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새누리당 짜고 치는 고스톱인가
  • 남상훈 세계일보 기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10.17 18:23
  • 호수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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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석 원내대표 ‘개헌론’ 주장에 다양한 관측 나와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10월7일 “제왕적 대통령제는 한계가 왔다”며 ‘독일식 내각제’ 개헌 카드를 돌연 꺼냈다. 그러자 정치권이 ‘여당발(發) 개헌’ 파도에 휩싸이고 있다. 권력구조 개편을 포함한 개헌론은 내년 대통령선거와 맞물린 민감한 이슈다. 그렇다 보니 여야는 물론 청와대까지 예의주시하는 모양새다.

 

정 원내대표는 그동안 개헌 논의에 부정적 입장이었다. 정부의 국정운영 동력 상실을 우려해서다. 그런 정 원내대표가 개헌론을 들고나오자 그 배경과 의도에 정치권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정 원내대표의 개헌 행보에 대한 정치권의 해석은 다양하다.

 

야당은 개헌론을 통해 악재를 덮으려는 의도로 본다. 청와대의 미르·K스포츠 재단 설립 개입 의혹, 박근혜 대통령 최측근인 최순실씨의 미르·K스포츠 재단 설립 배후설,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의 각종 의혹으로 최근 코너에 몰린 ‘청와대 구하기’라는 지적이다.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는 여당발 개헌론에 대해 “왜 지금 이 판국에 뜬금없이 개헌논의인지 우리는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자꾸 정국의 초점을 흐려서 미르·K스포츠 재단 의혹과 관련한 최순실씨와 청와대 우병우 민정수석 의혹에 대한 초점을 흐리려는 공작정치”라고 비판했다.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10월10일 국회 원내대표실에서 개헌 등 현안 관련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 뉴스1


 

“청와대의 개헌 공론화 밑자락 깔아주기” 

 

위기에 처한 청와대가 개헌을 통해 국면을 전환하려 한다는 시각이 적지 않다. 국정 동력이 약화된 박 대통령이 선제적으로 개헌 카드를 꺼내 국정 주도권을 되찾으려 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다. 헌법학자로 행정자치부 장관을 지낸 정종섭 새누리당 의원이 개헌론을 지속적으로 제기하는 것도 이를 대비한 사전정지 작업으로 해석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여당은 개헌론을 띄우고 청와대는 반대하는 모습이 연출되고 있지만 속내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면서 “청와대가 개헌 공론화로 입장을 급선회해 여당에 불리한 국면을 전환할 수 있도록 여당이 밑자락을 깔아주려는 의도가 엿보인다”고 말했다. 박지원 비대위원장도 “개헌론은 새누리당과 청와대가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고 강조했다.

 

여당의 정권 재창출 전략이란 견해도 있다. 친박의 집권이 어려워지니 이원집정제 또는 분권형(대통령제)을 제시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대통령으로, 친박 실세를 총리로 삼겠다는 친박의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정 원내대표가 청와대의 반대에도 연이어 개헌 입장을 피력하는 이유도 ‘충청 대망론’과 맞닿아 있다는 분석이다. 친박이 대선후보로 영입하려는 반 총장을 염두에 둔 포석이란 것이다. 정 원내대표와 반 총장은 충청 출신이다. 정 원내대표는 여당과 반 총장을 잇는 가교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정 원내대표는 10월10일 국회에서 현안간담회를 열고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극복하고 분권을 확립해야 한다”며 개헌을 거듭 주장했다. 앞서 7일 개헌 필요성을 제기한 지 사흘 만에 개헌론에 다시 불을 지핀 것이다. 그는 “대통령이 일을 하려 해도 국회가 발목을 잡으면 국가적 어젠다가 제대로 추진되지 않는 이런 의사결정 구조를 갖고 언제까지 갈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며 독일식 내각제를 해결책으로 제시했다. 독일에선 대통령이 외교나 안보를, 총리가 내치(內治)를 담당한다. 독일의 대통령은 독일 공화국의 국가원수로서 대외적으로 국가를 대표한다. 대통령은 의회에서 간접선거 방식으로 선출한다. 총리는 정부의 기본정책 노선을 결정하고, 대통령에 대한 각료 임면을 제청하며 대통령에 대한 하원 해산을 제청하는 권한을 갖는다.

