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현 떠난 그린 누가 평정할까
  • 안성찬 골프 칼럼니스트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11.28 15:45
  • 호수 141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17 KLPGA 전망, 고진영·김민선·장수연 등 주목…“특정 선수 우승 몰아가기 힘들 것”

미국에서 ‘인비천하’가 호령했다면 국내는 ‘성현천하’가 그린을 장악했다. 묘하게도 미국과 한국의 여자프로골프계는 ‘양박(朴) 시대’로 한 해를 마감했다. 특히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는 박성현(23·넵스)이 ‘대세’를 이루며 그린을 평정했다. 그런 그가 한국을 떠나 미국으로 무대를 옮긴다. 내년부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에서 활약하는 박성현은 국내 대회 및 한국·일본·유럽·호주 등 4개 투어 국가대항전을 포기하고 2주간 미국으로 날아갔다.

 

박성현은 32개 가운데 20개 대회만 출전하고도 7승을 올렸다. 다승왕에 평균타수 69.64타 최고 기록, 단일 시즌 최다 상금 13억3300만원까지 대기록을 세웠다. LPGA투어 진출을 준비하느라 최종전 ADT캡스를 포기하는 바람에 대상에서 고진영(21·넵스)에게 1점 뒤져 2위에 그쳤다.

 

그는 확실히 남다른 골프를 했다. 그와 맞상대할 선수가 거의 없었다. 엄청난 장타력에다 핀을 보고 바로 쏘아올려 볼을 홀에 붙이는 그의 능력은 국내에서는 최강이었다. 그와 한 조에서 플레이하는 선수는 괜히 주눅이 들 정도였다. 그는 뛰어난 기량으로 현대차 중국여자오픈에서 당시 최강자 김효주(21·롯데)를 제압한 데 이어 4월 삼천리투게더오픈과 넥센·세인트나인마스터즈, 5월 두산매치플레이, 8월 제주삼다수마스터스와 보그너MBN여자오픈, 9월 한화금융클래식 등에서 우승컵을 추가하며 ‘박성현 시대’를 열었다. 우승 확률 35%, 톱10 피니시율 65%를 기록했다.

 

초청받아 출전한 LPGA투어에서도 그의 이름은 빛났다. 7회 출전해 68만2000달러를 손에 쥐면서 LPGA투어에 ‘무혈입성’했다. US여자오픈 공동 3위와 에비앙 챔피언십 공동 2위 등 특히 메이저대회에서 신바람을 일으켜 세계 골프인들에게 이름을 각인시켰다.

 

박성현 ⓒ 연합뉴스

국내 그린 ‘춘추전국시대’ 

 

그런데 이제 박성현이 없다. 누가 그의 자리를 꿰찰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춘추전국시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박성현처럼 ‘독주체제’를 구축할 선수가 없다. 기량이 상향조정돼 누구나 우승할 수 있는 실력이 됐다. 따라서 특정 선수가 우승을 몰아가는 일은 내년 시즌에는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선수는 고진영이다. 박성현이 없는 국내 메이저대회에서는 고진영이 늘 우승했다. 박성현이 한 번은 불참하고, 한 번은 기권한 대회였다. 대상을 차지한 고진영은 총상금 12억원의 BMW레이디스와 메이저대회 하이트진로챔피언십에서 정상에 올랐다. 시즌 상금 10억220만원을 획득해 랭킹 2위, 평균타수도 70.41타로 2위다.

 

기량만큼 우승을 못했지만 김민선5(21·CJ오쇼핑)도 눈여겨봐야 한다. 175cm의 훤칠한 키에 박성현만큼이나 장타력을 지니고 있다. 퍼팅(45위)이 약한 것이 흠이다. 이번 겨울에 전지훈련을 통해 이를 극복하면 장타력을 주무기로 국내 무대를 주름잡을 거목으로 손색이 없다. 평균 비거리가 254.72야드로 장타부문 2위다. 1승을 거뒀고 상금랭킹 8위에 올랐다. 장타뿐 아니라 아이언도 잘 쓴다. 아이언의 정확도를 나타내는 그린적중률이 76.49%로 랭킹 4위다.

 

장수연(22·롯데)도 국내 그린을 이끌고 갈 재목이다. 장타력과 퍼팅 등이 조금 떨어지지만 날카로운 아이언샷을 구사한다. 그린적중률이 75.84%로 랭킹 5위다. 특별히 잘하는 것은 없어 보이지만 모든 샷을 골고루 잘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안정적인 경기운영으로 시즌 2승을 거뒀다. 상금랭킹 3위다. 2승을 포함해 톱10이 12회다.

