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Insight] 서울에서 ‘김대’ 출신 탈북자 동문회 열린다
  • 이영종 중앙일보 통일전문기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10.13 10:52
  • 호수 140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창립 70주년 맞은 북한 엘리트 산실 김일성종합대학

몇 해 전 방북 취재길에 김일성대학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북한 최고의 엘리트 산실(産室)로 알려진 곳이라 도서관과 강의실 등 캠퍼스를 꼼꼼히 돌아봤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건 재학생이나 졸업생뿐 아니라 일반 주민들도 이 대학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는 점이었다. 김일성대 출신인 북한 안내원은 기자가 ‘김일성대’라고 지칭하는 걸 못마땅해했다. 그는 “김일성종합대라 불러주십시오”라고 정색을 했다. 북한 최초의 종합대학인 데다 자신들이 수령으로 떠받드는 국가주석 김일성의 이름이 들어가 있다는 걸 누누이 강조했다. 하지만 김일성대 출신 탈북 인사들에 따르면 내부적으로는 김일성종합대라는 풀 네임보다 ‘김대(金大)’라고 줄여 부르는 경우가 더 많다고 한다.

 

김일성대는 해방 이듬해인 1946년 10월1일 설립됐다. ‘김일성 주석의 혁명사상과 근대 과학이론을 체득한 민족간부의 양성’을 설립 목적으로 한다는 게 북한 측 설명이다. 재학생 1만2000명에 졸업생은 8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이들이 오늘날 북한의 노동당과 김정은 체제를 이끄는 기관차 역할을 하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김일성대에 자녀를 진학시키려 내로라하는 부모들이 권력과 뇌물을 동원하고 치맛바람까지 일으키고 있는 것도 출세를 보장해주는 대학이란 점에서다.

 

김일성종합대학 창립 70주년 기념 중앙보고대회가 9월30일 4·25문화회관에서 열렸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 조선중앙통신 연합

 

북한 최초의 종합대학…‘김대’라 줄여서 불러

 

김일성대에서는 10월1일 창립 70주년을 맞아 기념행사가 열렸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도 축하서한을 보내는 등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는 게 북한 관영매체의 전언이다. 눈길을 끈 건 김정은이 대학의 국제화와 대외 학문교류를 강조한 대목이다. 그는 교직원·학생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국제학술토론회들을 정기적으로 조직 진행하며 다른 나라의 권위 있는 대학·연구기관들과의 공동연구를 확대 강화하라”고 말했다. 그는 “외국인 유학생들을 많이 받아 조선어(한국어) 교육뿐 아니라 여러 전공학과들에서 본과생 및 박사원생·실습생 교육을 하라”는 지시도 내렸다. 그는 또 “박사원생들을 위주로 다른 나라들에 유학을 보내는 사업도 진행하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사정의 여의치 않다는 점을 누구보다 김정은 자신이 잘 알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9월 영국 주재 북한 대사관 소속 태영호 공사가 망명하자 김정은은 가장 먼저 해외 공관원과 주재원의 자녀를 귀국시키라는 특별명령을 내렸다. 해외 유학 중이던 학생들이 갑자기 평양으로 소환당해 검열을 받거나 사상교육에 돌입해야 했다.

 

국제교류도 마찬가지다. 인터넷 사용이 차단된 김일성대 캠퍼스에서 학문의 국제화, 해외 기관과의 공동연구·토론을 기대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교과과정 중 김일성 주체사상이나 혁명전통·당 정책·김정일 문헌 등 체제옹호나 김씨 일가 찬양·우상화 관련 과목이 전체의 40%에 달한다고 하니 국제 추세를 따라가기엔 역부족으로 보인다.