 

정 원내대표의 개헌론은 친박 주류의 ‘반기문 대통령·친박 실세 총리’라는 분권형 개헌과 맥락을 같이한다. 반 총장이 강점을 살려 외교와 국방 등 외치(外治)를 맡고, 친박 실세가 내치를 담당하는 시나리오다. 최근엔 영남권 세력이 주축인 여당에 보수·중도적 호남 세력을 포용하고, 반 총장이 합류하는 ‘영남·호남·충청 연합정권론’도 제기되고 있다.

 

정 원내대표의 개헌 행보는 그가 지난 9월 미국에서 반 총장을 만난 것과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반 총장의 내년 1월 귀국에 앞서 개헌론을 띄워 그 중심에 반 총장을 서게 해 반 총장의 대권 행보에 날개를 달아주기 위한 포석으로 읽힌다.

 

일각에선 대선판을 새롭게 짜려는 의도로 본다. 반 총장을 제외하면 마땅한 대선 주자가 없는 여당이 개헌을 통해 야권이 주도하는 대선판을 흔들어 정계재편을 시도해 보려 한다는 얘기다. 대선 판도에서 야당이 우위를 점하는 국면이 굳어지는 상황을 사전에 막겠다는 노림수다.

 

9월23일 김무성 새누리당 전 대표(가운데)와 남경필 경기지사(왼쪽),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나라살리는 헌법개정 국민주권회의’ 창립대회에 참석했다. © 연합뉴스


 

“반기문 대권 행보에 날개 달아주려는 의도”

 

야권 개헌파를 향한 여당의 회유 메시지라는 분석이 나온다. 여당이 노동관련 4법 등 입법안 처리를 전제로 개헌 추진을 바라는 야권 세력과 공동전선을 구축하려 한다는 것이다. 정기국회 이후 개헌 공론화의 장을 마련해 줄 테니 청와대의 관심이 많은 법안 처리에 협조해 달라는 정 원내대표의 전략적 판단이 담겨 있다는 분석이다.

 

여당발 개헌론에는 반 총장 영입을 둘러싼 여권 내부의 암투가 반영됐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반 총장 영입에 공을 들이고 있는 정 원내대표와 친박 사이에 미묘한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다는 이야기가 당내에 번지고 있다. 한 여당 의원은 “김종필 전 총리가 반 총장에게 친박 실세인 C 의원과 O 의원을 가까이하지 말고 경계하라고 조언했고 반 총장 측에서도 그런 움직임이 보이자 반 총장 옹립을 계획했던 친박 진영이 반 총장도 경선에 참여해야 한다는 등 비우호적인 태도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를 감지한 정 원내대표가 반 총장이 친박이 아닌 다른 세력과 결합해 분권형 개헌을 주도할 수 있다는 간접 경고를 친박에게 던졌다는 해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친박이 방해하더라도 개헌에 공감하는 세력이 많은 만큼 친박의 도움 없이도 반 총장을 분권형 대통령으로 만들 수 있다는 얘기다. 이미 1987년 이후 30년간 이어져 온 현행 헌법체제의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는 데 공감하는 현직 의원 규모는 역대 최다다.

 

‘20대 국회 개헌추진 국회의원 모임’은 185명으로 시작해 현재 190명 규모로 세를 불리고 있다. 국회 차원의 개헌특별위원회 구성도 추진되고 있다. 이들은 모임 규모가 개헌안 국회의결 정족수인 200명(재적 의원 3분의 2)을 넘게 되면 전체 회원 명단을 공개할 계획이다. 개헌 전도사로 불리는 우윤근 국회 사무총장은 이번 국정감사가 끝나는 대로 여야 지도자를 만나 개헌 특위 구성을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김원기·임채정·정의화 전 국회의장 등 여야 유력인사 150여 명으로 구성된 ‘나라 살리는 헌법개정 국민주권회의’도 지역별 공청회와 토론회를 준비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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