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우 기자의 IF] ④ 서울대를 만약 사관학교처럼 바꾼다면?
  • 이민우 기자 (mwlee@sisapress.com)
  • 승인 2016.09.12 10:5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4년제 국립 특수대 전환…‘학벌주의 해소’와 ‘순수학문 발전’ 일거양득

공교육이 무너지고 있다는 소리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입시 정글에 던져진 아이들은 살아남기 위해 사교육 시장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부모들은 자식 교육을 위해 자신의 삶을 포기한 채 불철주야 동분서주하고 있습니다. 부모들과 아이들 모두 왜곡된 교육 구조 속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는 모양새입니다. 이들의 행복을 위해선 왜곡된 교육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는 전제는 설득력이 있어 보입니다.

 

아마도 대부분 사람들의 목적은 명문대 진학으로 추측됩니다. 왜 엄마들은 아이들을 명문대에 보내려 할까요. 적어도 대학 졸업장을 갖고 있을 때, 그리고 그 졸업장이 명문대에 가까울수록 안정적인 삶이 가능하다는 점을 체감했기 때문입니다. 비록 ‘명문대를 나와도 취업난에 시달린다’며 시민단체 ‘학벌없는사회’가 해산했다 하더라도 여전히 인과관계를 부인할 수 없는 실정입니다.

 

그렇습니다. 대한민국은 학벌 사회입니다. 그리고 그 정점에는 서울대가 존재합니다. 최상위층으로 올라갈수록 의사결정의 길목마다 서울대 출신으로 가득합니다. 혈연이나 결혼제도를 통해 이루어지는 카르텔이란 사회가 클수록 인과관계가 떨어지지만, 학벌을 중심으로 하면 매년 충원되는 후배들을 통해 기득권을 향유할 수 있습니다. 서울대의 존재는 엘리트지상주의를 공고히 하는 경향에 절대적 영향을 미쳐 왔습니다.

 


다시 고개 드는 서울대 폐지론

 

지난 2014년 지방선거에서 진보 교육감이 대거 당선됐습니다. 교육의 변화를 원하는 학부모들의 의중이 상당수 반영됐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들은 곧바로 국․공립대 통폐합을 주장하며 서울대 폐지론의 불을 지폈습니다. 조희연 서울교육감은 당시 “고교 평준화를 왜곡하는 대학 학벌체제를 대수술할 때가 왔다”며 “프랑스처럼 통합국립대를 만들면 서울대 정원 3500명에 들기 위한 경쟁이 통합국립대 3만5000명 안에 들어가기 위한 경쟁으로 완화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최근에는 전국의 거점 국립대 총장들을 중심으로 연합 국립대 구축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전호환 부산대 총장은 지난 7월22일 거점 국립대 총장협의회에서 “대학교육의 질적 고도화, 지역 국립대학의 경쟁력 향상을 위해 연합대학 체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준식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 또한 같은 권역의 국립대끼리 연합체를 만들어 수업·학점·학위 등을 교류하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우려의 목소리도 존재합니다. 국립대의 하향평준화를 가져와 대학 경쟁력을 떨어뜨릴 것이라는 반론, 제2의 서울대가 등장할 것이라는 반박이 있습니다. 실제로 프랑스의 경우 대학 평준화를 시도했다가 대학들의 국제경쟁력이 떨어진다며 체질 개선에 나서고 있습니다.

 

 

서울대생 4명 중 1명만 ‘학문’에 관심

 

대학은 한 때 ‘진리의 상아탑’에 비유됐습니다. 세속에 물들지 않고 진리만을 탐구하는 곳이라는 의미였습니다. 하지만 더 이상 한국의 대학을 상아탑에 비유하지 않습니다. 더 이상 사회적 담론을 생산하고 사유하고 실천하는 진리탐구의 전당이 아닙니다. 대학 진학률이 80%를 웃도는 현실 속에선 더더욱 그렇습니다.

 

서울대도 이 같은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더 나은 취업을 위해 ‘서울대 간판’이 따려는 이들이 입학하다보니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변화입니다. 서울대생 4명 가운데 1명만 대학원에 진학하겠다는 조사 결과가 있습니다. 서울대 경력개발센터가 올해 4월 발표한 ‘2015학년도 진로의식조사’에 따르면, 졸업 후 진로와 관련해 “취업하겠다”는 응답이 26.1%로 가장 많았습니다. 

 

“대학원에 진학하겠다”는 응답은 25.8%로 더 적었습니다.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과 같은 전문대학원 진학, 석사 학위까지 받은 뒤 취업, 도피성 진학 등의 비율을 빼면 학문 연구에 관심을 보이는 서울대생의 비율은 이보다 더 적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인문 과학, 자연 과학 등 순수 학문을 전공하려는 이들은 점차 줄어들고 있습니다. 대학 간판을 보고 들어온 이들 상당수는 로스쿨 진학이나 전문대학원, 고시 준비 등에 매진합니다. 학부제를 도입했지만 취업과 거리가 먼 비인기학과들은 그 내에서도 성적 하위권 학생들의 전유물로 전락했습니다.

 

 

“서울대를 교수 사관학교처럼 만들자”

 

한 서울대생이 있었습니다. 2002년 사회과학대학 학부에 입학한 뒤 1학년 내내 모든 과목에서 ‘A+’를 따냈습니다. 2학년 전공 선택을 앞두고 원하는 학과 어디든 갈 수 있는 성적이었습니다. 당연히 인기 학과인 경제학과나 외교학과, 정치학과 등을 선택할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이 친구는 비인기학과인 인류학과를 선택했습니다. 인류학 교수가 꿈인 이 학생은 서울대 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마친 뒤 미국에서 유학을 하고 있습니다. ‘아, 저런 친구야말로 진짜 서울대가 필요한 친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학자를 양성하는 특수학교입니다. 사립명문대에서조차 외면 받고 있는 인문․사회․자연 과학의 연구 인력을 집중적으로 키워내는 형태입니다. 서울대를 과학기술 분야의 카이스트처럼 4년제 국립 특수대학교 형태로 전환하자는 것입니다.

 

성공 사례도 많습니다. 과학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카이스트, 문화․예술 인력을 양성하는 한국예술종합학교, 경찰 전문 인력을 경찰대학, 전문 군인들을 키워내는 3군 사관학교 등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4년제 국립 특수대학으로 분류되는 이곳들은 실제로 해당 분야에 관심 있는 유능한 고등학생들이 많이 진학하고, 또 그 분야에서 실력을 인정받는 곳입니다.

 

서울대가 순수 학문을 연구하는 특수학교 형태로 전환될 경우 서울대 출신이 정치․법조․언론 등 각 분야에 진출해 독점하는 학벌 사회가 이어질 수는 없을 것입니다. 또 순수 학문의 붕괴로 인해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는 현재의 교육 구조를 변화시키는 신호탄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일거양득(一擧兩得)인 셈입니다.

 

서울대가 여러 가지 문제점을 갖고 있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학벌 사회의 병폐는 서울대를 무조건 없애거나 국립대를 합친다고 해서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어쩌면 서울대에 가장 어울리는 학생들이 학문의 상아탑을 쌓을 수 있는 진정한 학문의 전당으로 만드는 것이 더 필요한 때일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정부 정책의 방향은 결국 사회 구성원들의 선택을 따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