 

최고 엘리트라는 김일성대 학생들에게조차 외부세계는 철저히 차단된다. 2013년 10월 평양을 방문한 차히아긴 엘베그도르지 몽골 대통령은 김일성대에서 연설할 수 있기를 희망했고, 북한 당국은 이를 이례적으로 허용했다. 1990년 몽골 공산독재를 종식시킨 민주화 세력 가운데 한 명인 엘베그도르지 대통령은 인권과 법치주의를 강조했다. 그는 “인민은 자유로운 삶을 열망하며 이는 영원한 힘”이라며 “어떤 폭정도 영원히 지속할 수 없다”고 말했다. 북한 체제를 겨냥한 듯한 발언에 북한 당국은 당혹해했고 몽골 대통령궁이 인터넷에 올리기 전까지 비공개에 부쳐졌다.

 

김일성대 출신 엘리트 세력이 최근 들어 북한체제 균열의 선두에 서는 양상을 보이는 것도 관심거리다. 해외 공관에서 외교관으로 활동하거나 대표부·무역기관 등에서 외화벌이나 경협·교류의 핵심 역할을 하던 인물들의 이탈이란 점에서 북한 당국의 당혹감은 더 클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서울에는 김일성대 출신 탈북인사들로 구성된 동문회까지 생겼다. 회원이 30명에 이른다고 하니 만만치 않은 숫자다. 이 조직을 이끌고 있는 김광진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박사는 “평양에도 없는 세계 유일의 김일성대 동문회가 서울에 있는 셈”이라고 말한다. 북한에선 동문이나 동기·동향 모임이 모두 종파주의나 파벌로 간주돼 금지되기 때문이란 얘기다.

 

김일성종합대학 창립 70주년을 기념해 10월1일 북한 간부들이 교육과학전시관을 참관했다. © 조선중앙통신 연합

 

김대 출신 엘리트, 북한체제 균열 선두

 

북한은 김정은의 아버지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김대 출신임을 강조해 왔다. 청년 시절 소련·동구 국가로부터 유학을 수차례 권유받았지만 거절했다는 스토리는 혁명일화로까지 만들어져 주민들 우상화 학습용으로 전해진다. 김정일이 “아버님(김일성을 지칭)의 존함을 모신 우리 대학에서 공부할 것”이라며 정치경제학부를 마쳤다는 얘기다. 하지만 김정일도 자식들에게는 김일성대를 권하지 않았다. 김정은을 포함한 세 아들과 딸 김여정(당 선전선동부 부부장)을 모두 스위스에서 조기유학 시킨 것이다. ‘우물 안 개구리식’ 교육이 가져올 재앙을 누구보다 잘 알았을 김정일에게 자녀들을 김일성대에서 교육시킨다는 건 끔찍한 일이었을 수 있다.

 

2011년 12월 김정일 사망 이후 김정은이 집권하면서 변화 가능성에 관심이 쏠린 것도 해외유학파 지도자란 점에서였다. 무엇보다 개혁·개방을 통해 국제사회의 흐름에 동참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였다. 집권 초기 그가 모란봉악단 공연 무대에 미키마우스와 백설공주 캐릭터를 등장시키고, 여가수들이 북한 수준에서 볼 때 파격적인 노출을 드러낸 옷차림으로 노래하는 걸 두고 “김정은이 차원이 다른 통치행보를 보일 것”이란 말도 나왔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김정은은 선대 수령이라 할 김일성·김정일보다 더 폭압적 모습을 드러냈다. 고위 간부들에 대한 공개처형은 엘리트 세력마저 불만세력으로 만들고 체제를 등지게 만들었다. 올 들어 잇단 핵실험과 미사일 도발로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를 자초하면서 해외 공관원과 주재원, 외화벌이 일꾼들은 직격탄을 맞았다. 외부세계의 대북인식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엘리트층이 탈북·망명길에 오르는 것도 무리는 아니란 얘기다. 해외에서 자유로움을 만끽하며 학업 등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자녀들을 다시 평양으로 돌려보내는 건 끔찍한 일로 여겨질 수 있다. 자신들이 경험한 김일성대의 커리큘럼을 자식들에게 대물림하지 않겠다는 생각도 작용하고 있다는 게 탈북인사들의 귀띔이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