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제3지대’ 중심축 되나
  • 남상훈 세계일보 기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11.01 09:59
  • 호수 141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순실 게이트’로 여권 침몰…반기문의 정치적 선택에 관심
손학규 동아시아미래재단 상임고문이 10월20일 정계에 복귀하면서 ‘제3지대론’이 급부상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한 손 고문은 개헌을 통한 제3세력화에 불을 지폈다.

손 고문은 기자회견에서 “87년 헌법체제가 만든 헌법공화국은 그 명운을 다했다”면서 “이제 7공화국을 열어야 한다”고 개헌의 필요성을 밝혔다. 그러면서 “성장엔진이 꺼진 대한민국 경제를 위해 고통스럽더라도 경제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할 때, 더 늦기 전에 대한민국은 정치와 경제를 완전히 새롭게 바꿔야 한다”며 제3지대론을 띄웠다.

손 고문은 10월30일 자신의 저서 《나의 목민심서 강진일기》의 첫 번째 북콘서트를 열고 정계복귀 이후 첫 공개 행보에 나섰다. 북콘서트 장소는 전남 강진이었다. 손 고문이 2014년 7월 재·보궐선거 패배 이후 정계를 은퇴하며 칩거에 들어가 저술 활동을 했던 곳이다. 이번 행보는 손 고문의 호남 정치력 복원을 위한 것이었다. 그는 개헌을 고리로 한 제3지대론 추진 구상을 밝혔다. 손 고문은 “개헌의 내용은 국민적 논의를 거쳐야 하겠으나, 독일식 정당명부제 또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등 합의제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는 정치시스템을 구축하는 정치개혁을 수반해야 한다”고 말했다. 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 도입 등 권력구조 개편을 통해 권력을 나눠 갖기 위한 정치세력 간 이합집산을 노리고 있는 셈이다. 기존 여야 구도를 깨는 정계 개편을 하겠다는 게 그의 목표다.

손 고문은 국민의당과의 연대 의사도 밝혔다. 그는 자신의 책을 통해 8월 안철수 전 대표에게 영입 제안을 받은 뒤 “우리 둘이 힘을 합쳐 10년 이상 갈 수 있는 정권 교체를 하자”고 답했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안 전 대표는 책 내용을 인정했다.

손학규계로 분류되던 민주당 인사들도 탈당 후 제3지대론에 합류할 것으로 보인다. 이종걸 민주당 의원은 손 고문의 탈당에 따른 추가 탈당의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손학규 전 대표께서 정성을 다해 정치적 생명을 함께한 분이 몇 명 있다”면서 “그런 분들에게 사실 당 안에서 힘써달라고 당부와 부탁을 했지만 탈당을 강력하게 고민하고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10월7일 독일 함부르크에서 ‘독일 지속 가능성 재단’이 제정한 상을 받았다. © AP 연합

손학규계 민주당 인사 탈당 이어질 듯

안 전 대표도 제3지대에 동의하고 있다. 그는 당권과 당명 등 자신의 기득권을 내려놓을 의지를 거듭 밝히고 있다. 하지만 제3지대의 중심은 국민의당이 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기존 정당을 이탈한 제3지대론을 펴는 손 고문과는 생각이 다르다. 또 안 전 대표는 개헌에 부정적이어서 김종인 전 민주당 대표 등 개헌파가 추진하는 제3지대와도 접점을 찾기 어렵다.

