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 총리 내정자, “대통령 2차 담화 후 서로 연락한 적 없다”
  • 박혁진·구민주 기자 (phj@sisapress.com)
  • 승인 2016.11.28 11:20
  • 호수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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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가까이 인사청문회 준비 중인 김병준 국무총리 내정자

김병준 국무총리 내정자의 사무실이 위치한 곳은 서울시 종로구 통의동에 있는 금융감독원 연수원이다. 연수원을 등지고 오른쪽으론 율곡로가 위치해 있고, 왼쪽으론 청와대가 자리 잡고 있다. 매주 토요일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민심의 ‘최전방’ 율곡로. 그 외침에 귀를 막고 ‘두문불출’하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의 ‘벙커’ 청와대. 공교롭게 그 사이에 김 내정자의 사무실이 있다. 경찰 차벽으로 인해 국민들의 발걸음이 이곳까지 닿지 않지만, 대통령보다 더 가까운 곳에서 국민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민심’과 ‘아집’ 사이의 비무장지대라 할 수 있는 이곳에서 그는 11월2일 국무총리 후보에 내정된 후 벌써 한 달 가까이 인사청문회만 준비하고 있다. 혹자들은 대통령이 그를 지명철회한 줄 알고 있을 정도로 김 내정자의 현 상황은 애매모호하다. 탄핵 국면에 들어선 정치권에선 황교안 국무총리보단 차라리 김병준 내정자 카드를 받는 것이 좋았지 않았느냐는 말도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김 내정자는 지난 한 달을 어떻게 보냈을까. 시사저널은 통의동 금융감독원 연수원 사무실에서 김 내정자를 만나 1시간가량 그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는 국무총리 지명을 받았을 당시의 상황과 대통령과의 약속, 그리고 자신에게 쏟아지는 비판에 대해 비교적 가감 없이 말했다.

 

김병준 국무총리 내정자 © 시사저널 최준필

토요일에도 출근하나.

 

여긴 안 나온다. 토요일은 내가 나와서 (촛불집회를) 보고 싶기도 한데, 얼굴이 알려져 있으니까 자칫 무슨 일이 일어날 수 있고, 그러면 괜히 세상만 시끄러워지니까 안 나오고 있다.

 

 

말과 행동 하나하나 조심스러운 시기인 것 같다.

 

일부러 조심하려 하진 않는다. 다만 내가 말썽스러운 것을 피하려는 거다. 옛날에 공직 있을 때나 지금이나 일부러 조심하는 거 없다.

 

 

각 부처에서 올라오는 보고는 받고 있나.

 

아직 그렇게 요구할 형편도 안 되고 해서 전체적인 윤곽만(보고 있다). 필요한 부분은 선택적으로 보고 있다. 예를 들어 남중국해 현안이나 물류 철도파업 등에 대해 보고 싶다 하면 그런 것들을 내가 선택적으로 본다. 공부한다는 기분으로. 어쨌든 전체적으로 국가 과제가 산적해 있다. 너무 안타깝고 답답하고….

 

 

총리에 내정됐을 때 누구한테 연락받았나.

 

대통령한테 연락받았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내가 누구라고 이야기할 수 없고, 전화한 사람이 있을 거 아닌가. 그 사람 통해서 대통령한테 받았다.

 

 

이 시기엔 전화를 누가 했느냐도 중요한 것 같다.

 

아니 중요할 거 없다. 대통령 옆에 있는 사람이, 대통령이 전화하라 해서….

 

 

직접 통화했다는 이야기인가. 

 

통화하고 만나고 다 했지.

 

 

처음에 대통령이 뭐라 하던가.

 

총리 이야기 하셨지.

 

 

“대통령 2선으로 밀어낼 자신 있다”

 

처음 총리 제안했을 때 어느 정도 선까지 권한을 주겠다고 약속했나.

 

내가 먼저 (권한을) 요구했다. 이미 여러 차례 얘기했지만, 하여간 헌법에 보장된 총리 권한은 다 써야겠다고 했다.

 

 

권한을 받기로 약속했지만, 실제 가능할지에 대한 의문이 적지 않다.

