 이를 반으로만 줄일 수 있으면 식재료 원가에 크게 손대지 않아도 된다는 주장이다. 그래서 코스로 진행하던 서빙 방식을 한상차림으로 바꾸고 그릇과 기물의 높이를 조절해 차별화를 꾀했다. 3~4인이 즐길 수 있는 15첩 한상이 10만원. 묘수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과감하게 회원제 서비스를 도입했다. 일행 중 한 명이라도 연간 회원(3만원)에 가입하면 20% 할인해 준다. 꿩 먹고 알 먹고인 셈이다. 이색적임 상차림과 VIP 할인 서비스에 매료된 고객들이 줄을 잇는다. 최근에는 무섭기로 소문난 필리핀 대통령의 친누이도 이 맛을 즐기기 위해 방문했을 정도다. 김영란법을 딱히 겨냥한 것은 아니었지만 타이밍이 맞아떨어진 백전노장이 슬며시 어드바이스를 한다.

 

“악법도 법이에요. 무슨 재주로 민초들이 이를 거부하겠어요? 그래서 말인데… 고객의 주머니보다 뇌를 훔쳐보면 답이 나온다니까요.” 분명 더 좋아지자고 시작한 일인데, 아파질 사람이 많아진다니 마음 한구석이 먹먹해진다. 결정하기 전에 피해를 받을 자영업자들을 단 한 번이라도 생각했더라면, 이렇게 모두가 어깨를 바닥에 끌고 다니지는 않을 텐데. 글을 쓰는 필자의 마음이 착한 식당 첫 촬영을 떠났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아 아주 많이 찜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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