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세대를 향한 청춘의 응답 '걷기'
  • 허남웅 영화 평론가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10.28 14:22
  • 호수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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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경쟁 시대, 영화 《걷기왕》이 전달하는 천천히 걸으면서 얻는 가치

청춘을 위로하는 목소리가 넘쳐난다. 발열해야 하는 청춘의 에너지가 무한경쟁 시대에서 빛을 잃다 보니 이들에게 힘을 주겠다며 경쟁적으로 말을 쏟아내고 있다. ‘노력하면 안 되는 게 없다’ ‘네가 가는 길이 정답이야’ ‘힘내라 청춘!’ 등등. 위로 혹은 응원하겠다는 진심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종류의 말들은 종종 책임감이 결여되어 있는 경우가 있어 불편하다. ‘나 때는 말이야, 노력하면 안 되는 게 없었어’ ‘요즘 젊은이들은 열정이 부족해’와 같은 속뜻이 말 줄임 되어 도리어 자신을 돋보이게 하려는 불순한 의도를 드러내고는 한다.

 

그들의 말마따나 죽어라 노력하지 않으면 실패하는 걸까. 이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영화가 있다. 제목이 눈에 확 들어온다. 《걷기왕》이다. 속도가 인생의 성패를 가를 것만 같은 사회 분위기와 역행하는 제목만으로도 위안을 받는 기분이다.

 

영화 《걷기왕》의 한 장면 © CGV아트하우스

‘걷기왕’은 걷는 것에 관한 한 독보적인 인물을 지칭한다. 그게 누구냐, 바로 만복(심은경)이다. 만복은 걷는 데 ‘탁월한’ 신체조건을 타고났다. 각종 교통수단을 이용만 했다 하면 멀미를 하는 까닭에 걷지 않으면 도저히 이동할 수가 없다. 집에서 학교까지 두 시간 거리. 그러니까 만복은 집과 학교를 왕복하느라 하루에 기본 네 시간은 걷는다. 만복의 걸음에는 따라올 자가 없다. 그녀의 담임선생(김새벽)이 무모하게 가정방문을 하겠다며 만복을 따라나섰다가 만신창이가 되었을 정도다. 그때 담임선생의 머릿속에서 ‘번쩍’하는 게 있다. “만복아, 넌 걷는 걸 잘하니까 경보를 해 보는 게 어떠니?”

 

만복은 재미있을 것만 같아 그 길로 육상부에 들어가 경보 선수가 된다. 전국체전에서의 우승은 떼놓은 당상 같지만, 아뿔싸 전국체전이 열리는 경기장에 가기 위해서는 버스를 타야만 한다. 당연히 버스에 탔다가 멀미 증세를 보인 만복은 예선 통과는커녕 경기시간을 지키지 못해 실격을 당하고 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복은 선천성 멀미 증후군을 극복, 그 무시무시한 버스를 타고 전국체전이 열리는 경기장에 도착해 수많은 경쟁자를 물리치고 1등을 한다?’ 제작비가 수십억원 들어간 블록버스터 영화라면 본전 생각 때문에 모험이 두려워 전형적인 해피엔딩 전개 방식을 따랐겠지만, 《걷기왕》은 저예산의 독립영화다.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은 결국 상상력의 자유를 의미한다. 그래서 《걷기왕》은 화려한 볼거리 대신 우리가 쉽게 상상하지 못한 이야기와 메시지로 신선한 충격을 준다.

