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이 꼭 필요해?” ‘비혼’을 택한 사람들
  • 이민우 기자 (mwlee@sisapress.com)
  • 승인 2016.10.20 11:40
  • 호수 140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내 삶에 만족” “결혼제도 싫어” 이유는 제각각

‘비혼(非婚)’에 관한 담론이 늘어나는 요즘이다. 시장조사 전문기업인 마크로밀 엠브레인의 트렌드모니터(trendmonitor.co.kr) 조사를 보면 그런 분위기가 숫자로 나타난다. 전국 만 19~59세 ‘미혼’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인식조사를 실시했는데 결과를 보면 결혼의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하는 미혼남녀들이 점점 늘어나는 게 뚜렷이 보인다. ‘비혼 문화’가 공감받고 있다는 얘기다.

 

비혼족이 왜 이렇게 늘어났을까. 젊은 세대의 비혼을 두고 전문가들은 그들의 소득이 현 사회에서 정상적인 생활을 담보해 주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그동안 진단해 왔다. 직장이 불안정하거나 살 집을 구하지 못해서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한 ‘삼포세대’라는 용어가 등장했다. 하지만 비혼에 대한 담론을 모두 경제적인 이유로 설명할 수는 없다. 직접 결혼을 포기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 pixabay

“누구를 책임질 수 있을까”

 

서울 강북구에 사는 박상훈씨(31)는 2년째 일할 곳을 찾고 있는 취업준비생이다. 그동안 제출한 입사지원서만 수백 건에 달한다. 일어나면 커피전문점을 찾아 채용공고를 확인하고 이력서 쓰기를 반복하고 있다.

박씨는 대표적인 삼포세대다. 그에게 연애란 단어는 다른 사람 이야기다. 누군가를 만날 여유도 없고, 취준생을 만나줄 상대도 없다는 게 그의 말이다. 연애 공백 기간이 길다 보니 ‘연애 세포’도 사라졌다. 친구들을 만나지 않다 보니 만날 기회도 없다. 당연히 결혼이나 출산은 계획표에서 삭제된 지 오래다.

어렸을 적부터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던 박씨는 “또 다른 나를 만들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렸을 때 다른 사람들만큼 배우자와 자식들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없을 것 같다는 말이다. 그는 “나 하나만 포기하면 여러 사람이 행복해질 수 있다”며 한숨을 쉬었다.

“그들의 눈높이에 맞추고 싶지 않아”

 

한 경제지에서 기자로 일하고 있는 황아무개씨(34)는 스스로를 ‘비자발적 비혼족’이라고 말한다. 몇 해 전만 해도 소개팅도 많이 나가고 연애도 했었다. 연애 과정에서 결혼까지 떠올린 적도 있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과거 수차례의 소개팅과 교제 과정에서 상대방의 태도는 똑같았다. 그들은 얼마나 큰 회사에 다니는지, 얼마를 버는지에 관심이 많았다. 황씨는 그럴 때마다 국제재무분석사(CFA) 자격증도 따고 열심히 산 자신의 삶이 너무 쉽게 평가받는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황씨는 올해 2인승 쿠페 승용차를 샀다. ‘결혼 상대에게 아파트를 사주느니 열심히 산 스스로에게 선물을 주자’는 판단에서 결혼비용으로 모아뒀던 거금을 썼다. 그는 “주변에서 눈높이가 너무 높은 게 아니냐고 하지만 1년 넘게 쉬고 있다는 사람들조차 경제적인 조건을 따지더라”며 “결혼을 놓고 계산기를 두드리는 상대방의 눈높이에 내 삶을 맞추고 싶지 않다”고 밝혔다.

“워킹맘 자신 없어”

 

대형 병원에서 일하고 있는 신지영씨(여·34)는 비혼을 신념처럼 여긴다. 그녀는 인턴·레지던트·펠로우 생활을 끝내고 올해 전문의를 따냈다. 지옥과도 같았던 몇 년의 시간을 견딘 끝에 오랜만에 여유를 찾은 셈이다.


그 기간 동안 많은 친구들이 배우자를 만나 가정을 꾸렸다. 출산이 임박한 친구들의 고민도 들을 수 있었다. 그중 상당수가 자신의 일을 포기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그녀는 덜컥 겁이 났다. 수년간 전문의로 자리를 잡기 위해 쏟은 자신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신씨는 “여성에게 살림과 육아의 부담이 주어지는 현재의 결혼제도에 순응하고 싶지 않다”며 “직장에서 하루를 보내면 녹초가 되는데 아이들 뒷바라지, 집안일을 동시에 할 자신이 없다”고 고백했다.

음악을 좋아하는 이정현씨(맨 왼쪽)는 친구들과 세계적 뮤직 페스티벌에 참석하는 등 비혼족으로서 자신의 삶을 즐기고 있다. © 이정현 제공

 

“현재 삶 변화시키고 싶지 않아”

 

대형 홈쇼핑 회사에 다니는 이정현씨(31)는 2년 넘게 연애를 하고 있지만 결혼 의향이 없는 대표적인 비혼족이다. 그는 현재 자기 삶의 만족도가 100%에 가깝다고 말한다. 굳이 현재의 삶에 변화를 주고 싶지 않다는 의미다.

그는 복지를 중요시하는 회사 덕분에 저녁 6시만 되면 칼같이 퇴근한다. 정배·일삼이 등 두 마리 반려견과 함께 살고 있다. 집 근처에 있는 공원으로 산책을 나갔다 와서 씻기는 일로도 저녁 시간은 부족하다. 주말에는 강원도 원주에 살고 계신 부모님을 찾아뵙거나 친구들을 만난다. 음악을 좋아해 웬만한 뮤직 페스티벌엔 모두 참여한다. 해외에서 열리는 뮤직 페스티벌까지 찾아갈 정도다.

이씨는 “내가 좋아하는 공연을 보고 여행을 다니는 것만으로도 내 삶은 완전하다고 느낀다”며 “부모님과 친구들, 반려견과 시간을 보내는 것도 중요한 일상”이라고 말했다. 그는 “결혼을 해서 배우자와 자녀로 인해 내 삶이 변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덧붙였다. 

“실패 반복하고 싶지 않다”

 

대기업에 다니고 있는 정종우씨(38)는 2015년 이혼을 했다. 직장 동료로 만나 일찌감치 결혼을 했고, 한때 회사에서 금실 좋다는 소문도 났었다. 하지만 취향이 달랐다. 시간이 지날수록 의견 대립은 더욱 커져만 갔다. 2세 계획을 미뤘던 덕분에 상대적으로 큰 부담 없이 이혼을 택했다.

한 차례 결혼 생활에 실패한 그는 다시는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다른 누군가를 만나 맞춰가는 과정이 직장 생활보다 힘들다는 걸 경험적으로 깨달았기 때문이다.

올해 새로운 여자를 만나 연애를 시작한 그는 “첫 결혼 당시에 주변에서 너도나도 결혼을 하니까 당연히 해야 한다고 여겼고 나이를 먹을수록 부담이 커졌다”며 “한 차례 결혼 생활에 실패한 뒤 결론은 결혼이 필요 없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