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책남녀’와 동네 책방에서 출판계의 희망을 본다
  • 조철 문화 칼럼니스트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10.07 17:14
  • 호수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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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량 세계 꼴찌 국가’ 오명 속 종이책의 미래

‘독서의 계절’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가을이 왔으나, 한국인의 독서 실태는 여전히 심각하다. 국제 여론조사기관 ‘NOP 월드’는 세계 30개국 3만 명을 대상으로 ‘국민 1인 평균 주당 독서 시간’을 조사했는데, 그중 한국이 3시간6분으로 ‘꼴찌’를 했다. 올 초 발표한 문화체육관광부의 ‘2015 국민 독서실태 조사’ 결과도 성인 연간 도서 구입량이 3.7권에 불과했다. 성인 10명 중 3명 이상은 1년에 책을 한 권도 안 읽었다고 했다. 독서를 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는 47.5%가 ‘시간 또는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라고 답했다.

 

 

출판업계의 미래와 책의 미래는 달라

 

출판업계 종사자들은 “이제 출판은 사양산업”이라며 미래가 어둡다고 말한다. 책의 유통 구조뿐 아니라 출판 기술이 발전하면서 ‘1인 출판’이 늘어나는 등 출판 환경 또한 급변하고 있다. 너도나도 종이책을 수집하듯 사던 시대를 이제 더 이상 떠올리지 않기에 대량 출판 욕심을 접은 지 오래다. 다만 좋은 책은 여전히 종이책으로 살아남을 것이고, 디지털 시대라 해도 종이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서점을 찾아갈 것이라는 것을 믿는다. 그래서 전체 독자 수는 줄어도 여전히 존재하는 다양한 독자와 소통하는 ‘다품종 소량 출판’이 새로운 출판 트렌드가 됐다. 책의 미래를 종이책 판매 부수와 연결시켜 말하는 것은 이제 옛말이 돼버린 것이다.

 

미국 하버드대 도서관장으로 일하고 있는 로버트 단턴은 열혈 책 애호가다. 활자로 인쇄된 책의 과거와 현재를 연구했던 그가 《책의 미래》를 펴내며 디지털 환경 속 책의 위상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책은 휙휙 넘겨볼 수 있고, 주석을 달 수 있고, 잠자리에서 읽을 수 있고, 편리하게 선반에 올려놓을 수도 있다”며 종이책이 전자책보다 나은 점 몇 가지를 소개했다.

 

“무엇보다 우리는 책을 느낀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한다 한들 디지털화한 이미지가 원본을 직접 볼 때 느끼는 가슴 벅찬 흥분을 안겨줄 수 있을까? 물리적인 면이 주는 매력은 책을 포기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종이책은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저마다의 존재감을 내뿜는다.

 

최근 큰 출판사를 떠나 한 장르만 파고드는 전문 출판사로 자리를 옮긴 한 편집자는 “책 같지도 않은 것들이 더 이상 인쇄되지 않는 것만 해도 나무들에게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른다. 종이책 관련 종사자의 수가 줄어든 것이 안타깝지만, 어떤 분야건 ‘구조조정’을 한 차례 이상 거쳐야 하는 세상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전자책 출판 또한 종이책 출판과 함께 살길을 모색하는 모양새다. 전자책 출판만으로 먹고살기보다 종이책 출판을 병행함으로써 시너지 효과를 거둘 수 있는 방향을 찾자는 것이다. 이는 수익성만 따져서 종이책 출판을 포기할 수는 결코 없기 때문이다. 이기성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장은 ‘2016 서울국제도서전·디지털북페어코리아’ 개최에 앞서 “요즘은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합쳐진 ‘아나털’ 시대다. 종이책과 전자책은 출력 매체만 다를 뿐 기획·편집은 같다”고 말했다.

 

책의 미래가 여전히 밝다 해도 ‘그야말로 옛날식’ 서점은 이제 찾아보기 힘들다. 종이책 판매량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중소 서점은 문을 닫거나 변신을 꾀해야 했다. 이제 서점에서 커피를 파는 것은 더 이상 신기한 일이 아니고, 서점에서 술과 안주를 파는 것이 새롭지 않다. 두툼한 책 한 권을 읽으며 서점에서 피서를 즐기는 사람들이 생겼고, ‘혼술남녀’들은 퇴근 후 치맥이 아니라 책과 맥주를 즐기기 시작했다. 혼자 책 보던 남녀가 서점에서 만나 밤새 파티를 하고, 낭독을 하고, 소규모 수업을 진행하기도 한다.

 

 

교보문고 영등포점에 마련된 독서문화공간 ‘티움’ © 시사저널 박정훈

교보문고 영등포점에 마련된 독서문화공간 ‘티움’ © 시사저널 박정훈

 

복합문화공간으로 변신한 서점 늘어

 

최근 전국의 동네 책방들을 순례하듯 돌아본 느낌을 《작고 아름다운 동네 책방 이야기》로 펴낸 이충열씨는 “동네에 책방이 있다는 것은 숲 속에 옹달샘이 있는 것과도 같다. 영혼의 양식을 파는 동네 책방이 여기저기 생겨나고 있다. 책만 파는 것이 아니라 저자와의 대화, 강연, 공연, 전시 등을 하는 복합문화공간으로 발전 진화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방송인 노홍철, 가수 요조 등 유명인이 작은 책방을 열었다는 소식과 함께 더 많은 동네 책방이 생겨나고 있다. 언제부턴가 우리 생활로부터 멀어져 있던 책방들이 다시 골목 어귀에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씨는 “그것이 설사 유행으로 끝날지라도 기분 좋은 유행이며 현상임에는 틀림없다. ‘책이 없는 궁전에 사는 것보다 책이 있는 마구간에 사는 것이 낫다’는 서양의 격언처럼 동네마다 노랗게 불을 밝히고 있는 책방을 찾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여행서만 파는 책방, 인문서만 파는 책방, 소설만 파는 책방, 독립출판물만 파는 책방 등 한 가지 분야에 주력한 동네 책방들이 유독 많이 생겨난 것도 새로운 트렌드다. ‘혼밥남녀’ ‘혼술남녀’ 같은 신조어가 말해 주듯 각자도생의 삶을 살아가는 청춘들이 많아진 시대, 그들을 책방의 충성 고객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한 분야에 경쟁력을 갖추는 나름의 생존 전략인 것이다. 종이책 판매가 특정 분야에서는 여전히 강세인 것이 이런 ‘한 장르 동네 책방’ 활성화에 한몫했다. 출판 불황에도 도서정가제와 함께 책값 인상 요인이라며 눈총을 받았던 고급 양장의 종이책이 여전히 나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어린 자녀에게 사주는 책처럼 ‘혼책남녀’가 원하는 책 중에는 ‘다른 책은 몰라도 이 책만큼은 고급스러운 종이에 멋진 편집 디자인을 거친 것’이어야 구입을 망설이지 않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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