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내진설계 건축물 고작 6.8%…공공시설도 위험
  • 조유빈 기자 (you@sisapress.com)
  • 승인 2016.09.20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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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병원도 지진에 취약…내진설계 보강 작업도 더뎌

관측 이래 최강의 지진이 일어난 지 일주일이 9월19일 저녁, 경주에서는 또다시 규모 4.5의 지진이 발생했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여진이라 분석했지만, 일부 전문가는 다른 지질판에서 일어난 지진일 가능성이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추가 여진이 발생할 수도 있고, 여진으로 인한 지진동이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이다. 이제 더 이상 우리나라도 지진의 안전지대라고 볼 수 없게 됐다. 

 

지진 발생 빈도는 증가하고 있지만 우리나라 건물들의 내진 설계는 매우 취약하다. 과거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지진은 발생 횟수가 많지 않은데다 그 규모도 작았다. 이 때문에 설계 단계에서 지진 하중을 고려하는 내진설계 의무 규정은 1988년이 돼서야 도입됐다. 이후 올해까지 네 차례 개정된 내진설계 의무 규정에 따라 현재는 건축 규모(높이 층수 면적)∙용도∙구조∙공법∙ 지진구역 등 9가지 기준으로 내진설계 의무 건축물을 정하고 있다. 3층 이상, 면적 500㎡, 높이 13m 이상인 건물은 의무적으로 내진설계를 해야 한다. 이 내진설계 의무 규정은 2400년에 한 번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규모 6.5의 지진에 건물이 붕괴되지 않도록 견딜 수 있게 한 것이다. 최근 연이어 지진이 발생하자 국토교통부는 내진설계 의무대상을 2층 이상 건축물로 확대한다는 내용을 담은 건축법 시행령 개정안을 9월22일부터 입법예고한다고 밝혔다.  

 

지난 9월12일 경주에서 발생한 규모 5.8의 지진으로 울산시 북구의 한 초등학교 건물 곳곳에 균열이 생겨 20일 오전 교육부에서 파견된 민간 전문가가 안전진단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을 기준으로 전국 건축물 698만6913동 가운데 내진 확보가 된 건축물은 47만5335동으로 6.8%에 불과했다. 규정상 내진설계 대상인 건축물 143만9549동 중 내진 확보가 이뤄진 비율도 33%에 그쳤다. 도시와 건물들이 최근 조성된 세종(50.8%)과 경주 근처인 울산(41%) 경남(40.8%)은 비교적 내진율이 높았지만, 서울(27.2%), 대구(27.2%), 부산(25.8%) 등의 대도시는 내진율이 낮았다.

 

특히 학생들이 많은 시간을 보내는 학교는 내진 설계에 미흡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에 지진이 발생했을 때도 많은 사람들이 학교로 대피했지만, 공공시설물로 대피하는 것은 결코 안전하지 않은 셈이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새누리당 조훈현 의원이 9월20일 교육부에서 제출받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전국 초·중·고등학교에서 내진 설계가 적용돼야 하는 건물은 3만1797개에 이른다. 그러나 실제로 내진 설계가 적용된 건물은 7553개로, 전체의 23.8%밖에 되지 않았다. 76%에 육박하는 2만4244개(76.2%)의 건물에 내진 설계가 적용되지 않은 것이다. 

 

내진설계로 건물을 보강해 지진에 대비하려는 계획은 2009년부터 세워져 있지만 매우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정부가 올해 내진 설계로 보강할 계획인 학교 건물은 134개에 불과하다. 내진 설계가 적용되지 않은 전체 건물 중 0.6%에 해당한다. 조 의원은 “이런 속도로 내진 설계를 보강하면 모든 학교에 적용될 때까지 181년이 걸린다는 계산이 나온다”고 지적했다. 

 


병원도 마찬가지다. 지진 등 국가적인 재난 상황이 발생했을 때 환자들의 생명을 지키고 치료를 책임져야 할 의료시설 역시 안전하지 않다는 얘기다. 더군다나 거동이 불편하거나 병원에 입원해 있는 환자들은 지진이 일어났을 때 대피하기 어렵다. 지진∙화산재해대책법상 의료법에 따른 종합병원·병원 및 요양병원은 내진설계 기준을 정하고 그 이행에 필요한 조치를 취하게 돼 있다. 그러나 교육부가 국정감사 자료로 제출한 ‘전국 국립대학병원 내진보강 대상건물 등 현황’을 보면 2015년 기준 전국 13개 국립대병원 중 내진설계 적용 대상이 아닌 치과병원 3개소를 제외한 10개소 72개 건물 중 33개 건물의 내진설계가 미흡한 것으로 드러났다. 전체 건물의 45.2%가 내진설계 기준에 못 미친 셈이다. 경북대병원의 경우 13개 건물 중 9개, 전남대병원은 11개 건물 중 7개, 부산대병원은 21개 건물 중 10개 건물이 내진설계가 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용자가 많은 대형병원도 일부만 내진설계가 돼 있는 경우가 많았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5년 12월 기준 전체 의료기관(종합병원⋅병원⋅요양병원) 3170곳 중 866곳은 내진설계가 미흡했다. 보강이 필요하다고 판정받은 883곳 중 내진보강을 한 의료기관은 17곳뿐이었다. 가톨릭서울성모병원은 별관, 간호 기숙사, 연결통로 등이 내진설계 기준을 충족하지 않았고 서울대병원의 경우 의생명연구원과 암병원을 제외한 어린이병원과 본관, 장례식장 건물 등에서 내진설계가 되지 않았다. 연세세브란스병원은 11개 중 4개의 건물만이 내진설계 기준을 충족했다.

 

아파트나 학교, 병원 등 우리가 일상적으로 이용하는 건축물의 안전에 대해 우려하는 문의가 전국 지방자치단체와 관리사무소 등에 빗발치고 있다. 서울시 거주자는 ‘서울부동산정보광장’(http://land.seoul.go.kr)에 접속해 건축물대장정보를 확인하고 내진설계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지역은 건축물 준공연도와 당시 내진설계 기준을 직접 비교해보는 것 외에는 내진설계가 됐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그마저도 건축물이 당시 내진설계 기준에 맞춰 준공이 됐는지 확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아파트나 건물의 내진 설계 여부와 더불어 건축물이 견딜 수 있는 지진의 규모 등의 정보를 해당 건축물에 부착해 공개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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