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미국산 쇠고기에서 ‘못·본드·장갑’ 검출 논란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6.10.11 10:11
  • 호수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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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산 쇠고기 및 부산물 불합격 내역’ 등 문서 분석… “한국 정부, 미국 측에 ‘검역 중단’ 등 강력한 조치 안 했다” 지적 나와

2014년 7월 미국 캔자스주(州) 아칸소시(市)에 있는 육가공업체 크릭스톤에서 수출한 405개 상자 분량(1만2944kg)의 냉동 쇠고기가 국내로 들어왔다. 농림축산검역본부 용인사무소는 이 쇠고기를 검역하는 과정에서 이상한 물질을 발견했다. 1개 상자의 쇠고기에서 공업용 접착제가 검출된 것이다. 농림축산검역본부는 이 쇠고기를 소각하고 7월24일 주한 미국대사관 농무관 앞으로 공문을 보냈다. ‘수입 불합격 조치했으니 개선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이 공문은 미국 농무부 식품안전검사국(FSIS)으로 넘겨졌다.

 

정부가 9월4일 주한 미국대사관을 통해 받은 미국 농무부의 답변은 “조사를 해본 결과 상자가 잘 접히지 않아 (상자를 붙이는) 접착제가 (상자 안으로) 흘러들어 갔다. 해당 업체의 포장 담당팀은 봉인 전에 상자가 잘 접히도록 해서 재발을 방지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또 미국 농무부는 11월12일 추가 공문을 우리 정부 측에 보내왔다. 공문에는 “개선을 위해서는 비교적 간단한 조치만 필요하고, (공업용 접착제 검출이) 한 번만 특별하게 발생했으므로 크릭스톤은 재발 방지를 보장하는 서면을 작성하지 않았다”는 내용이 추가됐다. 사과 표현은 없었다.

 

이런 사례는 ‘특별하게 발생한 일’이 아니다. 크릭스톤의 쇠고기는 지난 9년 동안 12차례 우리 정부로부터 불합격 판정을 받아 소각 또는 반송되기를 반복했다. 2009·2012·2013·2014·2015년 등 여러 차례에 걸쳐 검역증에 표기된 것과 다른 쇠고기 부위를 한국으로 수출했다. 또 가공 일자가 실제와 다르거나 표기가 돼 있지 않은 쇠고기를 보내오기도 했다. 2010년 1월에는 ‘작업장 승인(2008년 7월)’ 이전에 생산하고 가공한 쇠고기를 한국으로 보냈다가 ‘수입 위생 조건(한·미 간에 체결한 규정)’ 위반으로 국내 검역 당국에 의해 적발됐다.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판매직원이 미국산 쇠고기를 진열하고 있다. © 시사저널 고성준


9년 동안 495건 불합격 판정

 

이와 같은 일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진 사실이 시사저널 취재 결과 밝혀졌다. 취재진이 입수한 문건(2009~2016년 6월 미국산 쇠고기 및 부산물 불합격 내역)을 보면 미국산 쇠고기는 지난 8년 동안 430건의 검역 불합격 판정을 받았다. 2008년 불합격 판정 65건을 합하면 9년 동안 모두 495건이다.

 

이 가운데 공업용 접착제 외에도 청색 작업용 장갑(2012년 6월 검출), 금속 재질의 못(2012년 6월 검출)이 발견됐다. 금속재질의 못이 검출된 미국산 쇠고기를 수출한 카길 미트 솔루션이라는 업체는 9년 동안 모두 25건의 검역 불합격 판정을 받았다.

 

한국으로 쇠고기를 가공·수출하는 미국 내 작업장은 모두 62곳이다. 이 업체들은 미국 농무부의 검역증을 받아 한국에 쇠고기를 수출한다. 그러나 상당수 작업장에서 다양한 형태의 ‘검역 불합격 쇠고기’를 한국으로 보내왔다. 유통기한 경과, 가공 일자 미표시, 털 발견, 검역증에 기재되지 않은 부위 발견, 변질, 부패, 봉인 탈락, 곰팡이 발견, 외부의 상자 포장 및 내부 진공 포장 훼손, 원산지 이중표기(미국&멕시코) 등으로 한국 검역 당국에 적발됐다. 미국산 쇠고기의 검역 불합격 사례에서 가장 많은 것은 ‘검역증에 기재되지 않은 부위 발견’이다. 미국 농무부가 작성한 검역증에 기재된 쇠고기 부위와 실제 수출한 부위가 다른 것이 적발된 경우로 모두 179건에 이른다. ‘현물과 검역증 상이’ 36건과 합하면 전체의 43.4%에 달한다.

 

 

불합격 495건 중 ‘수출 작업 중단’ 조치 2건뿐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국제통상위원장 송기호 변호사는 “검역증에 기재되지 않은 부위가 발견된 사례는 215건이나 집계됐다. 검역증에 없는 부위가 발견된 것은 미국의 쇠고기 수출 검역 자체의 중대한 결함”이라며 “그러나 한국 정부는 이에 대해 별도의 개선 조치를 요구하지 않았고 검역증에 기재되지 않은 부위가 구체적으로 어떤 부위인지 공개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미 양국이 체결해 2013년 시행된 ‘미국산 쇠고기 및 쇠고기 제품 수입위생조건(이하 수입위생조건)’에 따르면 미국 수출 작업장에서 식품안전 위해(危害) 사례가 두 차례만 발견돼도 해당 작업장이 개선 조치를 할 때까지 검역을 중단할 수 있다. 미국의 작업장이 위해 사례를 개선했다는 입증 자료를 미국 정부를 통해 한국 정부에 보내고, 이를 한국 정부가 확인한 후에 수출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불합격 판정을 받은 미국산 쇠고기를 소각 또는 반송했으나 미국 정부나 해당 작업장에 강력한 항의를 하지는 않았다. 시사저널이 입수한 문건(중대한 불합격 작업장 조치 내역 2009~2015)을 보면, 2011년까지는 아무런 조치 내역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미국 작업장에 대한 조치는 2012년 육류검사지침이 마련된 후 시작됐다’는 게 우리 정부의 해명이다.

