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의 ‘7시간’, 아베의 ‘26분’
  • 김경민 기자 (kkim@sisapress.com)
  • 승인 2016.11.22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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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도 너무 다른 한일 정상의 위기대응법

“국민의 안전을 위해 정보 수집을 철저히 하고, 피해 상황을 신속하게 파악하라고 지시했다. 지자체와도 긴밀하게 연대해 정부가 하나가 돼서 안전대책을 강구하도록 했다.”

11월22일 오전7시20분 일본 공영방송 NHK를 통해 중계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긴급 기자회견. 앞선 5시59분 일본 후쿠시마현 앞바다에서 규모 7.3의 강진이 발생한 직후 약 1시간 20분 만에 그는 카메라 앞에 섰다. 

 

우리 국민의 눈길을 끄는 것은 아베 총리를 중심으로 한 일본 정부와 방송사들의 신속한 위기 대응이었다. 이 시간 아르헨티나를 방문 중이었던 아베 총리는 모든 일정을 중단시킨 채 현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 등에게 대응에 만전을 기하라고 당부했다. 스가 관방장관은 10분 뒤인 오전7시30분 기자회견을 갖고 “강진으로 해일 경보 등이 발표된 지역 주민들은 즉시 안전한 지역으로 대피해달라”며 지진 발생 인근 지역 주민들에게 재난 상황을 알리고 안전을 당부했다. 

 

일본 정부의 발 빠른 대응에 발맞춰 언론도 신속하게 재난상황 보도로 태세를 전환했다. NHK는 이날 지진 발생과 동시에 지진 발생 사실을 자막을 통해 안내한 뒤 곧바로 정규방송을 중단하고 재해방송으로 전환했다. 

 

 

10월22일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지진과 관련해 긴급 기자회견 중인 아베 총리. ⓒ 연합뉴스

10월22일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지진과 관련해 긴급 기자회견 중인 아베 총리. ⓒ 연합뉴스

 

이날 아침에 강진이 발생한 지역은 2011년 동일본대지진이 일어났던 그 지역이었다. 1만5000명이 넘는 사망자와 2700여명의 실종자가 발생한 당시의 대지진을 연상시키는 규모였다. 후쿠시마·미야기현 동쪽 해상의 진앙 위치도, 지진 발생 직후 쓰나미 경보가 내려진 것도 비슷했다. 하지만 과거와 비교해 피해 규모는 현저히 달랐다. 지진 발생 후 후쿠시마 해안에서 높이 90cm의 쓰나미가 관측됐으나 지금까지 별다른 인명 피해는 보고되지 않고 있다.

 

올해 4월14일 일본 서부 구마모토현에서 규모 6.5의 강진이 발생했을 때 역시 일본 정부의 발 빠른 대응이 빛을 발했다. 구마모토현 강진이 발생한 시각은 밤 9시26분. 당시 아베 총리는 도쿄의 한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진 발생 소식을 듣고 아베 총리가 국민 앞에 모습을 드러내기까지 걸린 시간은 놀랍게도 ‘26분’이었다. 식사를 중단하고 총리관저로 복귀한 아베 총리는 밤 11시20분 각료들이 참석한 지진비상재해대책본부 회의를 주재한 뒤 자정이 넘은 시간 기자들 앞에서 두 번째 인터뷰를 통해 상황을 알렸다. 이후 아베 총리는 4일간 총 9차례의 브리핑을 직접 주재하며 지진 대응에 나섰다. 이때 보여준 아베 내각의 적극적 지진 대응으로 사건 직후 아베 내각의 지지율은 50%를 넘기도 했다.

 

바다 건너 일본 정부가 보여준 잇따른 위기 대응법은 재난 상황이 발생했을 때 보여준 한국 정부의 모습과 대비된다. 올해 9월 경주에서 규모 5.8의 역대 최강 지진이 발생했을 때 정부는 우왕좌왕하며 비상상황에 대비하지 못하는 모습을 여실히 드러낸 바 있다. 국민안전처의 홈페이지는 지진 발생 직후 3시간 가량 먹통이 됐으며, 국민안전처가 긴급재난문자를 보낸 시각은 규모 5.1의 첫 지진이 발생한지 8분이 지난 뒤였다. 

 

세월호 참사 1주년인 2015년 4월16일 전남 진도군 팽목항을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 ⓒ 연합뉴스

재난에 대처하는 대통령의 모습도 대조적이다. 세월호 사고가 발생한 시간은 2014년 4월16일 오전 8시50분경으로 추정되고 있다. 참사가 발생한 날, 박근혜 대통령이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방문한 시간은 오후 5시15분이었다. 사고 발생 시각부터 대통령이 모습을 드러내기까지 8시간30분 가까이 걸렸다. 박 대통령이 첫 보고를 받은 것으로 알려진 시간(오전 9시53분)부터 따진다면 약 7시간 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은 셈이다. ‘세월호 7시간 의혹’을 국민들은 지금도 명확한 대답을 요구하며 묻고 있다. 청와대는 최근 청와대 홈페이지에 만든 ‘오보․괴담을 바로 잡습니다’ 코너를 통해 “해당 일에 관저 집무실을 이용했다”고 공식 설명을 내놓았다. 하지만 구체적인 행적에 대해서는 누구도 납득할만큼 명쾌한 설명을 하지 못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사고 발생 이틀째인 2014년 4월17일, 그리고 사고 발생 19일째인 5월4일 진도 사고 현장 인근을 방문했다. 또 사고 발생 34일이 지난 5월19일이 돼서야 ‘세월호참사 대국민담화’를 발표했다. 아베 정부가 지진 대응 이후 내각 지지율 상승을 끌어낸 것과 달리 세월호 참사 전 67.2%였던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사고 직후 52.8%까지 떨어지며 14.4% 포인트나 폭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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