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아직 ‘민주화의 개발도상국’" 촛불 비하하는 日 대표 저널리스트
  • 김회권 기자 (khg@sisapress.com)
  • 승인 2016.12.07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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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케가미 아키라. 1973년 NHK에 들어가 기자 생활을 시작했고 2005년 3월 퇴사를 한 뒤 프리랜서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 일본에서 정말 유명합니다. 최근 일본 방송에서 손석희 JTBC 사장을 다룬 적이 있습니다. 당시 손 사장을 두고 '사회정의가 강한 저널리스트'라고 평가했습니다. 그리고선 덧붙입니다. "손석희 사장은 한국의 이케가미 아키라다." 한국 언론인들 중 영향력에서 가장 꼭대기에 자리한 손 사장을 빗댈 정도니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케가미는 지상파 TV프로그램에 등장해 국내외 뉴스를 주로 설명합니다. 그는 뉴스를 쉽게 풀어주는 저널리스트로 유명합니다. 비전문가들에게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다”고 설명하는 프로그램 유형에 능숙하죠. 정치적 무관심이 큰 일본에서는 소프트한 와이드쇼 형태의 뉴스프로그램이 많습니다. 그래서 이케가미에 대한 수요도 많습니다. 일본에서 큰 이슈가 터졌을 때 마련되는 특집 방송일 경우 방송국에서는 대부분 진행자로 맨 처음 그를 생각합니다.

 

ⓒ asahi TV

이케가미 아키라가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하는 뉴스프로그램 중에 아사히TV의 '이케가미 아키라 뉴스-그런 것이었구나'가 있습니다. 토요일에 방송하는데요, 바로 지난 토요일인 12월3일 방송에서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대해 다뤘습니다. 요즘 일본에서도 연일 박근혜 대통령이 등장하고 있으니 새삼스러운 일은 아닙니다. 심지어 최순실씨의 조카 장시호씨가 청문회에 등장하는 모습도 생중계로 보여줄 정도니까요. 그 정도로 관심이 많습니다.

 

기사 맨 하단에 유튜브 영상을 첨부했습니다. 이케가미 아키라 뉴스쇼입니다. 일본어를 몰라도 분위기를 보면 보통의 뉴스 보도처럼 딱딱하지 않습니다. 스튜디오 분위기도 매우 밝습니다. 일본인들이 이슈에 대해 알기 쉽게 진행합니다. "우리 이것만은 알고 갑시다"라는 분위기입니다. 유명한 저널리스트가 진행하는 쇼다 보니, 적지 않은 시청자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날의 내용을 보면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케가미 아키라의 독자적인 관점으로 보면 훨씬 이해하기 쉽다"라는 나레이션으로 뉴스쇼는 시작합니다. 편성은 총 50분입니다. 이중 전반 25분을 박 대통령에게 할애했습니다.

 

이날 이케가미 아키라가 제시한 관점은 네 가지입니다. 

 

1. 한국의 대통령은 스캔들 투성이?

2. 한국은 성공사례가 있어서 데모가 많다?

3. 한국은 학력으로 차별당한다?

4. 한국경제가 사실은 위험하다?

 

따지고 보면 3번은 우리도 어느 정도 인정하는 사실이고 4번은 전망이니까 그냥 넘어갈 수 있습니다. 반면 1번과 2번에서는 위화감이 느껴집니다. 일단 이번 사태를 두고 설명하는 걸 봅시다. 실제 방송에서 사용한 문장을 그대로 따왔습니다.

 

일단 그는 이번 사태에 대해서 “최순실과 박대통령의 관계, 태블릿 입수를 통해 밝혀진 연설문 첨삭, 미르재단과 기업자금, 정유라의 부정입학 등이 문제가 되고 있으며, 전국에서 190만명이 시위에 참가했다”고 소개했습니다. 이어 박근혜 대통령의 3차 대국민담화문 영상을 보여주며 "박대통령이 사의를 표명했지만 국민들은 수주에 걸쳐 시위를 계속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정도는 사실에 근거한 설명입니다.

 

이제부터 이케가미의 분석이 들어갑니다. 첫 번째로 제시한 분석은 '한국의 대통령은 스캔들 투성이?'였습니다.

 

이번 게이트를 보고 이케카미는 "한국의 대통령에 대한 스캔들이 또 나왔다고 생각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서는 "한국의 역대 대통령들 중 최규하 전 대통령을 제외하면 모두 스캔들이 있었으며. 이 스캔들은 대통령 본인 뿐만 아니라 측근과 관련된 것이 많은 점이 특징이다"고 분석했습니다.