 

대통령과의 끝없는 힘겨루기를 해야 한다. 그래서 권한을 받아내야 한다. 헌법 안에 ‘국무총리는 대통령의 ‘명’을 받아 국정을 총괄한다’고 돼 있다. 그 ‘명을 받아’라는 부분이 아주 애매모호하다. 헌법적 권한을 행사하겠다는데 대통령이 끝없이 명하고 요구하고 하면 총리는 꼼짝 못하는 거다. 게다가 대통령이 서명권, 임명권을 갖고 있다. 국무위원 제청해도 임명권이 대통령한테 있지, 조약 맺어도 그렇지, 국회 법률안 보내는 것도, 예산안 확정하는 것도 그렇지 모든 것이 대통령의 서명 없이 이뤄질 수 없다. 그러니 기본적으로 나한테 국정 총괄권을 준다는 약속을 받아야 한다. 여기에는 제청권을 100% 행사하겠다는 약속도 포함돼 있다.여태껏 100% 행사한 총리가 없었다. 그걸 받고 난 다음 매 이슈마다 대통령과 겨뤄야 한다. 뭐로 겨뤄야겠나? 명분으로 겨뤄야 한다. 그다음에 가치로 겨뤄야 하고, 그다음에 논리로 겨뤄야 한다. 마지막으로 정치적 힘으로 겨뤄야 한다. 그런데 지금 대통령이 힘을 못 쓰는 단계다. 나는 힘의 베이스를 중립내각, 여야 관계, 당·정 협의로 가져올 것이다. 이 힘으로 내가 겨뤄야 한다. 그다음엔 정책 콘텐츠를 놓고 겨룰 힘이 생긴다. 예를 들어 국정교과서는 다양성이 역사를 지배할 것이냐, 획일성이 역사를 지배할 것이냐를 논리와 가치로 다퉈야 한다. 나는 이렇게 해서 대통령을 2선으로 미는 데 월등히 유리한 입장에 있다. 내가 설득할 자신 있다.

 

 

대통령이 즉각 2선으로 물러나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은데.

 

다른 사람은 지금 다 (2선 후퇴) 선언하라 이 얘기인데, 선언한들 무슨 의미가 있나. 서명권이 대통령에게 있어서 서명 못하겠다 이러면 그만인데. 그래서 사사건건마다 다퉈야 한다. ‘명을 받아’로 해석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그래서 ‘외교 안보는 내가 잘 못하는 거니까 이쪽은 좀 하시오. 대신 사회경제 분야는 명을 받으라는 의미를 약하게 해석해 주시오’ 하는 식으로 분야로 나누면 훨씬 쉽다.

 

 

그렇게 약속했나.

 

그렇다. 대통령께 ‘나는 일하는 사람이고, 그냥 앉아 있는 사람 아닙니다. 그러니 의전 총리는 안 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다. ‘권한과 권력 내려놓는 거 아닙니다. 앞으로 남은 기간 동안은 권한도 권력도 없습니다. 노무현 정부 마지막 1년, 1년 반 어땠는지 다 압니다. 고통과 번민, 상처밖에 없는 게 이 기간입니다. 그걸 내려놓으십시오. 그 번민과 책임, 고통 다 내려놓으십시오. 그걸 총리가 다 안겠다는 겁니다.’ 내가 돌팔이 의사라도 어쨌든 국가 경영해 본 경험 있는, 치료 좀 해 본 의사인데 그냥 지나갈 수 없지 않나. 그래서 (총리 제안) 받았다.

 

 

누가 총리로 추천했는지 아나.

 

총리 물망 오른 게 이미 4~5번은 된다. 문창극씨가 총리에 내정되기 전에 이미 메이저 언론들은 1면 톱으로 김병준 틀림없다 거론했었다. 2006년에도 이미 총리 얘기가 나왔었다. 매번 이렇게 거론되다 보니 늘 총리 얘기 나오면 내 이름이 나왔다. 그래서 여러 사람이 얘기했을 거다. 결정적인 건 새누리당이라고 본다. 당에서 공식적으로 밝혔지 않나 나중에. 손학규, 김종인, 나 추대했는데 나를 1순위로 했다 하잖아. 확인은 안 했지만 난 그게 맞다고 본다. 이정현 대표에게 전화통화도 안 했지만 보도에 의하면 그렇다는 거다.

 

11월9일 김병준 국무총리 내정자가 서울 종로구 금융감독원 연수원에 마련된 사무실로 출근하며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 연합뉴스

“노무현의 선택은 언제나 나였다”

 

대통령의 두 번째 담화 이후나 11월19일 검찰 중간수사 결과 발표 전후해서 대통령과 만나거나 통화한 적 있나.

 

정말 만나고 통화하고 얘기하고 싶은데 그것이 도움이 될까 싶기도 하고, 잘못하다 오해 소지가 있을 것 같아서 내 스스로 연락도 안 했다. 그쪽에서 연락해 온 적도 없었다.

 

 

참여정부에서 핵심역할 했던 분이 내정자 됐는데, 함께 일했던 사람들 중 일부는 내정자가 참여정부 정신과 맞지 않았다라고 비판한다.

