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항쟁 세대’가 새로운 대한민국 이끌어간다
  • 송창섭 기자 (realsong@sisapress.com)
  • 승인 2016.12.05 09:13
  • 호수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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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시민운동’ 새 지평 연 ‘11월 항쟁’…“여론 다스림이 불가능해진 정치권은 엄청난 충격”

‘2016년 11월26일 토요일, 서울 광화문광장은 말 그대로 인산인해(人山人海)였다. 촛불을 들고 ‘정권 퇴진’을 외치는 시민들의 얼굴에는 비장함이 묻어 있었다. “박근혜 정권을 무너뜨리는 방법은 ‘인해전술’밖에 없다”는 누군가의 외침은 현실이 됐다.

우리 정치사에서 1960년 4·19혁명은 시민혁명 1세대, 1987년 6월 항쟁은 시민혁명 2세대로 기록돼 왔다. 이제 2016년 11월 지금, 우리가 참여하고 목격하고 있는 이 대중의 외침은 3세대 시민혁명으로 역사에 기록되고 있다. 특히 ‘11월 항쟁’은 이제까지의 시위문화와는 확연히 다른, 시민운동사의 새 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분명 의미가 있다. 그래서인지 혹자는 계층과 이념, 지역을 뛰어넘은 11월 항쟁이야말로 ‘대의(代議) 민주주의’의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이라고 말한다.​

© 사진공동취재단

2016년 11월은 대한민국 헌정사에서 ‘전환기’로 평가받는다. 200만 명이라는 대규모 인원이 서울 광화문을 비롯해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 반정부 시위를 펼친 것 자체가 유례없는 일이다. 무엇보다 외신들은 시민의 피와 땀이 만든 1960년 ‘4·19혁명’과 1987년 ‘6월 항쟁’과 달리, 이번 ‘11월 항쟁’에서 보여준 대중의 비폭력 저항에 아낌없는 찬사를 보낸다. 그래서일까. 일부에서는 이번 11월 항쟁을 가리켜, ‘21세기 세계 시민운동’의 새 지평을 연 사건이라는 의미를 부여한다.

 

11월 항쟁은 앞선 시민혁명과 여러 면에서 대비된다. 1960년 대구 시내 학생들이 주도가 된 2·28대구학생시위에서 출발한 ‘4·19혁명’은 마산학생시위, 고려대생시위로 이어지면서 이승만 정권 붕괴의 도화선이 됐다. 그런 면에서 4·19혁명은 한국 정치사에서 성공한 첫 시민혁명으로 평가받는다.

 

1987년 ‘6월 항쟁’을 주도한 세력은 박정희 정권의 경제개발과 반공교육을 동시에 맛본 세대다. 하지만 1980년 신군부가 자행한 광주민주항쟁 진압의 참상이 알려지면서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싹텄다. 1987년 6월, 재야세력·대학생·지식인들의 주도에 화이트칼라 등 중산층이 가세하면서 전국적인 반정부 시위로 발전했다.

 

반면 11월 항쟁은 앞선 두 번의 시민혁명과는 다르게 주도 세력이 없다는 게 가장 큰 특징이다. 조직이 동원되지 않았으면서도 규모 면에서 사상 최대였다. 최근 20~30년간 우리 사회는 11월 항쟁처럼 연령·종교·이념을 아우르는 ‘범국민적 시민혁명’을 경험해 보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1960년 4월19일 경찰의 무차별 발포로 학생들이 곳곳에서 피를 흘리게 되자 서울 수송초 학생들이 총을 쏘지 말라고 외치며 데모에 가세했다. © 연합뉴스

민중가요 사라지고 패러디 대중가요 등장

 

무엇이 대중을 광장으로 모여들게 만든 것일까. 우리가 생각하는 전통적인 시위문화에서는 쉽게 답을 찾기 힘들다. 11월12일 촛불집회 현장에서 만난 경찰청 소속 정보관은 해답을 ‘문화’에서 찾았다. 그는 “대중이 느끼는 이번 시위는 정치집회였다기보다 ‘거대한 문화공연’이었으며, 그랬기에 가족 단위나 커플들이 쉽게 참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11월19일 광화문 촛불집회 현장을 찾은 김옥희씨(42)도 “민주주의를 즐기는 젊은 세대의 방식이 많이 달라졌다”며 “민중가요가 사라지고 대중가요를 개사한 노래가 인기를 끈 것이 달라진 시위문화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설명했다.

