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미의 생생토크] 유승민, “IOC 선수위원? 선수들 대변인 역할 제대로 하고 싶다”
  • 이영미 스포츠 칼럼니스트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11.08 15:11
  • 호수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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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OC 선수위원 선거 2위 당선 유승민 삼성생명 여자탁구 코치 인터뷰… “선수들 좋은 환경에서 운동할 수 있도록 적극 돕고 싶다”
OC 선수위원으로 당선된 유승민 삼성생명 여자탁구 코치

 

지난 8월13일 대한체육회(KOC)의 IOC 선수위원 KOC 후보 추천 소위원회에서 역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출신의 장미란(33·장미란재단 이사장)과 사격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진종오(37)를 제치고 유승민(34) 삼성생명 여자탁구 코치가 IOC 선수위원 후보로 최종 낙점됐다는 소식이 알려졌을 때, 체육인들 대부분의 반응은 ‘어리둥절’이었다. 당시 유력하게 거론됐던 후보가 진종오였고, 장미란 또한 재단 활동을 펼치며 스포츠 행정가다운 모습을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후보자들 중 가장 기대치가 낮았던 이가 유승민이었는데 실제 IOC 선수위원 후보로 유승민이 뽑히다 보니 이런저런 말들이 많았다.

 

2004 아테네올림픽에서 중국의 왕하오를 꺾고 남자단식 금메달을 획득한 이후 2008 베이징올림픽 남자 단체전 동메달, 2012 런던올림픽 남자 단체전 은메달을 목에 걸며 ‘탁구 황태자’로 인기를 모았던 유승민. 은퇴 후 지도자의 길을 걸었던 그가 어느 날 갑자기 스포츠 행정가로 변신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11월4일 스위스 로잔에서 열리는 IOC 선수위원 오리엔테이션 참가차 출국하는 유승민 위원과 11월2일 청와대가 보이는 효자동에서 만났다.

 

진종오·장미란에 밀려 IOC 선수위원 KOC 후보가 될 가능성이 극히 낮았던 유승민 위원은 2016 리우올림픽에 참가한 선수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선수위원 선거에서 투표자 5815명 중 총 1544표를 획득하며 2위에 올랐다. 후보자 23명 중 4명만이 선택받는 바늘구멍을 통과하며 당선자 명단에 이름을 올린 건 ‘기적’이나 다름없었다. 문대성 IOC 선수위원의 임기 만료와 이건희 IOC 위원의 와병으로 국제 스포츠계 공백이 염려되던 상황에서 한국 출신의 IOC 선수위원 탄생은 과정도 극적이었고 최고의 결과를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IOC 선수위원은 각 국가가 추천한 100여 명의 후보자를 대상으로 전화 면접과 서류 심사를 거친 뒤 종목과 국가, 대륙별 안배 과정을 거쳐 최종적으로 23명의 후보가 탄생한다. 대한체육회의 추천을 받아 KOC 후보가 된 유승민은 이 과정을 통과했고, 올림픽이 열리는 리우올림픽 선수촌에서 한 달 동안 선거운동을 펼친 끝에 감격스러운 IOC 선수위원에 오른 것이다.

 

유승민 위원은 브라질에서 귀국 후 정말 눈코 뜰 새 없는 시간을 보냈다. IOC 선수위원은 물론 대한체육회 선수이사를 맡게 되며 부르는 곳도, 가야 할 곳도 많아진 것이다.

 

 

정말 바빠 보여요.

 

“진짜 바쁘게 살고 있어요. 내일(3일) 출국하는데 출국 전날까지 인터뷰 등으로 종종거리며 생활하네요. 저녁도 가족들과 못 먹어요. 선약이 있어서요. 아들이 둘인데 아내와 아이들한테 미안한 마음뿐입니다.”


스위스 로잔에서 열리는 행사는 IOC 선수위원으로 첫 공식 행사인 거죠?

