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균제 치약' 회수 배경 '국민 안전보다 위법성 때문'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6.10.04 10:27
  • 호수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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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원료 사용한 적 없다”→“사용했는데 미원상사 원료는 아냐”

국내 치약 시장에서 1위를 달리는 LG생활건강은 자사 제품에 가습기 살균제 성분(CMIT·MIT)이 포함돼 있지 않다고 밝혔다. 페리오와 죽염치약을 제조·판매하는 LG생활건강 관계자는 “소듐라우릴설페이트(계면활성제)를 사용한 적도 없고 사용하지도 않기 때문에 (CMIT·MIT 성분은 없다)”라고 말했다. 시사저널은 LG생활건강이 2010년 미국에 죽염치약 판매를 위해 식품의약국(FDA)에 제출한 자료에 해당 원료가 함유된 사실과 관련 사진까지 미국 국립보건원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했다. 그러자 LG생활건강 관계자는 “CMIT·MIT 성분이 들어 있는 소듐라우릴설페이트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의미였다”며 “우리가 사용한 소듐라우릴설페이트는 미원상사에서 공급받은 게 아니다”라며 말을 바꿨다.

 

그렇다면 어떤 업체로부터 해당 원료를 공급받았을까. 이에 대해 LG생활건강은 “확인 중”이라는 말만 되풀이하며 사실상 공개를 거부했다. 최근 아모레퍼시픽의 11개 치약 제품에서 CMIT·MIT가 검출됐다. 이른바 ‘가습기 살균제 성분’으로 유해 물질이다. 아모레퍼시픽은 치약 제조에 들어가는 소듐라우릴설페이트를 미원상사로부터 공급받아 사용했다. 미원상사는 CMIT·MIT를 2012년까지 SK케미칼로부터 공급받았고, 현재는 다우케미칼에서 공급받고 있다. 미원상사는 CMIT·MIT가 함유된 이 원료를 치약·구강청결제·화장품·샴푸 등의 용도로 국내외 30개 업체에 납품했다. 연간 납품량은 3000톤에 달한다. 만일 LG생활건강도 SK케미칼이나 다우케미칼로부터 해당 원료를 납품받았다면 CMIT·MIT 성분이 들어 있을 개연성이 크다.

 

9월29일 용산의 대형할인마트에서 아모레퍼시픽의 살균제 성분이 들어 있는 치약들을 환불해 주고 있다. © 시사저널 이종현


LG생활건강·아모레퍼시픽 ‘함구’로 일관

 

아모레퍼시픽은 미원상사로부터 받은 원료에 CMIT·MIT가 함유된 사실을 몰랐다고 밝혔다. 그러나 미원상사의 홈페이지에는 그 원료에 CMIT·MIT가 함유된 사실이 공개돼 있다. 또 아모레퍼시픽이 2013년 미국에 해당 치약 제품을 판매하기 위해 미국 FDA에 보낸 자료에도 소듐라우릴설페이트가 표기돼 있다. 이를 확인하려는 기자의 접촉을 아모레퍼시픽은 피했고, 미원상사도 담당자가 없다는 이유로 대응하지 않았다. 아모레퍼시픽 치약 11종의 유해 성분 사실을 처음으로 적발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이정미(정의당) 의원실은 “아모레퍼시픽이 일부 치약 제품을 미국 FDA에 일반의약품으로 등록하기 위해 제출한 자료와 아모레퍼시픽이 의원실에 보내온 제품목록을 통해 CMIT·MIT 성분이 치약에 있는 것을 확인했다”며 “아모레퍼시픽과 미원상사 관계자는 CMIT·MIT가 치약에 사용할 수 없는 금지물질이라는 사실을 몰랐다고 해명했다”고 밝혔다.