 

청색 작업용 장갑, 금속 재질 물질(못), 공업용 접착제 등이 검출돼 한국 검역 당국으로부터 불합격 판정을 받은 미국산 쇠고기 내역 문건. © 시사저널 이종현


2012년부터 최근까지 5년 동안에도 미국 농무부에 미국산 쇠고기 불합격 개선을 요구한 사례는 6건에 불과하다. ‘수출 작업 중단’을 통보한 건수는 2건뿐이다. 스위프트 비프 컴퍼니가 2012년 8월7일 한국으로 수출한 쇠고기 984개 상자(2만2678kg) 전량에서 변색과 부패 냄새가 검출됐을 때와 카길 미트 솔루션이 2014년 8월7일 한국으로 수출한 669개 상자(1만8270kg) 분량의 쇠고기에서도 변색과 이상한 냄새가 확인됐을 때다. 스위프트 비프 컴퍼니에 대한 수출 작업 중단은 그해 8월31일, 카길 미트 솔루션은 그해 9월17일 각각 해제됐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한국 정부는 ‘수출 작업 중단’을 2개월도 안 되는 기간에 해제했고, 이에 대한 자료는 공개된 바 없다. 심지어 미국의 일부 작업장은 수출 작업 중단 기간에도 국내로 쇠고기를 수출한 사례가 4차례나 발견됐다. 모두 ‘수입 위생 조건’ 위반이다. 

 

불합격 비중이 일부 작업장에 몰려 있는 현상도 특징이다. 스위프트 비프 컴퍼니(콜로라도)는 50건의 불합격 판정을 받았고 타이슨 프레시 미트는 37건, 스위프트 비프 컴퍼니(텍사스)는 35건, 스위프트 비프 컴퍼니(네브래스카)는 34건 등이다. 이들 4개 작업장의 불합격 판정은 전체의 31.5%를 차지했다. 송기호 변호사는 “스위프트 비프는 2008년 수출중단 조치를 받고도 ‘검역증 기재 내용 상이’ 28회, ‘유통기한 경과’ 2회, ‘청색 작업용 장갑 검출’ 1회 등의 불합격 판정을 받았지만 한국 정부는 추가 검역 중단 조치를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일부 상습 작업장엔 치밀한 검역 잣대 필요”

 

우리 정부는 9년 동안 495건의 미국산 쇠고기 검역 불합격 판정을 내리고도 미국 측에 ‘개선 요청’과 ‘수출 작업 중단’과 같은 강도 있는 조치를 한 것은 8건에 불과하다. 나머지에 대해서는 ‘소각’ 또는 ‘반송’ 후 검역 불합격 판정 결과를 미국에 통보하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송기호 변호사는 “이물질(금속 재질 못, 작업용 장갑, 공업용 접착제)이 미국산 쇠고기에 들어 있고 변질된 식품이 수입됐는데도 농림부는 검역 중단 조치를 하지 않고 미국 측에 시정 요청만 했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량이 늘어나는 현실에서 국민 안전을 위해 정부가 강력하고 효과적인 조처를 해야 한다. 또 이른바 ‘검역 불합격 쇠고기’를 상습적으로 수출하는 일부 미국 작업장에 대해서는 더 치밀한 검역의 잣대를 들이대야 한다”고 주장했다.

 

올해 한국은 미국산 쇠고기를 세계에서 3번째로 많이 수입하는 나라가 됐다. 미국 육류수출입협회(USMEF)에 따르면, 1~5월 기준 미국 쇠고기는 44만여톤이 수출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 증가한 규모다. 특히 한국과 일본·멕시코가 미국산 쇠고기를 많이 수입했다. 미국산 쇠고기가 가장 많이 수출된 나라는 일본으로 9만6000여톤을 기록했다. 멕시코는 9만1000여톤을 수입했고, 한국으로는 6만1000여톤의 미국산 쇠고기가 수출됐다. 이어 캐나다가 4만5000여톤, 중국(홍콩) 4만4000여톤, 중동 4만2000여톤 등으로 집계됐다.

 

특히 미국산 쇠고기의 대(對)한국 수출 증가율이 가장 가파르다. 대한국 수출증가율은 전년 동기 대비 25.7%로 조사됐다. 일본(8.5%)이나 멕시코(1.3%)를 크게 앞섰다. 캐나다(-7.2%)나 중국(-9.6%)은 오히려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줄였다. 실제로 올 8월 한 달 미국산 쇠고기 수입량이 처음으로 호주산을 추월했다. 올해 누적 수입량은 아직 호주산이 1위다. 8월 현재 국내 수입 쇠고기 시장에서 호주산은 51.3%로 1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그 뒤를 미국산이 40.3%로 바짝 추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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