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우 만난 슈틸리케號 위기의 10월이 운명 가른다
  • 서호정 축구 칼럼니스트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10.04 11:20
  • 호수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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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최종예선 앞두고 대표팀 감독 경질설 나온 내막

추석을 앞둔 지난 9월12일 때아닌 울리 슈틸리케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의 경질설이 보도됐다. 출처는 아랍권 뉴스 ‘알 웨다’였다. 대한축구협회가 스위스 출신의 크리스티안 그로스 감독과 접촉했고 10월 열리는 월드컵 최종예선을 앞두고 감독 교체를 할 수 있다는 게 보도 내용이었다. 그로스 감독은 바젤(스위스), 토트넘(잉글랜드), 슈투트가르트(독일), 알 아흘리(사우디아라비아) 등 클럽팀을 성공적으로 이끈 바 있다. 대한축구협회는 사실무근이라며 전면 부인했다. “전혀 고려되지 않은 사안이다. 최종예선이 한창 진행 중인 상황에서 감독 경질은 어불성설”이라고 입장을 밝힌 대한축구협회는 현재 무직 상태인 그로스 감독의 에이전트가 흘린 것 같다고 추측했다.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파장은 있었다. 불과 올해 초만 해도 절대적 지지를 받았던 슈틸리케 감독의 굳건한 입지가 흔들리고 있다는 증거였기 때문이다. 쿠웨이트전 몰수승을 포함해 2차 예선을 8전 전승 27득점 무실점의 완벽한 결과로 마친 슈틸리케호가 흔들린 것은 지난 3월 있었던 태국과의 평가전이다. 석현준이 전반 4분 만에 선제골을 넣었지만 이후 태국의 빠른 축구에 고전하며 1대0 신승(辛勝)을 거뒀다.

 

9월26일 울리 슈틸리케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10월초로 예정된 러시아월드컵 최종예선 카타르, 이란과의 경기에 출전할 선수 명단을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갓틸리케’의 허니문은 끝났다

 

6월 있었던 슈틸리케호의 첫 유럽 원정에서는 현실을 봤다. FIFA 랭킹 6위 스페인과의 맞대결에서 1대6 완패를 당했다. 아시안컵, 동아시안컵, 월드컵 예선에서 승승장구하며 슈틸리케 감독은 ‘갓틸리케’라는 찬사를 받았다. 하지만 아시아를 벗어나 만난 세계 톱클래스와의 격차는 여전했다. 이어진 체코전에서 2대1 승리를 거두며 스페인전 완패의 그림자에서 벗어났지만, 서서히 대표팀의 경쟁력과 슈틸리케 감독의 능력에 대한 의문부호가 커지고 있었다.

 

9월 시작된 2018 러시아월드컵 최종예선 1·2차전에서 슈틸리케 감독은 그 의문부호를 지우는 데 실패했다. 한국의 대진(對陣)은 경쟁팀에 비해 수월했다. 어렵게 최종예선에 올라온 중국·시리아와의 초반 2연전이었다. 하지만 첫 경기부터 진땀을 흘렸다. 중국의 자책골을 시작으로 이청용·구자철이 연속골을 뽑으며 3대0으로 앞서 나갔지만, 후반 중반부터 체력이 급격하게 떨어지며 2골을 허용했다. 승점 3점을 챙기긴 했지만 후반전 슈틸리케 감독의 경기 운영은 큰 질타를 받았다. 시리아와의 두 번째 경기는 더 큰 실망을 안겨줬다. 그라운드 상태가 만족스럽진 못했지만 FIFA 랭킹 114위의 시리아를 전혀 압도하지 못했다. 세트피스 등 상대 밀집수비를 파괴할 수 있는 전략이 없었다. 최근 아시아 축구가 평준화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중국·시리아를 상대로 승점 4점을 딴 것은 2점을 놓쳤다는 뜻과 다를 바 없다.

