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는 벌써 재선을 대비한다”
  • 김원식 국제문제 칼럼니스트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12.07 17:19
  • 호수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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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꾼’ 트럼프, 공약 벗어난 유화책 쓸 것으로 전망돼

“사랑에 굶주리고 인정받고 싶은 욕망이 있는 사람이다. 놀라울 정도로 무정형(unformed)이며, 무엇으로도 만들 수 있는 유연한(pliable) 찰흙 같은 성격의 소유자다.”

11월22일, 미국 대통령 당선인인 도널드 트럼프가 뉴욕타임스를 방문했을 때, 그를 만났던 이 신문의 저명한 칼럼니스트인 프랭크 브루니의 소감이다. 트럼프가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대선 기간 자신의 당선을 반대했던 거대한 언론의 한 축인 뉴욕타임스를 전격 방문하고 기자들은 물론 칼럼니스트들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는 그 자리에서 자신의 정적이었던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에 대한 ‘이메일 스캔들’도 재수사를 지시하지 않을 것이며, 정치 보복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미 중앙정보국(CIA)의 물고문 필요성도 효과가 없을 것 같다며, 자신이 대선 기간 내내 강조했던 여러 주장을 거둬들이는 모양새를 취했다. 트럼프의 이러한 유화책에 한때 가장 강력한 비판론자였던 뉴욕타임스 기자들이 기대감(?)을 표시하는 것은 당연했다. 트럼프를 지지하지 않았던 많은 사람들이 그의 당선으로 인해 깊은 충격에 빠졌으며, 국가 분열을 우려하고 있다는 사실을 트럼프는 잘 알고 있다. 최근 트럼프의 행보는 ‘안심하라’는 메시지나 마찬가지다.

 

트럼프가 추수감사절을 하루 앞둔 11월23일 “이번 추수감사절에는 분열을 치유하고 하나 된 국가로 나가며 공동의 목표와 공통된 결심으로 더 강해지기를 기도한다”고 발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또 트럼프가 외교정책의 핵심 요직 중 하나인 유엔 대사로 경선 기간 대표적인 ‘반(反)트럼프’ 인사였던 인도계 이민자 출신인 니키 헤일리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지사를 전격 발탁한 것도 마찬가지다. 트럼프가 백인우월주의의 지지를 거부하지 않은 것을 강하게 비판하며 “주지사 입장에서 원하지 않는 모든 것을 갖춘 대선 주자”라고 비판한 헤일리를 끌어안은 것이다. 공화당의 ‘떠오르는 샛별’로 불리고 있지만, 외교 경험이 전무한 헤일리를 전격 발탁한 것은 자신의 인종, 성, 이민자 차별 이미지를 희석하겠다는 고도의 전략이다. 즉, 자신을 지지하지 않은 인사도 얼마든지 수용할 수 있다는 포용력을 내세운 것이다.

 

미국 대통령 당선인인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 전과 후의 태도에 변화가 올 것으로 예상된다. 당선이 확정된 후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면담하는 트럼프 © AP 연합

당선 뒤 행보에서 ‘변화’ 감지돼

 

결국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대통령에 당선된 트럼프는 변할 것이라는 얘기다. 쉽게 말해 그가 대선 과정에서 여러 과격한 공약을 내세웠지만, 그대로 이행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것이다. 신(新)고립주의로 불리는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내세우며 여러 파격적인 정책을 주장했지만, 실제로 대통령이 된 다음에는 이를 현실화하는 데 분명 한계가 있다. 대통령으로서는 현실적으로 국내 정책이든 대외 정책이든 마치 혁명처럼 일거에 모든 제도를 바꿀 수는 없으며, 특히 여러 이해집단의 이익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또 트럼프가 이른바 ‘세계 경찰’ 역할에서 발을 빼고 미국 경제를 중시하겠다는 것도 미국이 기존에 구축해 놓은 리더십을 스스로 무너뜨려 미국 경제에도 오히려 악영향을 미치고 트럼프가 내세우는 ‘미국 우선주의’도 망가뜨릴 수 있다는 주장이다. 따라서 트럼프는 어쩔 수 없이 기존 공약에서 한참 벗어나는 유화적인 정책을 펼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러나 여기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재미있는 사실은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됐지만, 미 CIA나 중요 정보기관의 일일 기밀정보 보고를 거부한다는 것이다. 트럼프 당선 이후 정보기관들은 세계정세와 안보 위협을 담은 일일 브리핑을 준비했지만, 트럼프가 들은 브리핑은 고작 두 차례에 불과했다. 당선 직후 세계 정상들과 통화하면서도 국무부의 사전 브리핑을 받지 않아, 국무부 직원들이 당황했던 것도 마찬가지다. 트럼프는 사의를 표명한 국가정보국(DNI)의 제임스 클래퍼 국장이나 다른 오바마 행정부의 고위 정보기관 관료들도 만나지 않았다. 외교안보를 소홀히 한다는 비판도 제기되지만, 어쩌면  분명히 자기 의지대로 하겠다는 트럼프 고집의 산물일 가능성이 더 크다.