 

물리적 충돌 없이 평화적으로 집회가 진행됐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또 다른 서울지역 경찰서 소속 정보관은 “공직생활 동안 이렇게 많은 인파를 본 것은 처음”이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11월26일 청와대로 가는 길목인 내자동로터리에 있는데, 시민 한 명이 계란 3판을 놓고 가는 거예요. 경찰을 향해 던지라는 뜻이었겠죠. 그런데 지나가던 시민들이 그걸 도로 한편으로 치우더라고요. 또 집회 현장 부근 식당에서 점심을 먹는데, 시위에 참가한 시민들이 저희를 보고 ‘여러분, 고생이 많네요’라고 격려해 주는 것을 처음 봤습니다. 욕먹어도 모자랄 판에 칭찬을 받다니요.”

 

물리적 충돌 없이 끝났다는 것은 여러 면에서 시사점을 던져준다. 목적 달성을 위해 폭력은 불가피하다는 과거 방식과는 질적으로 달라진 모습이다. 박진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국민행동) 공동상황실장의 말이다. “보통 집회가 끝나면 참가자들이 ‘왜 (집회를) 끝내느냐’며 항의하는데, 이번 시민항쟁은 소집과 해산에 대해 시민들의 불만이 거의 없었어요. 한쪽에서 전경버스 차벽에다 스티커를 붙이면, 다른 한쪽에서는 이를 떼는데도 아무런 갈등이 없는 것을 봤어요. 시민들 스스로가 ‘폭력’에 대한 자기검열 의식이 강했던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11월 항쟁’의 주도 세력을 꼽는다면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라고 할 수 있다. 집회 참가 독려부터 행사 후 토론까지 전 분야에 걸쳐 SNS는 일종의 소통창구 역할을 했다. 2008년 광우병 집회 때 진가를 보인 ‘실시간 온라인 생중계’는 이미 ‘구시대 기술’로 취급받으며 뒤로 밀렸다. 주역으로 올라선 SNS 공간에는 단문과 사진으로 만든 패러디물이 넘쳐났다.

SNS가 시민사회의 소통 도구를 넘어 거대한 시민운동의 동력으로 자리 잡았다는 것은 기성 언론에 대한 불신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재신 중앙대 교수(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는 “지상파·케이블TV와 오프라인 신문·잡지 등 기존 미디어 체제에서 대중은 뉴스 소비자에 불과하지만, SNS에서 대중은 생산자와 소비자 역할을 동시에 한다”면서 “기성 언론만 관리하면 여론은 얼마든지 다독일 수 있다는 정치권에 ‘11월 항쟁’은 큰 충격이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부에서는 SNS를 활용한 이번 11월 항쟁을 가리켜 집단지성이 만든 ‘세계 최초의 무혈 시민혁명’으로까지 치켜세우고 있다. 2008년 오마이뉴스가 주최한 세계시민기자포럼에서 《참여군중》을 쓴 미래학자 하워드 라인골드는 “한국은 대다수의 국민이 기술 활용 능력을 갖췄으며, 최첨단 기술에 대한 접근이 보장돼 있다. 이런 요소들이 한국을 기술정치, 그리고 사회운동의 결정체라 할 수 있는 참여군중의 기반이 가장 잘 마련된 국가로 만들고 있다”고 평가한 바 있다.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으로 촉발된 1987년 6월 항쟁은 전두환 군부 독재의 종언을 알린 시민혁명이 됐다. © 연합뉴스

SNS는 朴 대통령 등 기성 정치 풍자로 가득

 

단적으로 정치 스타트업(벤처기업 초기 모델) ‘와글’은 SNS라는 집단지성을 활용, 단시간 내 ‘11월 항쟁의 스타’로 성장했다. 박근혜 대통령 연설을 패러디한 인터넷 사이트 ‘국민의 뜻이 우주의 뜻(www.cosmospower.net)’은 개설(11월17일) 후 2주 만에 회원 수가 1만 명을 훌쩍 넘어섰다. 이와는 별도로 와글은 ‘박근혜게이트닷컴(www.parkgeunhyegate.com)’도 운영하고 있다.