 

 

‘힘들면 언제든 걸어도 좋아’ 응원과 위로

 

영화 《걷기왕》의 한 장면 © CGV아트하우스​
스포일러를 무릅쓰고 결론을 밝히자면, 만복은 강화도에서 서울까지 1박2일 동안 걷고 또 걸어 경기장에 도착해 보무도 당당히 경기에 나선다. 하지만 레이스 도중 경쟁을 포기한다. 경쟁자들이 빠르게 걷거나 말거나 만복은 트랙 위에 벌러덩 드러누워 손으로 카메라 액정 표시를 만들어 보인다. 그리고 그곳으로 파란 하늘을 가로지르는 비행기를 바라보는 여유를 누린다. 이런 게 바로 걸음이 의미하는 느림의 철학이다. 빠르게 달린다는 건 앞으로만 향한다는 의미다. 경주마가 그렇다. 눈의 양옆을 가리고 시야가 오로지 앞을 향하게만 해서 결승점을 향해 무조건 달리도록 유도한다. 지금 우리네 삶이 경주마와 같은 건 아닐까. 1등만이 가치의 전부인 양 성공을 연호하고, 상위권 대학만을 바라보고, 대기업 취직에 목을 매고, 고액 연봉을 받기 위해 미친 듯이 달리고 또 달린다. 1등과 성공만을 향한 경주마를 양산하는 사회에서 걸음의 가치는 쉽게 무시당하고 놀림감으로 전락한다.

 

경쟁에 매몰되어 수만 가지의 다양한 가치를 놓치고 사는 삶이란 얼마나 황폐한가. 만복처럼 앞을 향해 뻗은 트랙을 벗어나 주변을 둘러보면 그동안 잊고 지냈던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절실하게 다가온다. 기성세대는 타박할지도 모른다. ‘하늘에 떠 있는 비행기를 보면 돈이 나오냐, 밥이 나오냐’라고. 그런 한적한 광경을 보며 누군가는 파일럿을 꿈꾸고, 누군가는 멋진 시상(詩想)을 떠올리고, 또 누군가는 영화에 대한 의미 부여의 글을 쓰기도 한다. 만복처럼 경쟁에서 벗어나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도 있다.

 

삶의 다양성이 바로 이런 것일 터.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고삐리’ 만복이가 벌써 유유자적하는 인생을 깨닫다니 놀랄 노자로다’라고 생각하는 기성세대가 있다면, 아직 청춘을 이해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지금의 청춘은 ‘노력하면 안 되는 게 없다’고 열변하는 기성세대보다 훨씬 더 영리하고 삶의 구석구석을 탐험하고픈 욕망이 강하다. 《걷기왕》을 연출한 백승화 감독은 그런 청춘을 통과해 지금에 이르러 자신의 경험과 의견으로 《걷기왕》을 떠올렸다.

 

백 감독은 《걷기왕》을 연출한 배경에 대해 이렇게 얘기했다. “기성세대들이 원하는 청춘의 성장 조건이란 끝없는 도전과 자기계발, 꿈과 성공을 향해 달리는 것이지만, 지금 젊은 세대가 과연 목숨 걸고 열심히 하면 누구나 꿈을 이룰 수 있는 사회에 살고 있을까? 결승선을 향해 달린다고 하지만, 실은 러닝머신 위를 달리고 있는 건 아닐까? 그것이 궁금했다. 이런 고민이 뛰지 않는 청춘, 공백의 청춘, 느린 청춘들의 가치에 대해 고민하게 했다.” 그러니까 백 감독은 ‘청춘이니까 더 열심히 뛰어’와 같은 충고보다 ‘힘들면 언제든 걸어도 좋아’라는 응원과 위로의 의미에서 《걷기왕》을 만든 것이다.

 

극 중 만복처럼 큰 야심 없이 소박한 이야기와 느릿한 전개로 무장한 《걷기왕》은 패기·열정·간절함·노력과 같은 단어를 무책임하게 남발하는 기성세대를 향한 청춘의 응답이라고 할 만하다. 영화의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면 《걷기왕》 캐릭터들의 후일담이 보너스처럼 전해진다. 경보를 그만둔 만복은 한때 경쟁 상대였던 육상부 선배와 함께 발맞춰 도보여행을 즐긴다. 그런 만복의 행보는 굳이 꿈이 없어도 전혀 문제가 없다는 듯 자신만 만족한다면 괜찮다는 메시지를 온몸으로 전달한다. 이를 절대적인 양 강요하지 않는 《걷기왕》의 태도는 지금의 청춘이 기성세대에게 바라는 것을 말없이 웅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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