 

트럼프는 정보기관의 보고는 받지 않으면서도 최근 제프 세션스 상원의원을 연방수사국(FBI)을 관할하는 초대 법무장관에 임명했으며 마이클 플린 전 국방정보국(DIA) 국장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으로, 마이크 폼페오 하원의원을 CIA 국장에 각각 발탁했다. 미국의 중심 정책인 외교정책을 좌지우지하는 안보 직책에는 강경파로 분류되지만 자신의 구미에 맞는 인물을 내세웠다. 이들은 오바마 행정부 시기에 중동이나 이란 등에 대한 개입주의적 외교정책에는 강력하게 반기를 든 인물이다. 트럼프가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자기 색깔을 분명히 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워싱턴 오물’ 기용하는 트럼프에 대한 우려

 

트럼프가 대선 기간 자신을 강력하게 반대했던 미트 롬니 전 대선후보를 국무장관 후보로 고려하는 것도 유화 정책이라기보다는 헤일리 주지사의 유엔 대사 발탁처럼 공화당 본류와 모양새를 맞추려는 고도의 전략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따라서 트럼프는 취임 이후 자신의 대표적인 강경 공약인 오바마케어 폐기나 이민 장벽 건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폐기,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등의 정책을 그대로 강력하게 추진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트럼프가 백인 남성이 중심인 자신의 지지 기반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한 정치 분석 전문가는 이에 대해 “트럼프는 굉장한 정력(energy)의 소유자”라며 “그는 이미 재선을 생각하고 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내년 대통령 취임 때 만 70세인 트럼프가 4년 후에 재선에 도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트럼프는 반드시 자신이 내세운 공약을 이행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하지만 트럼프가 대선 기간 약속한 ‘개혁’을 이행할지에 대한 우려는 더 커지고 있다. 현실적으로 트럼프가 ‘타협’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대선 기간 내내 이른바 ‘워싱턴 기득권 세력 타파’를 외치며 기존 정치권의 부패를 척결하겠다는 것을 최대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실제로 국정 운영은 이들과 함께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론이다.

 

당장 트럼프 정권 인수위원회에 이른바 ‘로비스트’로 분류되는 대규모 인사가 참여하면서 이러한 전망은 현실이 되고 있다. 또 미국 경제의 핵심을 이끌어갈 재무장관과 상무장관에도 기업 사냥꾼 경력을 가지고 있는 월가(Wall Street) 출신들을 임명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트럼프가 이미 타협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새로 기용되는 인사들의 재산만 합쳐도 ‘초갑부 내각’이 된다는 우려가 이를 방증하고 있다. 기득권 타파를 외치며 백인 노동자층 등 서민의 편에 서서 “워싱턴의 오물을 걸러내겠다”고 약속한 트럼프가 그 오물의 중심 세력들을 행정부에 기용하는 현실이다. 대선 기간 거의 힐러리 클린턴 편에 섰던 월가가 이제는 트럼프를 반기며 오히려 기업 성장을 위해 ‘탈(脫)규제’를 기대하며 환한 웃음을 짓고 있는 모습이다.

 

미국 대선 전인 11월4일 미국 오하이오에서 유세 중인 트럼프 © AP 연합

2년 후 중간선거로 ‘1차 평가’

 

이는 고스란히 트럼프 행정부의 인사에 대한 우려로 이어진다. 트럼프가 가족들이나 친분 있는 인사들을 무작정 행정부 요직에 임명하면서, 과연 공약을 지킬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가 고개를 들고 있는 것이다. 특히, 행정 경험이 전혀 없는 대기업 로비스트 출신들을 정부 요직에 기용하면서 트럼프가 과연 ‘기득권 세력’을 타파할 수 있겠냐는 우려가 많다. 아직은 트럼프가 취임하기 전이고, 그의 정책이 구체적으로 나온 것은 아니다. 그러나 트럼프가 대통령 당선인으로서 차기 정부에 임명하고 있는 인물의 면면을 살펴본다면, 그가 애초에 공약한 내용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라는 것도 사실이다. 국제관계는 논외로 하더라도 국내 경제 문제는 월가와 급속히 친해지고 있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트럼프 측은 국내 경제 활성화를 이유로 기업 환경 조성을 그 배경으로 내세우지만, 막상 트럼프를 지지한 백인 노동자층이 싸늘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이유다.

 

따라서 트럼프가 과연 어떠한 모습으로 나타날지는 그가 취임 초기에 내놓을 정책을 봐야 한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다만 자신의 지지층이 분명한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됐다고 해서 바로 기득권과 타협하는 모양새를 취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특히, 트럼프가 당장 취임 2년 후면 의회 중간선거라는 1차 평가를 받는 것도 그가 타협보다는 자신의 지지 기반을 바탕으로 강경한 정책에 매달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사업가 기질을 가지고 있고 건강을 자신하는 트럼프가 재선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미국 국익 우선주의를 내세운 트럼프가 경제적으론 보호무역주의를 강력히 추진하고, 외교나 안보적으로는 공세적 개입보다는 동맹국들의 비용 추가 부담을 요구하면서 미국의 패권 전략을 그대로 유지할 것이라는 예상이 대체적이다.

 

미국이라는 거대한 배를 어떤 방향으로 나가게 할지의 핵심 키는 바로 대통령 당선인인 트럼프가 쥐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막말의 대가’로 아웃사이더를 자처하며 대선 기간 상상 이상의 튀는 공약을 발표했던 트럼프가 그의 약속대로 과감하게 혁신적인 조치로 행정부를 이끌어갈지, 아니면 취임하자마자 ‘타협’의 길로 들어설지는 이제 곧 드러난다. 대통령에 당선됐지만, 시험대에 오른 사람은 바로 트럼프 그 자신이다. 미 정보기관의 일일 보고마저도 신통찮게 여기고 있는 트럼프가 과연 대선 기간 그의 비판론자들의 바람처럼 유순한 성격으로 변할지, 아니면 계속해서 앞뒤를 가리지 않고 자신만의 완고한 고집의 길로 갈지 전 세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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