 

“네. 이번에 당선된 선수위원 동기들(여자 장대높이뛰기 1인자 옐레나 이신바예바, ‘미녀 검객’ 펜싱의 브리타 하이데만, 헝가리 수영선수 출신 다니엘 지우르타)과 다시 만나게 돼 기대가 큽니다. 오리엔테이션이니만큼 IOC 선수위원이 하는 일과 앞으로 해야 할 일 등에 대해 많은 얘기를 나눌 것으로 예상됩니다. 나름 준비를 해서 가는데 그래도 부족한 게 많은 것 같아요.”


탁구단 코치에서 감독이 아닌 행정 쪽으로 방향을 튼 진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선수 때는 항상 대접을 받고 생활했어요. 나름 스타플레이어였기 때문이죠. 그러다 코치를 하면서 다양한 선수들을 만났고, 저처럼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아닌 비주류 선수들이 은퇴 후 마땅히 할 일이 없어 노는 걸 봤어요. 그들이 자신의 새로운 삶에 대해 고민하며 힘들어하는 걸 지켜보면서 제가 뭔가 도움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선수들과 고민 상담을 하다가 이걸 좀 더 근본적인 차원에서 도와주고 해결해 줄 수는 없을까를 떠올린 거죠. 그때 IOC 선수위원 후보자 선거가 있다는 얘길 듣고 후보로 등록했던 겁니다.”


그런데 대한체육회에 등록한 선수위원 후보자들이 쟁쟁했어요. 진종오·장미란이란 이름값 때문이었는데요, 부담되지 않았나요?

 

“솔직히 부담스러웠죠. 그래서 많이 망설였습니다. 제가 나가도 안 될 확률이 높았기 때문에 포기할 생각도 했었어요. 하지만 어차피 안 될 거라면 도전은 해 보고 포기하자고 마음먹었습니다. 후배들에게 이 또한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을 거라고 믿었어요. 가장 어려웠던 부분이 영어 면접이었거든요. 나름 학원 다니면서 공부하고 개인 레슨도 받아가며 준비했고 이전 독일에서 선수생활을 했던 경험이 큰 도움이 됐어요.”

유승민 IOC 선수위원이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남자단식 금메달을 딴 경기 장면 © 올림픽 공동취재단

장미란 이사장을 만난 적이 있는데 선수위원 후보에서 탈락한 걸 몹시 아쉬워하더라고요. 유승민 위원이 면접을 아주 잘 봤다는 얘기도 들려줬어요.

 

“준비했던 것만큼 국내 면접을 잘 치렀어요. 거의 떨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을 했던 것 같아요. 문제는 영어 면접이었는데 제가 소문대로 영어가 유창한 편이 아니거든요. 외국에서 공부한 선수들과 영어 말하기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어요. 그래도 자신감 있게 임했어요. 전 한국 사람이고, 한국 사람이 영어가 서투른 건 당연하다고 최면을 걸었었죠. 언론에선 (진)종오 형이랑 (장)미란이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알아서 써주더라고요. 전 그 두 사람 사이에 낀 존재가 되고 말았어요. 물론 이름값에서는 그 두 후보자에게 밀릴지는 몰라도 그 외의 부분은 자신 있었거든요. 펜싱의 남현희 누나가 후보 신청을 하겠다고 해서 진심으로 반가웠어요. 앞선 두 사람 사이에 내가 끼어 있기보단 현희 누나가 있으면 자연스레 둘씩 나뉘니까 그런 그림도 좋을 것 같았고요. 그러다 등록 마감을 앞두고 현희 누나가 후보 신청을 철회하면서 다시 세 사람의 대결구도가 되고 말았죠.”


대한체육회에선 면접 결과를 토대로 유승민 위원을 최종 후보자로 발표했습니다. 당시 기분이 어떠했나요?

 

“전혀 홀가분하지 않더라고요. 진종오·장미란 대신 제가 그 모든 짐을 지고 가야 한다는 생각이 드니까 엄청난 부담이 절 짓눌렀고 준비하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이런 대단한 선수들을 제치고 후보로 나가서 표도 얻지 못하고 그냥 떨어지면 창피함과 동시에 미안한 마음이 클 것 같았어요.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의지를 다진 계기도 됐습니다.”