 

2차 예선까지 압도적인 결과를 낼 때는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았던 문제가 최종예선 초반부터 불거졌다. 변화 없는 단조로운 경기 운영과 전술이다. 중국은 한국전을 대비해 2주 전부터 체력훈련을 실시했고 후반 막판 준비한 대로 몰아쳤다. 그러나 슈틸리케 감독은 그런 중국의 공세에 대응하지 못하고 끌려갔다. 시리아전에서도 상대의 밀집수비를 깨기 위한 대응이 필요했지만 뻔한 패스 플레이만 하다가 무득점으로 경기를 마쳤다.

 

슈틸리케 감독이 2차 예선에서의 성적에 도취해 최종예선을 안이하게 준비한 것도 여러 부문에서 드러났다. 23명의 선수로 엔트리를 구성할 수 있음에도 20명만을 선발한 것이 문제였다. 석현준이 시리아전을 앞두고 합류하기로 했지만, 슈틸리케 감독은 올림픽 직후 이적한 선수의 소속팀 적응을 돕는다는 명분으로 막판에 합류를 취소시켰다. 결국 시리아전 후반에 공격적 변화가 필요한데도 손을 쓸 수 없었다. 슈틸리케 감독의 오판이 스스로를 옭아맨 것이다. 최종예선에 익숙한 대표팀의 주전 선수들이 위기감을 느꼈고 주장 기성용이 중국전 후 슈틸리케 감독과 따로 면담을 가졌지만 특별한 대응책은 나오지 않았다.

 

 

슈틸리케 운명 가를 10월의 2연전

 

슈틸리케 감독의 가장 큰 강점으로 평가받은 조직 관리에도 구멍이 보인다. 우선 코칭스태프의 변화가 너무 심했다. 지난 9개월 사이 슈틸리케호는 수석코치이자 피지컬코치를 맡고 있는 아르무아 코치를 제외하고 모두 이탈과 합류를 반복했다. 신태용 코치는 올림픽대표팀 감독을 맡아 떠나 있었고, 김봉수 골키퍼 코치는 지난해 말 계약 만료로 떠났다. 당초 이운재 골키퍼 코치가 올림픽 후 합류하기로 돼 있었지만 갑자기 취소하고 차상광 축구협회 전임 코치를 데려왔다. 중국전 분석을 맡았던 박건하 코치는 7월 갑자기 K리그 챌린지(2부 리그)의 서울 이랜드 감독으로 부임했다. 신태용 코치가 올림픽을 마치고 복귀했지만 잦은 코치진 구성 변화가 최종예선 준비에 독이 됐다는 지적이다.

 

부임 초기 원활했던 기술위원회와의 관계도 최근에는 잡음이 들려오고 있다. 선수 선발 과정에서 슈틸리케 감독의 독단이 있었고 20인 엔트리 구성이 나온 것도 그런 배경에서였다. 기술위원회도 슈틸리케호 출범 후 이용수 위원장을 돕는 부위원장이 세 차례(김학범·장외룡·강철)나 교체됐다. 모두 국내외 프로팀에서 러브콜이 오자 떠난 경우였다. 대표팀 운영과 월드컵 본선 진출이라는 큰 과제를 안고 있는 기술위원회가 개인 영달을 지나치게 우대하는 바람에 수시로 핵심 인사가 오고 가는 촌극을 겪고 있는 것이다.

 

격랑에 빠진 슈틸리케호는 당장 10월에 큰 고개를 둘이나 넘어야 한다. 10월6일 수원에서 카타르와 맞붙는다. 만일 여기서 카타르에 패할 경우 조 4위로 떨어진다. 11일에는 이란과 원정 경기를 갖는다. 이란의 홈인 테헤란의 아자디 스타디움은 한국이 역대 6번 경기를 해 2무4패를 기록한 무승(無勝)의 땅이다. 구자철은 대표팀 명단 발표를 닷새 앞두고 소속팀 경기 중 발목 부상을 입었다. 토트넘에서 리그 2경기 연속 최우수 선수에 선정된 손흥민의 맹활약이 유일한 위안거리다. 달콤한 허니문이 끝나고 냉엄한 평가의 무대 위에 선 슈틸리케 감독은 과연 불안과 의심의 눈초리를 믿음과 지지로 바꿀 수 있을까. 10월 2연전은 슈틸리케호의 항로는 물론 운명까지 결정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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