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상집 교수의 시사유감] 경주 지진이 발생하는 동안 안전은 어디에도 없었다
  • 권상집 동국대 경영학부 교수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9.17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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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지진 사태가 우리에게 준 충격과 공포

9월12일 저녁 8시쯤, 방송 자막으로 경주에서 강도 5.1 지진이 발생했다는 속보가 간략히 보도됐다. 긴급히 지상파에서 진행되고 있는 8시 메인 뉴스를 살펴보니 경주 지진에 대한 보도 없이 박근혜 대통령의 일과에 대한 이야기가 태연하게 전해지고 있었다. 그러나 트위터 및 온라인에서는 이미 그 시간에 경주에서 지진이 발생했다는 이야기와 피해 소식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지상파 뉴스에서는 이 소식을 한동안 전달하지 않았다. 국가적 재난 사태에 이 정도로 지상파 방송사들의 대응이 느릴 수 있다는 건 참으로 무섭고도 놀라운 일이다. 

 

8시30분을 넘어선 후, 강도 5.8을 기록하는 강력한 진동이 경주를 다시 한 번 덮쳤다. 이 진동은 서울 및 경기도에까지 다다를 정도였고 이미 부산·포항·울산·경주는 아수라장이 됐다. 이 와중에도 한 지상파 방송은 재벌 홈쇼핑의 오너 아들인 본부장과 평범한 여성 주인공이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사랑을 지켜나가려는 드라마가 방영되고 있었다. 대한민국의 대표 방송사들이 당시 국민들에게 가장 필요한 지진 사태 속보와 긴급 대피 요령을 전달하지 않고 한동안 늑장 대응을 부렸기에 국민은 또 한 번 불안과 두려움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다. 

 

각종 지상파 및 종편에서 뒤늦게 경주 지진 사태의 중대성을 깨닫고 실시간으로 경주 피해 소식 및 피해 사진을 확보하려고 노력하고 있었지만 이미 경주뿐만 아니라 대구·경북 지역 전체가 통신 마비 상태가 되어 방송에서는 자료화면 확보 없이 앵커들조차 혼란스러운 모습으로 연거푸 동일한 정보를 되풀이하고 있었다. 그 순간에도 필자의 휴대폰에는 쉬지 않고 필자가 동국대에서 가르쳤던 학생들의 실시간 대피 소식과 피해 사진이 문자 메시지를 통해 쏟아지고 있었다. 지진 사태에 놓인 경주 및 인근 지역 시민들에게 전달돼야 할 안전 요령 및 긴급 대피처 등과 관련된 소식은 여전히 방송에서는 감감 무소식이었다. 

 

 

지진 진앙지인 경주에서는 지붕의 기왓장이 파손되는 등 적지 않은 피해가 있었다. [사진=유튜브 캡처]

우리는 이미 2014년 세월호, 2015년 메르스 사태를 통해 국가가 재앙 또는 혼란 상태에 빠졌을 때, 정부의 대처가 얼마나 무기력하게 돌아가는지 수없이 경험해왔다. 세월호 때도 골든 타임을 놓쳐 수많은 학생의 생명을 눈앞에서 놓친 후, 정부는 ‘청와대는 재난 컨트롤타워가 아니다’라는 놀라운 답변을 쏟아내 국민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그 후, 재난 및 국가 위기관리 컨트롤타워라는 미명 아래 새롭게 생겨난 부처인 국민안전처가 지난해 메르스 사태에 어떤 대응을 했는지 우리 모두는 기억하고 있다. 올 여름 폭염으로 인해 가급적 외출을 삼가라는 소식은 국민안전처가 아닌 기상청이 해도 될 사안이다. 그리고 이미 온몸으로 폭염을 느낀 국민들은 그 정도는 알아서 다 요령껏 대응한다. 국민안전처가 실제로 발휘해야 할 기능은 미증유(未曾有)의 사태인 경주 지진 등 국민들이 감당하기 힘든 재난에 신속히 대응해야 하는 것 아닐까. 

 

국민안전처는 5.8의 강진이 경주를 덮친 9월 12일 무려 5시간 가까이 홈페이지가 먹통이었고 지진 예보는커녕 9월 12일 경주를 시작으로 전국적으로 지진을 감지했을 때조차 제대로 된 대피 요령 및 안전 노하우를 그 누구에게도 전달해주지 않았다. 누구나 예측할 수 있는 여름철 폭염에 불볕더위 조심하라는 단순 정보나 제공할 정도의 기능이 국가 위기관리 컨트롤타워라니, 국민안전처 그 이름이 아깝다. 언론 역시 마찬가지다. 지상파 및 종편 등에서는 경주 피해 사진 및 영상 등을 수집하기 위해 제보해달라는 말만 쏟아냈을 뿐 지진이 발생했을 때 각 지역의 대피처는 어디인지, 그리고 지진 상황에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대응 수칙은 무엇인지에 대한 실질적인 정보는 어디서도 들리지 않았다. 이쯤 되면 다들 알아서 살아 돌아오라는 거나 마찬가지다. 