 

이외에도 11월 항쟁에는 여러 온라인 단체가 위력을 발휘했다. △우주당(우리가 주인이 되는 당) △정알못(정치라고는 1도 모르는) △순실길 △10대 청소년들의 모임인 나비정치연구소(나아가 비상하는 연구소) △무당파(지지 정당이 없는 모임) 등은 최근 온라인에서 화제를 모으는 커뮤니티다. 이들이 내세우는 것은 ‘대중이 참여하는 디지털 민주정치의 복원’이다. “기성 언론이 생각하는 20대 대학생들은 정치에 관심이 없는 세대예요. 요즘 세대 말로 하면 정알못(정치를 알지 못하는) 세대죠. 정치충(극단적인 정치 세력)이라고 불리는 이도 있지만, 다수가 ‘정알못’인 건 맞아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게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이후 태어난 우리 세대는 민주주의보다 개인주의를 먼저 배웠어요. 이전 세대처럼 민주주의의 승리도 경험하지 못한 채 자본주의에 길들여졌죠. 그런데 ‘최순실 게이트’를 보면서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동시에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것을 경험했고, 그게 사람들을 광장으로 모이게 한 겁니다.” 천영훈 와글 프로젝트 매니저의 말이다.

 

집회 현장에 등장한 ‘민주묘총’ ‘장수풍뎅이연구회’ ‘범깡총연대’ ‘국경없는어항회’ ‘화분안죽이기실천본부’ 등 이색 커뮤니티는 11월 항쟁이 ‘탈이념적 성향’을 보였다는 방증이다. 이념 대신 취미와 기호로 대중이 구분되는 새로운 시민사회의 등장을 예상해 볼 수 있다. 행사를 주관한 국민행동에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디자인한 패러디물이 쇄도하고 있는 것도 과거에는 찾아볼 수 없었던 모습이다.

 

그리고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는 자발적인 후원금 모금으로 이어졌다. 국민행동에 따르면, 첫 대중 집회였던 11월5일 현장에서 7000만원의 후원금을 모았으며, 11월19일에는 하루 만에 2억원의 후원금을 모으는 성과를 거뒀다. 박진 실장은 “모금함 속 지폐를 세는 데만 5~6시간, 이를 은행 창구로 가져가 기기로 세는 데만 꼬박 3시간이 걸렸다”고 말했다. 좋은 일에 써달라며 국민행동 계좌로 1000만원의 후원금을 내는 손길도 늘고 있다. 트랙터를 타고 상경한 전국농민회총연맹 소속 ‘전봉준투쟁단’을 위해 트랙터 기름값을 후원하자는 자발적인 모금행사가 호응을 얻은 것도 예전과는 다른 모습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가 경험한 전통적 시위의 중심에는 노동·경제적 이슈가 자리 잡고 있었다. 사회운동의 또 다른 축인 시민운동 역시 여성·환경이라는 이슈가 주도하다 보니 다수의 공감대를 이끌어내기에 한계가 있었다. 반면, 이번 11월 항쟁이 계층·연령을 불문하고 강력한 응집력을 보인 이유는 ‘정치+생활형 이슈’를 선점하고 있었기 때문으로 봐야 한다. 학계에서는 “11월 항쟁의 표면적인 목표는 ‘퇴진·하야’지만, 이런 거대 담론이 나오기까지는 ‘불평등’이라는 우리 사회의 갈등요소가 촉매제 역할을 했다”고 평가한다. 안진걸 참여연대 처장은 “학교에 가지 않고, 말만 타고도 명문대에 입학한 ‘정유라’가 1020세대의 공분(公憤)을 샀다면, 이를 비호하고 대기업으로부터 이권을 챙긴 ‘최순실’은 학부모이자 서민인 30~60대의 분통을 터트리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최순실 게이트는 △입시경쟁 △취업난 △고용불안이라는 우리 사회에 내재된 갈등 요인을 포괄적으로 담고 있다는 것이다. 또 리먼 사태 이후 계속된 불황과 집값 상승, 대기업 횡포 등도 대중의 분노를 분출하게 만든 발화점이 되기에 충분했다.

