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상집 교수의 시사유감] 부패와의 전쟁, 김영란법 전성시대
  • 권상집 동국대학교 경영학부 교수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9.30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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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법, 부패의 관행화․일상화에 선전포고를 날리다

2016년 9월28일은 매우 의미 깊은 하루로 대한민국 역사의 한 페이지에 소중히 기록될 것이다. 부정부패를 단칼에 도려내기 위해 가깝게는 전국 400만명, 좀 더 넓게는 대한민국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김영란법이 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시행됐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9월27일 국내 주요 한식당․일식집은 그야말로 대만원을 이뤘다고 한다. 아울러 수백만원이 넘는 강의료를 받고 외부 강의에 치중하던 일부 교수들 역시 9월28일 이후 공식적인 외부 일정을 모두 끊었다고 하니 가히 김영란법의 효과를 알만하다.

 

전국 모든 대학들도 김영란법 때문에 한바탕 소동을 겪었다. 학교에서는 교직원들에게 청탁금지법 적용대상자 공무수행 관련 현황 조사 및 서약서 제출을 요청하고 있고, 학생 입장에서는 취업계 제출과 학점 인정 등이 부정청탁의 유형으로 확정되면서 국내 상당수 대학들은 학칙 변경 논의, 학생들의 불만과 항의 등으로 몸살을 앓았다. 불법 로비와 부정부패를 끊기 위해 모든 국민이 치뤄야 할 손실과 잠재적 비용은 한동안 상당할지 모른다. 일부 언론인들은 자신들의 기명 칼럼에서, 그리고 일부 대학 교수 및 전문가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김영란법의 폐해를 지적하며 김영란법으로 인해 경제가 한동안 침체할 것이라는 우려 섞인 입장을 지금도 표명하고 있다. TV에서는 연일 주요 한식당․일식집․고기집이 파리가 날린다는 식당 주인들의 한숨 섞인 이야기를 시청자에게 내보내고 있다.

 

ⓒ 시사저널 최준필

그러나 접대 및 로비를 통해 이뤄낸 경제적 성과는 박근혜 정부에서 강조하는 창의성과 상상력을 기반으로 한 창조적 성과와는 거리가 멀다. 더욱이 그렇게 해서 이뤄낸 부가가치는 지하경제로 숨어들고 또 다른 기업들의 비자금으로 연결될 뿐 실제로 국내 경제를 굳건히 하는 것과는 전혀 상관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적인 예만 살펴보자. 지난해 국내법인 59만1694곳이 낸 접대비는 무려 9조9685억원에 이르렀다. 법인카드 접대비용으로 쓴 금액을 자세히 살펴보면, 유흥업소가 1조1418억원으로 8년 연속 1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그중에서도 룸살롱은 유흥업소 사용 금액의 59%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상 가장 많은 접대비는 우리가 우려하는 한식당․일식집이 아닌 룸살롱 등 유흥비로 소모되고 있다.

 

김영란법의 시행으로 국내 서비스업이 침체기에 접어들거나 성장 곡선이 당분간 하향세를 겪는다는 얘기는 우리나라 국가 경제 수준을 모르고 하는 소리이다. 지난해 대한민국의 국내 총생산은 1558조원이었다. 1558조원의 규모를 자랑하는 국내 경제가 국내법인이 쓴 10조원에 가까운 접대비로 흔들린다면 이미 그 나라의 경제 및 의식 수준은 정상이 아니다. 물론, 기업이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법인카드를 통한 접대비 외에 눈에 보이지 않는 로비, 그리고 청탁인지 부탁인지 모를 애매모호한 사항까지 추가하면 잠재적으로 우리가 부정청탁, 대가성 로비 등을 통해 지불하는 금액은 20조~30조원에 육박한다. 대한민국의 새해 예산이 400조원인데 그중 5% 이상을 우리는 전혀 비생산적인 부분에 지금까지 쏟아 붓고 있었던 것이다. 이로 인해 우리 사회가 눈에 보이지 않는 폐해를 너무 많이 경험해왔다는 점은 누구나 아는 주지의 사실이다.

