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의 이유는 성문법과 불문법의 차이?
  • 송창섭 기자 (realsong@sisapress.com)
  • 승인 2016.09.09 17:4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영국은 불문법의 나라, 독일·프랑스 등 대부분 성문법인 유럽 국가와 법 정서 안 맞아

8월30일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거대 IT(정보기술)기업 애플에 거액의 세금을 추징하겠다고 밝힌 후, 미국과 EU 사이 미묘한 파장이 일고 있다. 이날 EU는 애플이 회원국인 아일랜드에서 불법적으로 세금 감면을 받았다며 130억 유로(약16조원)의 추징 의사를 밝혔다.

 

이후 ABC방송을 비롯한 미국 언론들은 “미국 재무부가 이번 조치로 유럽에서의 외국인 투자와 기업 환경, 미국과 EU의 경제 동반자 정신이 약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면서 “경우에 따라 미국 정부가 유럽 기업에 세율을 2배로 올려 보복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현재 미국 세법에는 ‘대통령은 정부가 판단할 때 미국 기업들을 차별하는 국가의 기업이나 시민에 대해 세율을 2배로 올릴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외신에 따르면, 아일랜드의 법인세 공식 세율은 12.5%다. 하지만 아일랜드 정부는 외자 유치 차원에서 애플에게 2003년부터 2014년까지 법인 세율을 1% 가량 적용했다. 이번에 EU가 세금 탈루라며 문제를 삼은 부분은 이 차이다. 세율이 낮은 만큼 애플 입장에서는 주요 특허사용권을 아일랜드 법인에서 소유토록 해 세금 납부액을 줄였다.

 


EU의 애플 제소에 美 정부 맞불 움직임 

 

EU는 회원국의 자치권을 인정하면서도 역내 공통 규약 준수를 의무화하고 있다. 아일랜드 정부가 자치권 침해라고 반발하는 것에 대해 EU가 정당조치라고 맞서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리시 타임즈’ 등 아일랜드 언론은 이번 EU 집행위원회의 조치에 근본적인 의문을 표시한다. 단순히 애플의 절세 꼼수에 집행위원회가 반대 입장을 표시한 것이 아니라, 법률 체계의 차이에서 오는 근본적인 문제를 이유로 꼽은 것이다. 

 

아일랜드 언론이 지목한 것은 성문법(Civil law)과 불문법(Common law)의 차이다. 영국의 ‘브렉시트’ 역시 같은 이유 때문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브렉시트가 결정되기 전인 지난 6월20일자 영국 ‘가디언’은 브렉시트의 원인으로 △유럽 대륙과의 이질감 △섬이라는 지정학적 위치 △반(反)이민 정서 등과 함께 △대륙의 성문법에 대한 반감을 꼽았다. 불문법을 신봉하는 영국인들이 성문법 중심의 EU 제도를 신뢰하지 못한다는 게 기사의 골자다.  

 

알려진 바와 같이 영국은 불문법의 나라다. 불문법은 판례 중심의 법률 체계다. 세세한 조문으로 구성된 성문법과는 차이가 난다. 판례 중심인 영국의 불문법은 이후 미국에 영향을 줘 오늘날 불문법은 영미법이라는 이름으로 통용되고 있다. 반면 영국을 제외한 유럽 대륙은 성문법을 기초로 법률 체계가 만들어졌다. 프랑스·독일·이탈리아 등은 대표적인 성문법 국가다. 성문법을 다른 말로 대륙법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이와 같다. 성문법은 세밀하게 법 조문을 만드는 것이 특징이며, 이러한 성문법은 일본을 거쳐 우리나라 법률 시스템의 근간을 이뤘다. 현재 EU 내에서 불문법을 기초로 두고 있는 나라는 아일랜드와 영국, 몰타뿐이다. 나머지 국가는 모두 성문법을 근간으로 법률 체계가 만들어졌다. 

 

오늘날 EU를 구성하는 기본 법률은 지리적인 위치 때문에 성문법적 요소가 많이 들어갔다. 오늘날 EU법은 1957년 3월25일 로마에서 조인된 로마협약을 근거로 하고 있다. 지금의 EU는 프랑스·네달란드·벨기에·룩셈부르크·독일·이탈리아 등 6개국이 주도한 유럽경제공동체(EEC)에서 출발했다. 이 EEC 산하에 의회·각료이사회·유럽재판소·법률자문위 등이 구성돼 있는 것이다.