 

아모레퍼시픽이 CMIT·MIT가 치약에 사용하지 못하는 ‘금지물질’인지를 몰랐다고 해도 문제다. 치약 제조사가 특성 성분의 사용 금지 여부를 모르고 제품을 만든 것은 과실이기 때문이다. 이덕환 대한화학회 탄소문화원 원장은 “문제는 국내에서 치약용으로 금지된 성분을 넣었다는 점이니만큼 이번 CMIT·MIT 함유 치약 사례는 위해성보다는 위법성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아모레퍼시픽은 외부와의 소통을 단절한 채 9월27일 자사 홈페이지에 심상배 사장 명의의 대국민 사과문만 게재했다. 소비자 14명은 9월28일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과 심상배 사장, 홍창식 미원상사 사장, 손기문 식약처장 등을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식약처는 9월27일 시중에 유통 중인 아모레퍼시픽의 11개 치약 제품(메디안후레쉬포레스트치약 등)을 회수한다고 밝혔다. 또 9월29일 국내 치약 제조업체 68곳에 대해 CMIT·MIT를 사용했는지를 전수조사하기로 했다.

 

 


제품 회수 이유 ‘국민 안전보다 위법성 때문’

 

국민이 우려하는 바는 유해성 여부다. 메디안 등 아모레퍼시픽의 치약 제품은 국민이 한 번쯤은 사용했을 정도로 많이 판매됐다. 식약처는 치약에 포함된 CMIT·MIT 함량이 미량인 데다 양치한 후 입안을 물로 헹궈내는 치약의 특성상 유해성은 없다고 밝혔다. 미국에선 치약 보존제로 CMIT·MIT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고, 유럽연합(EU)은 해당 성분을 최대 15ppm까지 허용하고 있다. 유럽 소비자과학안전위원회(SCCS)는 치약에 해당 물질이 15ppm으로 유럽 기준의 한계치까지 포함됐다 해도 인체에는 안전하다고 2009년 결론을 내린 바 있다. 식약처에 따르면, 이번 국내에서 회수 조치가 내려진 치약 11개 제품에는 CMIT·MIT가 0.0022~0.0044ppm 함유됐다.

 

그러나 이를 닦는 과정에서 아이들은 치약을 입으로 삼킬 수도 있다. 소량이므로 안전하다는 땜질식 처방보다 근본적인 예방대책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주문이다. 임종한 인하대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구강으로 섭취한 이 성분이 혈관을 타고 폐로 들어가 문제를 일으켰다는 연구 보고가 많다”며 “또 치약은 지속적으로 사용하는 제품이니만큼 소위 ‘살균제법’이라도 만들어 해당 물질에 대한 안전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유해하지 않다면서도 해당 치약 제품을 회수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CMIT·MIT는 식약처가 치약에 사용할 수 없도록 금지한 물질이고, 2012년 환경부는 유독물로 지정했기 때문이다. 씻어내는 화장품, 구강세정제, 샴푸 등에는 CMIT·MIT 함유량을 15ppm까지 허용하고 있다. 식약처 관계자는 “현재 미국·유럽 등에서는 치약 보존제로 CMIT·MIT를 보편적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우리는 3종류(벤조산나트륨·파라옥시벤조산메틸·파라옥시벤조산프로필)만 치약 보존제로 허용하고 있다”며 “이번 조치는 아모레퍼시픽이 허가(신고)된 것과는 다르게 CMIT·MIT가 함유된 소듐라우릴설페이트를 공급받아 치약을 제조한 것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유해성은 문제가 없는데 치약 제조사가 금지된 성분을 치약에 넣었기 때문에 제품을 회수한다는 설명이다. 철저하게 금지해야 하는 가습기 살균제는 제대로 관리를 못한 식약처가 오히려 치약은 안전하다면서도 전량 회수하는 아이러니한 일이 벌어진 셈이다. 또 제품 제조사들은 국민이 궁금해하는 점을 설명하기보다는 이번 사태의 불똥이 튀지 않기만을 바라는 분위기다. 소비자 김수호씨(50)는 “이미 사용한 제품은 어쩔 수 없더라도 사용하지 않은 제품을 신속히 회수하고, 유독물로 지정된 CMIT·MIT를 생활용품에 사용하지 못하도록 근본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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