 

배선우(24·삼천리)도 숨은 인재다. 비거리는 246.01야드로 32위에 머무르고 있지만 페어웨이 안착률과 그린적중률이 뛰어나다. 평균타수 71.13타로 6위, 상금랭킹 5위를 차지했다. 배선우는 E1채리티에 이어 메이저대회 이수그룹 KPGA 챔피언에서 우승컵을 안았다.

 

중견에서는 이승현(25·NH투자증권)과 김해림(27·롯데)이 볼만하다. 샷 감각은 뒤늦게 물이 올라 시즌 2승을 챙기며 상금랭킹 상위권에 들었다. 특히 이승현은 공부와 병행하다가 고교 때부터 골프를 본격적으로 했다. 티샷의 정확성과 퍼팅이 좋다. 퍼팅은 70.94타로 랭킹 3위다. 상승 분위기를 타면 스코어를 몰아치는 데 일가견이 있다. 상금랭킹 4위에 올랐다.

 

김해림은 아이언이 깔끔하다. 그린적중률 71.10%로 랭킹 5위다. 상금랭킹 6위에 톱10 피니시가 10개다. 이승현과 김해림은 ‘늦깎이’지만 경기운영이 돋보인다. 트러블 상황에서도 플레이 및 심적으로 안정적이다. 흔들림이 거의 없다. 때론 공격적으로, 때론 방어적으로 공략시점을 잘 잡는 것이 강점이다.

 

고진영(왼쪽), 김민선(오른쪽) © LPGA 제공

‘빅 신데렐라’ 출현할까

 

돋보이는 루키는 이정은6(19·토니모리)과 이소영(19·롯데)이다. 우승 없이 신인상을 확정한 이정은6은 171cm의 키에 비해 드라이브 비거리는 그리 길지 않다. 평균 드라이브 비거리 247.94야드로 랭킹 22위다. 퍼팅이 조금 약한 대신에 아이언의 그린적중률이 73.67%(16위), 평균타수가 71.68타(13위)로 좋아 나름대로 기대해 볼 만한 선수다. 아직 샷 감각이나 경기 운영능력이 부족하지만 이를 잘 극복하면 좋은 성적을 낼 선수로 손색이 없다.

 

1승을 하고도 신인상을 놓친 이소영은 252.29야드(5위)의 장타력에 힘입어 그린적중률이 75.31%로 5위에 올라 있다. 다만 퍼팅이 최대 약점이다. 31.20개로 93위에 그쳤다. 결정적일 때 짧은 퍼팅을 놓쳐 스코어를 줄이지 못한다. 평균타수도 71.90타로 19위에 머물러 있다. 하지만 그의 장기인 장타력을 잘 살려낸다면 내년에 빛을 발할 선수임에 틀림없다.

 

비록 우승권에서는 멀어졌지만 국가대표 출신의 지한솔(20·호반건설)과 박결(20·NH투자증권)도 언제든지 그린스타로 발돋움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 선수다. 지한솔은 올 시즌 고른 기량으로 상금랭킹 23위에 올랐다. 페어웨이안착률이나 그린적중률 등이 20위권으로 안정적이고, 평균타수도 72.03타로 20위에 랭크돼 있다. 기대를 모았던 박결은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고 상금랭킹 32위에 그쳤다. 드라이브 정확도가 뛰어나다. 페어웨이안착률이 82.57%로 2위. 하지만 아이언샷의 정확성이 떨어지는 것이 흠이다. 그린적중률은 69.54%로 49위다.

 

올 시즌은 지난해보다 대회가 3개 늘어나 32개로 역대 최다 대회였다. 총상금도 207억원으로 역대 최고 총상금액이었다. 특히 3월 중국에서 월드레이디스챔피언십과 베트남에서 더달랏레이디스를 열면서 KLPGA투어를 키워가며 ‘골프한류’를 이끌고 있다. 뚜껑을 열어봐야 알겠지만 선수들은 이번 전지훈련에서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내년도 성적이 크게 달라질 것이다. 장기 레이스를 펼쳐야 하는 투어에서 기량에다 체력 싸움까지 보태졌기 때문이다. 내년에 전인지(22·하이트진로)나 박성현 같은 ‘빅 신데델라’가 출현할는지 벌써부터 궁금하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