 

11월19일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4차 촛불집회에 참석한 중·고등학생들이 서울 종로구 사직로 일대를 행진하고 있다. © 시사저널 고성준

혼술·혼밥 세대가 ‘혼시’로 이어진 에너지

 

집회 현장에 나팔을 들고 나가 거리 행진에 나서는 ‘나팔부대’의 대표자 이아무개씨와 회원들은 평일 점심 교대로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서울 강남역 일대에서 ‘박근혜 대통령 하야’를 외치는 피켓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씨는 현재 서울에서 홍보대행사를 운영하고 있다. “평일 낮 강남역 부근에서 만나는 50~60대 여성들은 상당수가 서울 강남에 사는 사람들일 겁니다. 그런데 그들이 저희 손을 잡고 가장 많이 하는 말이 뭔지 아세요? ‘배신’이라는 말이에요. 믿는 도끼에 발등 찍혔다는 거죠. 혼술(혼자 술 마시기)·혼밥(혼자 밥 먹기) 세대가 혼시(혼자 시위 참여하기)로 이어지면서 만든 에너지는 엄청났습니다.” 차와 신호등으로 가득한 서울 도심에 거대한 광장문화가 생기면서 대중의 엄청난 에너지가 일시에 표출됐다는 점도 광화문의 열기를 끌어올리는 데 일조했다.  

하지만 11월 항쟁으로 표면화된 상처를 어떻게 치유하느냐는 우리에게 남겨진 숙제다. 전문가들은 다양한 사회 갈등 요소를 중간에서 조정하는 정부 산하 공적 기구가 전혀 없다는 점을 안타까워한다. 노무현 정부 때 있었던 대통령 자문기구 지속가능발전위원회 갈등조정소위원회는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녹색성장위원회로 편입됐다. 이명진 고려대 교수(한국사회연구소장)는 “2008년 광우병 사태와 이번 최순실 게이트의 공통점은 의사결정 과정에서 대중이 철저하게 무시됐다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면서 “‘갈등은 비생산적인 것이기 때문에 무조건 나만 따라오면 된다’는 식의 보수정권 소통방식도 갈등을 키운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서울 동교동에 위치한 미디어카페 ‘후’에서는 주말마다 시국 시민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페이스북 동호회 ‘꼭대구사(꼭두각시로부터 대한민국을 구하는 사람들의 모임)’가 주최한 11월27일 모임에는 팟캐스트 황심소(황상민의 심리상담소)를 운영하는 황상민 전 연세대 교수가 초대됐다. 황 전 교수는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봤던 ‘대중은 개·돼지·노예’라는 사실을 최순실 국정 농단이 그대로 보여줬다는 점에 있어서 우리 사회의 내적 상처는 생각보다 심각하다”면서 “대통령 퇴진 이후 11월 항쟁을 우리 사회의 긍정적인 에너지로 바꾸는 활동이 지속돼야 한다”고 말했다.

 

또 이번 11월 항쟁이 4·19혁명, 6월 항쟁과 같은 반열의 시민혁명이 되기 위해서는 앞으로의 정국 흐름이 중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신진욱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4·19혁명, 6월 항쟁과 달리 지금 정국은 비박계·검찰·보수언론이 손잡고 친박과 박근혜 정부를 교체하는 움직임에 불과하기 때문에, 지배권력 전체를 뒤바꾸지 않는다면 11월 항쟁은 하나의 정치적 해프닝에 그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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