안 전 대표는 자신의 싱크탱크인 ‘정책네트워크 내일’의 청년아카데미 개강식에서 “개헌 이전에 우리가 할 수 있고, 해야 되는 많은 일들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총선 때의 민의가 국민의당을 ‘제3의 길’의 주인으로 세워주신 것”이라며 “두 당으로 문제를 풀지 못하니 3당 체제로 문제를 풀어보라고 그 일을 맡겨주신 게 불과 반년 전인데 이를 무시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국민의당이 제3지대를 통한 정계 개편 논의를 주도하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개헌론을 주장하는 대권 경쟁자들에게 주도권을 뺏기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안 전 대표와 김종필(JP) 전 국무총리의 회동도 예사롭지 않다.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가 주선한 이번 회동은 내년 대선을 염두에 둔 ‘반기문·안철수 연대’를 위한 상호 의사타진을 위한 자리였다는 관측이 나온다. JP가 1996년 호남권과 충청권이 손을 잡은 이른바 ‘DJP연합’과 같은 구상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제3지대론은 여야의 비주류인 비박(非박근혜)계와 비문(非문재인)계를 중심으로 논의돼 왔다. 권력을 분점하는 개헌론을 앞세워 새 정당을 만든 뒤 대선을 치른다는 시나리오다. 여권에선 정의화 전 국회의장과 이재오 전 의원이, 야권에선 김종인 전 민주당 대표가 앞장서고 있다. 세 사람은 친박과 친문을 제외한 여야 비주류들이 세력을 만들자는 ‘제3지대론’에 뜻을 같이하고 있다. 
정 전 의장이 설립한 ‘새한국 비전’과 김 전 대표가 참여하고 있는 ‘어젠다 2050’ 모임에는 여야 인사들이 두루 참여하고 있다. 새한국 비전 모임에는 김성곤 민주당 의원, 염동렬 새누리당 의원, 김동철 국민의당 의원 등이 참여하고 있다. 어젠다 2050에는 김종인 전 대표, 김성식 국민의당 정책위의장, 유승민·김세연 새누리당 의원 등이 참여하고 있다.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가 10월20일 국회 정론관에서 강진 생활을 마무리하고 정계복귀 선언을 한 후 질문을 받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이정현, 새누리당 중심 정계 개편 구상

정의화 전 의장은 9월초에 전남 강진에서 손 고문과 직접 대화를 나눈 것으로 알려졌고, 김종인 전 대표는 최근 손 고문에 대해 “그동안 산에서 많은 생각을 했을 테니 그런 생각으로 우리 현실 문제를 타결하는 데 기여하는 역할을 해 주면 좋겠다”고 애정을 보였다. 김 전 대표는 최근 국민의당 천정배 의원과 김한길 전 의원 등을 만나 “문재인 전 대표, 안철수 의원으로는 정권교체가 힘들다”는 의견을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정의화 전 국회의장,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과도 조찬모임을 갖고 개헌 및 정계 개편과 관련해 의견을 나눈  것으로 전해졌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정치적 선택도 제3지대를 흔들 변수다. 반 사무총장이 ‘최순실 게이트’로 박근혜 대통령과 여당이 침몰하는 상황에서 여당 후보만을 고집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차기 대선 주자 지지율 1위인 반 총장이 제3지대에 합류한다면 현재의 대권구도와 정치지형이 요동칠 수밖에 없다. 김 전 대표도 최근 자신과 가까운 민주당 의원들에게 “반 총장이 귀국하는 내년 1월초가 돼야 대선판이 정리될 수 있다”는 취지로 말했다. 반 총장과 안 전 대표, 손 전 대표가 제3지대에서 주도권 경쟁을 벌이며 대선판을 키울 수 있다는 게 김 전 대표의 생각이다. 반 총장이 제3지대에서 개헌 논의 중심에 설 수도 있다는 관측이다.

새누리당에서도 제3지대 이야기가 나온다. 이정현 대표는 “합리적 보수와 급진 진보 세력이 헤쳐 모이는 정계 개편이 일어나게 될 것”이라며 “개헌이 정계 개편의 핵폭발을 일으키는 뇌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안철수 전 대표와 손학규 전 대표 모두 훌륭한 정치인”이라며 “기꺼이 영입하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고도 했다. 새누리당을 중심으로 정계를 개편하겠다는 구상이다. 영남권 중심의 여당에 보수·중도적 호남 세력을 포용해 규모를 키우겠다는 것이다.

김무성 전 대표와 오세훈 전 시장 등 비주류 대권 주자들은 국민의당과의 연정이나 협치를 중심으로 ‘제3지대론’을 구상하고 있다. 이들도 탈당이나 정계 개편보다는 새누리당을 유지하면서 외연을 확장하는 수준의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