 

필자가 2013년 박근혜 대통령이 언급한 사항 중 가장 맘에 들었던 건, 바로 ‘안전’을 강조했던 부분이었다. 지금까지 정부는 언제나 행정의 효율성만을 강조해왔고 그 결과 안전에 대한 경각심·심각성을 일깨워주는 부처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MB때까지 운용해오던 ‘행정안전부’를 ‘안전행정부’로 새롭게 개편하였다. 행정안전부의 고유 업무인 정부 서무 및 정부 조직관리보다 국가의 재난관리와 안전 총괄 기능이 가장 중요하다는 대통령 자신의 중점 공약사항을 반영하기 위함이었다. 취임일성으로 박근혜 대통령은 안전행정부로 개편한 이유에 대해 여러 가지 이유를 제시했지만 그 중 가장 중요한 이유로 ‘모든 국민이 안심하고 생활할 수 있는 안전한 사회 구현’을 내세웠다. 그리고 과거 재난안전실을 안전관리본부로 확대 개편하는 등 국민 안전을 가장 우선순위에 두겠다고 약속했다. 지금까지 국민 안전을 국가의 우선순위 아젠더로 둔 지도자가 없었기에 안전에 가장 큰 방점을 찍은 대통령의 파격적인 조치에 국민들은 믿음을 갖고 많은 기대와 지지를 대통령에게 보여주었다. 

 

아이러니하게 국민의 안전을 가장 강조한 정부에서 해마다 역사적으로 기록될만한 재난 사태가 연이어 벌어지고 있다. 2년 전 세월호 사고나 지난해 메르스 사태는 대한민국 역사에서도 유사한 사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의 국가적 사고 및 재난 사태였고 이러한 재난 사태를 겪으면서 안전행정부는 스리슬쩍 안전이라는 이름을 다시 지워버리고 과거의 행정자치부라는 이름으로 우리 곁에 나타났다. 국가 재난 및 위기를 총괄한다던 국민안전처는 규모 5.1의 강진이 발생한 9월 12일 7시 44분 후, 재난문자를 무려 8분이나 늦게 보냈다. 그것도 ‘지진이 발생했다’는 내용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으며 발송 대상도 부산·대구·울산·경북 정도만 해당되었을 뿐 진앙지에서 거리가 먼 지역의 국민들에겐 그 어떤 내용도 전달되지 않았다. 아울러, 긴급 재난 문자 어디에도 지진에 대응하는 대피 요령 등과 관련된 내용은 찾아볼 수 없었다. 

 

더욱 놀라운 건, 정부의 공식 입장이다. 경주 지진이 부산·경남과 대구·경북을 집어삼키는 와중에도 청와대가 어떤 대응책을 내놓는지에 대해서는 한동안 감감 무소식이었다. 정부의 공식입장은 1차와 2차 강진이 발생한 지 한참 지난 후인 오후 10시 31분이 돼서야 발표되었고 발표 내용 어디에도 대통령의 지진 발생에 대한 구체적인 대응책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경주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강진이 벌어졌는데도 정부의 알맹이 없는 긴급 브리핑은 2시간 47분이 지나서야 발표됐다. 그야말로 위기와 재난의 골든타임을 지나고도 너무 지난 시간이다. 2시간 47분이면 부산에서 KTX를 타고 출발해 서울에 도착하고도 남을 시간이다. 세월호 사고와 메르스 사태가 골든타임을 놓친 정부의 늑장대응으로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졌다는 걸 이번에도 정부는 잊은 듯 하다. 

 

아쉽게도 우리의 인접 국가인 일본은 규모 5 이상의 지진이 발생하면 전국적으로 10초 안에 경보 문자가 자동 발송되고 일본 방송사는 정규 편성된 모든 방송을 중단하고 곧바로 긴급 지진 속보 방송을 시작한다. 그리고 지진 속보 방송에서 일본은 최우선적으로 사태의 피해보다 지금 당장 어디로 대피해야 하는지, 그리고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등 지진 대응 방안을 먼저 설명하고 지진 피해와 지진 발생 지역에 대한 세부 정보는 그 후에 제공하는 걸 원칙으로 강조하고 있다. 인명을 먼저 중시하는 일본 방송의 모습을 우리나라 방송사나 언론사가 본받아야 한다는 점, 속상하면서도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이 와중에 교실에 안전하게 가만히 앉아 있으라고 강조한 교사나 교수의 행동 역시 할 말을 잃게 만든다. 과연 교육자로서 재난 상황에서 그게 할 도리인지 그들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지진이 발생하면 국내 교실이나 강의실에 있을 경우 책상 밑으로 고개를 숙이고 대피하라는 엉터리 지진 대응 요령이 아직도 우리나라 중·고교 심지어 대학교에 퍼져 있다. 일본 같이 내진설계가 되어 있는 학교에서나 가능한 대피 요령이다. 우리나라는 지진이 발생했을 때 책상 밑으로 몸을 숨기면 건물 붕괴와 함께 재난의 최우선 희생양이 된다는 점을 여전히 학교는 알려주지 않는다. 

 

우리가 이번 경주 지진 사태로 받은 충격과 공포는 단순히 지진 때문만이 아니다. 지진이 발생했을 때 사랑 타령 드라마를 편성한 방송사, 여전히 안전에 대해서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 정부와 국민안전처, 세월호 사고와 동일하게 밖으로 나가지 말고 교실에 안전하게 있으라고 지시한 교사들의 잘못된 지도. 이런 수많은 안전불감증이 아직도 우리 전체 사회를 감싸고 있다. 희생은 있지만 안전은 여전히 존재하지 않는 희한한 사회, 우리가 3년 연속 재난을 겪으며 몸소 체험한 학습의 결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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