옳은 것이 ‘기본’이 되는 세상을 꿈꾸며
  • 남인숙 작가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10.21 13:48
  • 호수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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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조금만 더 신경을 써주시면 네 산수 성적이 잘 나올 수도 있을 텐데…. 너희 엄마는 왜 학교에 잘 안 오시니?” 

공부를 곧잘 하면서도 유독 셈에 서툴렀던 열 살 무렵의 필자가 담임선생님에게 들었던 말이다. 당시에는 그게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나중에야 그게 촌지를 달라는 말의 에두른 표현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가 금은방집 딸인 동급생에게는 시계를, 떡집 아들에게는 행사에 필요한 엄청난 양의 떡을 요구했다는 사실은 곧 누구나가 아는 비밀이 되었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당시에는 가난하거나 엄마가 학교에 드나들지 않는 아이들이 반장이 되는 경우도 흔치 않았다. 학교는 감사를 표현하는 부모와 그 자식에 대한 선생님들의 총애로 넘쳐나는 아름다운 정(情)의 난장이었다. 당시의 교사들을 폄훼할 생각은 없다. 분명 촌지를 거절하고 아이들을 공평하게 대하는 훌륭한 선생님들도 많았다. 문제는 ‘주는 것이 기본’이 된 당시 분위기였다. ‘내 아이를 잘 봐 달라’는 일부의 욕심은, ‘안 주면 내 아이만 소외된다’는 두려움으로 보통 사람들에게까지 번져갔다. 필자가 대학 원서를 쓸 무렵에는 반장이 나서서 학급 회의를 열어 진학상담 때 줄 촌지 액수를 반 전체가 통일하자고 했을 정도였다.

 

ⓒ 시사저널 고성준

다행히 필자가 부모가 되면서부터는 그런 부담을 가져본 적이 없다. 허물없는 학부형들 사이에서도 촌지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물론 누군가는 필자가 순진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아무리 교육청 단속이 심해졌다고 해도 줄 사람은 주고, 받을 사람은 받고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의 존재 여부가 핵심이 아니다. 옳은 일이 ‘기본’이 되는 분위기가 되었다는 것, 그게 중요한 것이다.

 

‘김영란법’이라고 불리게 된 부정청탁방지법이 시행되면서 여러 부정적인 의견이 들려온다. 성가신 일만 많아졌을 뿐, 힘 있고 부정한 사람들은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서 하던 대로 할 거라고 말이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학교에서 ‘누구나 아는 비밀’인 촌지가 사라졌듯, 사회 전반에 걸쳐 관례로 자리 잡았던 접대나 청탁이 더 이상 기본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물론 이게 생각만큼 간단한 일이 아니라는 건 필자도 알고 있다. 주변에 부정청탁과는 전혀 상관없는 상황인데도 곤란을 겪는 지인들이 한둘이 아니다.

 

심지어 공직·언론·교육과는 천리만큼 떨어져 있는 것만 같은 필자조차 주의해야 할 일이 있을 거라는 경고를 심심치 않게 듣고 있을 정도다. 그러나 힘 있는 자들이 어떻게든 허점을 뚫어 돌파할 것으로 예상되듯 선의의 보통 사람들도 방법을 찾아낼 것이다. 옳은 것이 기본으로 굳어진 세상은 그렇게 적응한 보통의 사람들이 더 살기 수월한 세상이 될 것이다. 

 

이제 우리의 다음 세대는 옳은 선택을 위해 굳이 이단아가 되지 않아도 되는 삶을 살게 되면 좋겠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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