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누군가가 사망해야 재조명되는 제복 입은 사람들
  • 김회권 기자 (khg@sisapress.com)
  • 승인 2016.10.10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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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역사의 큰 족적을 남긴 정치인의 장례식처럼 긴 운구행렬이 TV를 통해 방영되고 있었다. 채널 한 군데만 하는 게 아니라 여러 군데서 동시에 생방송으로 보여줬다. 도대체 누구일까 궁금해서 유심히 쳐다보는데 자막에 'Fireman'이라는 자막이 보였다. 소방관이 화재 진압 중 순직했던 것이었다. 미국 지역 사회 문화에 가끔 생소할 때가 있는데, 이건 생소했지만 가슴 한구석에 짠한 울림이 있었다.”

샌프란시스코 로펌에서 일하는 한국인 변호사는 ‘놀랍다’고 말했다. 한국에서는 ‘나와 상관없는 죽음’으로 여겨졌던 소방관의 순직이 그곳에서는 ‘나와 상관있는 죽음’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이 새로웠다고 했다.

 

태풍 ‘차바’가 지나가고 상처가 남은 10월5일의 울산에서는 한 소방관의 영결식이 있었다. 인명 구조활동을 하던 중 순직한 제주 출신 고(故) 강기봉 지방소방교(29)를 기리는 자리가 울산광역시청장(葬)으로 엄수됐다.

 

ⓒ 연합뉴스

강 소방교는 집중호우가 내린 10월5일 “고립된 차 안에 사람이 2명 있다”는 신고를 받은 뒤 동료 2명과 함께 울주군 회야댐 수질개선사업소 앞으로 출동했다. 하지만 갑자기 불어난 강물에 고립됐고 급류에 휩쓸려 실종됐다. 

 

강 소방교의 영결식은 지자체장으로 치러졌지만 그 이전 대부분의 소방관들은 관할 소방서에서 조촐하게 마지막 이별을 해야 했다. 모두의 안녕을 위해 공적인 헌신을 하다 안타깝게 순직한 것은 모두 같지만 그들이 가는 길에 대한 예우는 달랐다. 순직소방관에 대한 장례기준이 마련돼 있지 않은 탓이었다. 이런 점에 대한 비판이 일자 정부는 부랴부랴 들쭉날쭉한 소방관의 장례 기준을 마련하겠다며 나섰다. 

 

지난해 한 언론에서는 ‘존경받는 직업’으로 소방관이 3연속 1위를 했다고 보도했다. ‘한국인의 직업관’ 조사였는데 2014년부터 약 2년에 걸쳐 수도권에 사는 고교생과 대학 재학생, 일반 성인 1240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44개 직업을 대상으로 △국가·사회적 공헌도 △청렴도 △존경도 △준법성 △신뢰성 등 5개 부문에 걸쳐 점수(10점 만점)를 부여하는 방식이다. 

 

소방관에 대한 우리 사회의 존경심은 이들이 보여주는 투철한 직업의식과 헌신적 희생정신에서 비롯된 것일 테다. 하지만 일반인들의 소방관에 대한 평판에 비해 소방관들의 사회적 처우가 그리 좋은 건 아니다. 지방직 공무원으로 2~3교대로 바쁘게 돌아가는 격무에 시달리며 노후한 장비와 낮은 연봉 등 환경도 좋지 않다. 일부 몰지각한 시민들의 하대는 소방관들의 자존감을 끌어내리는 주요 요인들이 돼왔다.

 

“특히 젊은 소방대원들 사이에서 우리 직업(소방관)에 대한 자존감이 많이 내려갔다. 워낙 거친 재난·사고 현장을 다루는 일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이런 헌신의 강도에 어울리는 사회적 대우·보상을 받지 못한다는 의식 때문이다. 출동 현장에 나가면 우리를 무슨 아랫사람 부리듯 대하는 시민들이 있다. 출동한 대원들에게 다짜고짜 쌍욕을 하거나 ‘시체부터 빨리 안 치우고 뭐하냐’며 화를 내시기도 한다. 이럴 땐 우리가 하는 일이 서비스업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 무력감을 느낀다.”

- 20년차 소방대원 이아무개씨

공공의 헌신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존중이 꼭 누군가가 사망해야 재조명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9월26일 밤 한미 연합훈련 중에는 링스 헬기가 동해에서 추락했다. 이 사고로 정조종사 김경민(33) 대위, 부조종사 박유신(33) 대위, 조작사 황성철(29) 중사가 순직했다. 장례식에 다녀온 김혁수 예비역 제독(준장)이 “나라를 지키다 전사와 순직한 군인들에게는 관심이 없다"고 올린 페이스북의 글이 적지 않은 공감을 얻는 이유다. 젊은 소방관과 젊은 군인의 죽음. 헌신과 희생을 요구받는 직업을 가진 이들에 대해 뒤늦은 존중을 불러올 수 있을 지 두고 볼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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