(IOC가 정한 공식 선거운동 기간은 현지 시각으로 7월24일부터 8월17일. 7월23일 리우에 도착한 유승민은 짐을 풀자마자 현장으로 달려가 선거운동에 돌입했다.)

 


선거운동을 하며 어떤 작전을 구상했었나요?

 

“작전이오? 없었어요. 제가 선거를 해 본 경험이 없어서 처음에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일단 부딪혀보자는 각오로 시작했습니다. 제가 유권자였을 때도 있었잖아요. 선수로 올림픽에 출전했을 때. 그 기억을 떠올려보니까 IOC 선수위원 선거가 기억나지 않는 거예요. 왜 안 그랬겠어요. 올림픽이란 중요한 대회를 앞두고 선거운동을 하는 데 관심이나 뒀겠어요? 그걸 생각하며 선수들에게 최대한 조심스레 다가갔습니다. 선수들 귀찮게 하지 않고 예민해 있는 선수들은 피해 가면서 접근했어요. 그런데 선수들 마음을 얻는 게 정말 어렵더라고요. 인종·나라·성별·종목이 다 다른 탓에 맞춤형 선거전략도 필요했었고요.”


하루 3만5000보를 걸었다면서요? 26km나 되는 거리를 걸으며 발바닥에 물집까지 잡혔다고 들었어요.

 

“가진 게 없으니까 몸으로 밀어붙였죠. 한 달이란 시간이 정말 길게 느껴지더라고요. 아침 7시부터 밤 9시까지 연일 강행군을 펼쳤는데 잠시 쉬러 숙소에 들어갔다가도 밖에 돌아다니는 선수들이 모두 유권자들이라고 생각하면 앉아 있을 수가 없었어요. 그들의 표가 다른 후보자한테 가는 듯해서요.”

8월21일(현지 시각)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마라카낭 주경기장에서 열린 2016 리우올림픽 폐회식에서 유승민 IOC 선수위원이 소개를 받고 관중을 향해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선거운동을 하면서 에피소드가 많았겠네요. 

 

“어떤 선수는 ‘내가 왜 당신을 뽑아야 하는지 자신을 설득해 달라’는 주문을 하더라고요. 열심히 설명했더니 ‘당신을 뽑아야만 할 것 같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어요. 아프리카에서 온 선수는 절 찾아와선 ‘오랫동안 당신을 지켜봤는데 하루도 빠짐없이 선거운동을 하는 모습에 감명받았다. 나는 물론 나와 함께 온 선수들한테도 당신에게 투표하라고 소개했다’는 얘기도 전해 줬습니다. 그런 말을 들으면 밥을 먹지 않아도 힘이 나는 것 같았어요. 선수 한 명이 후보자 4명에게 투표를 할 수 있기 때문에 후보자들하고 경쟁하기보단 함께 IOC를 알리는 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선거 막바지에는 선수촌을 돌아다니지 않고 한곳에 서서 유권자들을 만났는데 후보자들은 그 장소를 ‘유승민의 홈’이라고 불렀어요. 다른 후보자가 서 있으면 ‘거긴 유승민의 홈이니까 렌트비 내야 한다’고 농담까지 했을 정도로요. 투표를 앞두고 모든 선거운동을 마쳤을 때는 할 만큼 했다며 열심히 뛰어다닌 제 자신에게 박수도 보내줬습니다.”


결과에 자신 있었나요? 당선 가능성을 어느 정도로 예상했어요?

 

“선거 후반부 들어서 선수들 반응을 보며 100% 확신은 못해도 잘될 것 같다는 감은 있었어요. 한 달여 시간 동안 몸은 힘들었지만 선수들을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누면서 제가 선수위원이 된다면 어떤 마인드로 일해야 하는지 배웠습니다. 언제 그런 경험을 해 보겠어요. 당시엔 시간이 너무 더디 간다고 생각했는데 돌이켜보면 제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날들이었던 것 같아요.”