 

참여정부 가장 중심인물은 누구인가? 노무현 대통령이다. 노 대통령하고 그의 정책라인에서 논쟁들이 수도 없이 있었다. 참여정부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대통령이 신뢰를 갖고 일을 맡겼던 사람이 누구인가. 나다. 나는 5년 동안 단 2주 정도를 빼고 노 대통령과 같이했다. 노 대통령이 내 철학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누구를 내보내고 누구를 끝까지 붙들고 있었나. 2006년은 정책논란이 가장 심했던 시기였는데, 나를 총리로 지명하려 했다. 윤태영 전 비서관이 쓴 《바보, 산을 옮기다》 책에 보면 나온다. 내가 사실상 (총리로) 지명됐는데 당에서 반대하니까 그걸 한명숙 총리로 바꿨다. 그 책은 대통령 육성을 그대로 기록했는데 대통령께서 이렇게 말했다. ‘누가 총리로 가야 하느냐, 역량이나 인간적으로나 정책이나 내가 제일 신뢰할 수 있는 사람, 그 사람이 가야 제대로 총리를 할 수 있다. 그럼 이야기 끝났네, 김병준밖에 없네.’ 누가 참여정부 정신에 부합하고 누가 정신에 어긋났는지 모르겠다. 나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중간에 다 나갔다. 그럼 내가 노무현 대통령을 속인 건가? 노 대통령이 나한테 속을 사람인가.

 

 

친문 또는 친노라고 하는 사람들이 가장 반대하는 것은 맞지 않나.

 

그분들은 정치하는 분들이고, 나는 정책을 하는 사람이다. 정치적인 이유는 알 수 없다. 정치하는 사람들의 그 계산은(알 수 없다). 난 제주해군기지,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서비스산업 육성문제 등에 있어서 입장을 단 한 번도 바꾼 적 없다. 그분들은 제주해군기지도 다른 생각 갖고 있고, 한·미 FTA도 그렇고, 서비스산업도 다른 생각 갖고 있었지 않나. 참여정부의 정신은 좌우로 나눌 수 없다. 그걸 이해하려 하지 않고 전통적인 좌우로 자꾸 나눠서는 참여정부 정신을 이해할 수 없다. 난 그 사람들이 노 대통령의 고민까지 오르지 않았다고 본다. 누가 옳고 그르다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인데, 그 선택에 있어서 서로 다른 길을 가는 거였다. 결정적인 것들, 큰 흐름들, 시장경제에 대한 생각이 다른데, 노 대통령의 어록을 한 번 봐라. 어느 쪽이 노무현 정신에 더 맞는지. 그쪽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겠지만 노 대통령의 선택은 언제나 나였다. 그래서 끝까지 나를 옆에 두고 있었다. 5년 동안.

 

 

참여정부 당시 삼성을 대변했다는 비판도 있다. 정태인 전 비서관은 SNS에서 대놓고 이 부분을 비판했다.

 

소위 금산법(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 처리문제로 대립이 있었다. 그때 에버랜드가 삼성 주식을 과도하게 갖고 있었는데 강제매각을 순차적으로 시키느냐, 당장 시키느냐, 이것도 선택의 문제다. 어차피 법률을 위반해 과도하게 갖고 있으니까 매각을 해야 했다. 정태인씨는 아마 모를 거다. 당시 생명보험회사 상장시키고 있는 중이었다. 상장이 되면 가치평가가 자연히 이뤄지고, 소송도 끝나고 하니까 그때까지 의결권을 제한시켜 놓은 다음에 매각하는 게 순서다. 소위 진보라는 사람들이 ‘그걸 뺏어서 매각하면 되지 뭐가 문제냐’ 하는데 세상이 그렇지 않다. 그게 우리 자본주의의 기본 정신이고, 대한민국이 자본주의 부정하는 게 아니잖나. 그래서 의결권을 제한시켜 놓고, 상장하면서 매각시키는 게 맞는 거였다.

 

 

박근혜 대통령하고는 철학이 완전히 다를 것 같다.

 

위기 국면이 없었으면 나를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편한 세상인데 뭐 땜에 불편한 사람을 데려오겠나. 위기 국면을 탈피해 보겠다는 생각도 있었을 거고. 또 한편으로 그러면서 협치(協治)를 한번 해 볼까 하는 생각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아무한테나 국가를 맡길 수 없으니 어떻게든 문제를 풀 수 있는 사람으로, 복합적이었을 거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위기 국면 아니면 나를 왜 찾았겠나.

 

 

총리가 될 가능성이 어느 정도 있다고 보나.

 

내가 가능성을 스스로 가늠해 본 적이 없다. 애초에 총리 인준 쉽게 될 거라고 받은 것도 아니고. 나는 다만 국가가 아픈데, 그냥 지나갈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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