 

우리나라는 온갖 학연․지연․혈연 등으로 거미줄 같은 복잡한 로비 네트워크가 곳곳에 형성되어 있다. 그리고 로비 네트워크를 통해 형성된 이른바 인맥중독증 환자들은 자신들의 인맥을 강조하면서 항상 누구보다 빨리, 누구보다 쉽게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해왔다. 이런 사례를 수십 년간 지켜보면서 한국 사회는 부지불식간에 능력보다 연줄이 중요하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고 그 이후 모든 사람, 모든 사물, 모든 현상을 화폐적 가치로 저마다 평가하기 시작했다. 유독 국내에서 금수저․은수저 또는 된장녀 등 물질과 연관시켜 상대를 비하하는 표현이 유행하는 건, 능력 이전에 자본의 막강한 파워 그리고 자본을 통해 이뤄지는 은밀한 거래가 너무나 쉽게 형성된다는 점을 모두가 깨달았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김영란법으로 국내 경제가 위축될 것을 우려해 장관들에게 골프를 치라고 독려했고 장관들 역시 ‘골프를 쳐서 경기활성화에 기여하겠다’며 대통령의 경제 살리기 요청에 화답했다고 한다. 해당 메시지의 근본 의미를 모르는 건 아니나 골프를 쳐서 경기가 되살아난다는 추론은 도대체 어디에서 비롯된 건지 모르겠다. 장관이 자신의 사비로 골프를 친다고 하더라도 국내 경제계 주요 인사, 기업가와 만나면 또 다른 논의나 사안이 전개될 수밖에 없고 필연적으로 라운딩 과정을 통해 청탁인지 부탁인지 판단하기 어려운 모호한 요청들이 오고 갈 수밖에 없다. 대다수 기업이 임원 교육에서 골프를 강조하는 것도 국내 주요 공직자와 엘리트들은 골프를 통해 좀 더 쉽게 거래와 청탁을 실현시켜 왔기 때문이다.

 

국제투명성기구의 조사에 의하면, 국내 부패지수는 100점 만점 기준으로 55점을 기록해 168개국 중 37위에 머물고 있다. 아시아만 놓고 보면 싱가포르․일본․홍콩․대만보다 우리는 청렴도에서 현저히 낮은 상태이며 우리보다 위상이 낮은 UAE보다도 청렴도가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중동의 부정부패를 손가락질했으면서도 그들보다 청렴도가 낮다는 점은 심각하게 성찰해야 할 부분이다. 경제규모 면에서 우리보다 낮은 위치에 있지만 청렴도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는 덴마크․핀란드․스웨덴 국민들은 결코 대한민국을 부러워하거나 본받아야 할 롤 모델로 인식하지 않는다. 그들의 도도한 자존감은 경제 성장이나 규모가 아닌 부패에 엄격하고 강직한 국민들의 눈높이에서 우러나온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 시사저널 임준선

김영란법이 부패와의 전쟁을 강력히 선포하며 시행됐기에 한동안 대놓고 진행되던 기업의 로비나 각종 부정청탁은 줄어들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 법이 효과적으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국민들의 눈높이에 맞게 청렴의식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법 조항에 대한 보다 촘촘한 보완이 필요하다. 1990년 노태우 전 대통령이 선포했던 ‘범죄와의 전쟁’과 2004년 성매매방지특별법을 시행하며 김강자 경찰서장이 주도했던 ‘성매매와의 전쟁’도 초기에는 조직폭력 와해, 집창촌 철거 등 대대적인 효과를 거뒀으나, 지속적인 법 조항 및 실행 방안 등에 대한 구체적인 조치와 논의가 부족했기에 이후 범죄 및 불법 성매매를 지하세계로 끌어들이는 부작용을 낳았다. 김영란법 역시 여전히 부정청탁에 대한 포괄적 금지라는 법 취지와 단기간에 완성된 허술한 법 조항이 많은 문제를 낳고 있다는 점을 감안해 정부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부패를 척결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모든 부정부패를 법으로 처벌하면 일정 기간 후에 다시 부정청탁은 고개를 내밀고 더 어두운 경로에서 자본이라는 연결고리로 비리 네트워크를 형성한다. 단순히 결과적 측면인 청탁의 현장을 잡는 것만으로 부패를 완전히 뿌리 뽑을 수는 없다. 청탁이 발생한다는 건, 의사결정 과정에서 누군가의 힘이 다른 이보다 훨씬 강하게 발휘된다는 점을 의미한다. 부패와의 전쟁을 김영란법으로만 처리할 수 없는 이유이다. 의사결정 과정에 대한 개방성․투명성을 유지하고 정부가 먼저 민간 부문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주요 부처의 의사결정을 개인이 아닌 집단의 의사결정으로 전환시키는 등 과정상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부조리를 개선할 때 비로소 부패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부패를 단호하게 척결하려면 국가를 이끄는 리더의 솔선수범이 가장 중요하다. 마크 트웨인은 ‘물고기는 머리부터 부패하기 시작한다’고 경고했다. 지금 우리 사회 현 주소를 가장 정확히 드러낸 명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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