(유승민 위원이 IOC 선수위원에 2위로 당선됐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올림픽을 취재했던 기자들은 그의 쾌거를 ‘발로 만든 기적’이라고 평가했다. 다른 후보자들에 비해 인지도가 낮았던 그가 예상을 뒤엎고 많은 지지를 받은 것은 그가 보인 열정과 진심, 그리고 노력이 인정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선거 때만 반짝하지 않고 8년이란 임기 동안 세계의 스포츠 선수들을 위해 최선을 다해 일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힌다. 유승민 위원은 선거를 치르며 가장 어려웠던 일로 IOC가 정한 선거 규정이었다고 말한다. 선수들이 모여드는 식당 내 선거운동이 금지됐고, SNS를 공유하거나 태그를 거는 것도 제한했다. 기념품·선물·선거도구를 사용할 수 없었다. 미디어와의 인터뷰를 통해 자신을 알리는 것도 금지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유승민 위원은 모든 일들을 혼자 힘으로 이뤄냈다. ‘발로 만든 기적’이란 스토리가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IOC 선수위원은 명예직이지만 해외 출장도 많고 임무가 막중한데요. 삼성생명 코치를 하며 일을 한다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일단 회사와 12월 까지 계약돼 있어요. IOC 선수위원 일을 하며 지도자 생활을 병행하긴 현실적인 어려움이 뒤따릅니다. 해외에서 열리는 다양한 회의도 많고 국제행사에 참석도 해야 하는 것은 물론 평창올림픽에도 집중해야 하니까요. 일단 회사와 좀 더 논의를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동료·선후배들의 반응은 어떠했나요. 축하와 우려의 시선이 있었을 텐데요.

 

지도자 생활을 이어가지 못하는 건 아쉬워했지만 IOC 선수위원으로 더 열심히 일하라는 의미로 격려를 많이 받았습니다. 전 선수들이 다양한 꿈을 가지길 바라요. 그런 의미에서 제 모습이 선수들에게 메시지를 준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제게 권한이 부여됐으니 선수들을 위해 많은 일들을 해야 되겠죠. 저는 선수·지도자·행정가를 했거나 하고 있잖아요. 경험을 바탕으로 선수들이 좋은 환경에서 운동할 수 있도록 적극 돕고 싶어요. 선수들도 눈치 보지 말고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게끔 배려해 줄 생각입니다. 선수들이야말로 ‘현장 전문가’입니다. 그들이 많은 목소리를 내야 앞으로 한국 스포츠도 더 발전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대한체육회 선수이사도 맡고 있는 만큼 저는 그런 환경을 조성해 줘야 할 책임이 있어요.”


그동안 스포츠에 좋지 않은 이슈가 많았어요. 프로 스포츠에 기생하는 승부조작이나 불법 스포츠 도박 등의 문제도 심각하고요. 이런 부분도 관심의 대상인가요?

 

“당연하죠. 많은 팬들을 형성하는 프로 스포츠에서 승부조작이나 도핑 등의 문제가 발생한다면 팬들의 실망은 원망으로 바뀔 겁니다. 인기 종목이 솔선수범해야 비인기 종목들도 그 방향대로 따라가거든요. 야구·축구·농구 모두 올림픽 종목이기 때문에 IOC 선수위원이 관장해야 하는 부분이에요. 스포츠에서 이슈가 되는 부분은 특히 지속적인 관심과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유승민 위원은 항상 낮은 곳에서 현장의 의견을 대변할 수 있도록 귀를 열고 많은 의견을 듣고 싶다고 말했다. 자신에게 투표한 유권자들에게 실망을 주지 않는 게 또 다른 목표라는 그에게 임기 8년의 IOC 선수위원은 분명 특별한 경험일 것이다. 인터뷰하면서 갑자기 생각난 질문 하나.)

 

 

IOC 선수위원은 명예직이죠? 코치직까지 내려놓으면 경제적인 부분은 어떻게 감당해요?

 

“그게 가장 고민이에요. 돈은 벌어야 하는데…. 뭐, 일하다 보면 해결 방안이 보이겠죠. 아이들도 있으니까. 사람들은 IOC 선수위원 되면 큰돈을 번다고 생각하더라고요. 전혀 그렇지 않아요. 그래서 이 일 자체가 쉽지 않은 거예요. 후회는 없습니다. 큰 책임을 느끼며 제대로 가보고 싶어요. 선수들의 대변인으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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