 

이번 브렉시트 과정에서 영국 내에 괴소문처럼 번진 것이 “유럽 최고 법률기구인 유럽재판소에 피소된 영국 관련된 재판 중 75%를 영국이 패소했다. 이는 영국의 주권을 심각하게 훼손시키는 일”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밑바탕에는 “불문법으로 대표되는 우수한 영국의 법률 시스템을 EU가 따라오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유럽 통상법 전문가인 한재필 숭실대 교수는 “유럽 대형 로펌이나 유명 법률인들이 영국인들로 구성된 것만 봐도 법률 서비스에 대한 영국인들이 자부심은 특별하다”고 설명했다. 영국 법률 시장에서 “국제법은 ‘방귀’이고 다른 나라 법률은 ‘농담’이며 오로지 우리 영국법 만이 ‘법’이라고 할 수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는 것도 영국인들의 우월 의식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제2차 세계대전 승전국인 영국 입장에서는 패전국인 독일·이탈리아가 참여해 EU의 법률 서비스를 만들었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 본다. 단적인 예로 영국은 국제물품매매계약에 관한 유엔(국제연합)협약인 ‘비엔나협약’에 여전히 가입하지 않고 있다. 1980년에 국제연합(UN) 국제상거래법위원회가 만들어 현재 80개국이 서명한 이 협약은 국제상거래에 관한 가장 잘 만들어진 국제법으로 평가받고 있다. 물론 우리나라 역시 이 협약의 서명국 중 하나다. 하지만 영국은 비엔나협약 구성 시 독일 정부의 입김이 강하게 들어간 것을 이유로 여전히 협약 가입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그렇다면 국제법을 판례 중심의 불문법(영미법)으로 하느냐, 성문법(대륙법)으로 하느냐가 중요한 일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이는 법을 대하는 관점의 차이다. 가령 영미법의 눈으로 보면 국제기구가 처벌하는 중앙집권적 시스템은 바람직하지 않다. 판례 중심의 영미법에서는 계약 당사자가 가장 중요하다. 중재자 역할은 그 다음이다. 반면 대륙법은 당사자 간 의사보다 중간 조정자, 즉 개입자의 역할을 중요시 한다. 지난 몇 년 간 EU와 미국 간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서 ‘투자자-국가분쟁해결’(ISDS) 제도를 놓고 양측이 심각한 이견을 보인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ISDS는 외국에 투자한 기업이 상대방 국가 정책 등으로 이익을 침해당했을 때 해당 국가를 상대로 직접 국제법정에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분쟁해결 제도다. 불문법이 근간을 이루고 있는 미국은 다른 나와의 FTA를 체결할 때 이 조항을 반드시 집어넣는다. 물론 우리와의 FTA에도 이 제도는 들어가 있다. 

 

만약 ISDS 조항이 FTA에 포함되면 외국 기업이 당사국 정부 사전 동의나 법원을 거치지 않고 국제민간중재기구에 중재를 신청할 수 있다. 그동안 EU측은 ISDS 조항이 국가주권을 침해하고 다국적 기업들에 부당한 특혜를 준다며 반대해 왔다. 국제거래법학회장을 맡고 있는 김갑유 변호사는 “최근 EU가 공정거래와 관련한 규제를 신설하는 등 회원국 내 계약법을 통일하려는 것에 대해 영국이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한 것도 성문, 불문법의 차이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소송 등 법률 시스템이 부실하다면 영국이 왜 유럽 최고의 금융시장으로 자리 잡았겠는가. 모든 것을 하나로 만들고 모든 것을 국가가 통제하는 식의 유럽식 접근방식은 복잡해져가는 법률 시장을 모두 아우를 수 없다는 게 영국적 시각”이라고 말했다. 

 

영국이 금융, 미국이 IT산업의 중심지로 변신한 밑바탕에는 판례를 중심으로 법을 해석하는 불문법이 자리하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인간의 자유로운 사고를 법이라는 기준으로 한정하는 지금의 성문법 체제는 창의성을 이끌어 내는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매 회기 때마다 수십 개의 법률 개정안이 쏟아져 나오면서 한편에서는 창조경제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고 외치는 것 자체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법이 사람의 생각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