 

이케가미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사건 역시 ‘스캔들’이라고 규정했습니다. 그리고 이처럼 스캔들이 많은 이유로 "일본에서는 생각할 수도 없는 시스템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바로 대통령의 강력한 권력입니다. 5년 임기지만 재임이 안 되기 때문에 임기 기간 내에 (대통령 본인이 죄가 없더라도) 측근과 친족들이 ‘뭔가 이익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이유로 몰려든다는 게 이케가미의 분석입니다. 

 

기분은 상하지만 이해되는 부분도 있습니다. 내각제 국가인 일본이 대통령제를 이해 못하는 것도 감안해줘야죠. 문제는 그 뒤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국민들이 분노를 하는 것이다"고 설명한 이케가미는 이번 정국에 ‘국민정서법’에 의한 ‘괘씸죄'가 자리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여론이 강하게 문제를 제기하면 검찰이 움직이고, 이로 인해 판결이 뒤바뀌는 경우도 있다고 얘기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로 든 게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 즉 '친일파 재산몰수법’입니다.

 

광장에 모인 민심과 그 분노, 그리고 정권의 위기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일입니다. 정부는 국민의 준엄한 여론에 귀 기울여야 한다는 진리를 보여준 게 우리네 광장입니다. 그런데 이걸 단순히 ‘국민정서법’ 때문이라고 보는 게 타당한 분석일까요. 

 

게다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설명하면서 이번 건과 전혀 관련이 없는 친일파 재산몰수법을 가지고 오는 것, 그리고 이걸 한국인들이 여론몰이를 해 만든 것으로 폄하하는 게 옳은 말일까요. 이케가미가 "이미 합의를 본 건에 대해 법을 나중에 만들고, 그 전에 있었던 일까지 규제를 한다"고 말하자 프로그램에 나온 게스트들이 "이런 것을 보면 한국은 뒤떨어졌다"고 말합니다. 이게 그대로 방송을 탔습니다.

 

두 번째로 제시한 분석은 '성공 사례가 많아서 데모가 많다?'입니다. 여기에는 집회에 참석한 우리 국민들의 인터뷰가 등장합니다. 한 여학생은 "‘학교에서 집회가 있다고 해서 친구랑 나왔다"고 말하는데 여기에 일본어 더빙이 붙습니다. 그런데 뉘앙스가 좀 묘합니다. 현재 상황을 이해하고 집회에 참석한 게 아니라 "그냥 집회가 있다기에 나와 봤다"는 느낌입니다.

 

"한 번도 한국인으로서 창피한 적이 없었는데, 참 창피합니다"라는 남성의 인터뷰에도 일본어 더빙이 붙습니다. 그런데 이것도 뉘앙스가 요상합니다. 국민으로서 이번 사태가 부끄럽다는 얘기인데 마치 "한국인인 게 창피하다"는 느낌입니다. 이럴 때마다 게스트들은 "에~" "아~"하며 공감하는 사운드를 냅니다.

 

이케가미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한국은 불과 30년 전 민주적인 선거와 언론의 자유가 없는 군사정권이었으며 당시에도 시위가 있었다"고 설명합니다. 그런데 1987년 6·10 민주항쟁으로 얻은 민주정부로의 이행은 설명하지 않습니다. 대신 한국 민주화의 이유로 "당시 1988년 서울올림픽이 있었고, 이 때문에 해외 언론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한국 정부가 군대를 동원한 진압이 더 이상 어려웠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흘러나옵니다.

 

"이런 시위를 기점으로 한국은 민주화를 향해 걷기 시작했고 그런 의미에서 한국은 아직 ‘민주화의 개발도상국’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이케가미는 설명합니다. 그리고 나레이션이 덧붙입니다. "이런 일들이 불과 30년 전에 벌어졌기 때문에, 정부에 불만이 있으면 아직도 시위를  통해 주장할 때가 많다." 

 

이런 시위들은 민주주의의 작동 방식이고 국민들은 시위의 권리를 가지고 있으며 그것을 통해 민주공화국을 쟁취해 갑니다. 하지만 이케가미의 설명만 듣는다면 우리 국민은 마치 떼를 쓰는 어린아이처럼 여겨집니다. 일본 유명 저널리스트의 잘못된 한국 보도와 편견의 확산. 이걸 보고 일본인들이 현재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다이나믹한 상황을 오해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이쯤 되면 이케가미를 손석희 사장과 비교하는 게 미안할 정도입니다.

 

이케가미는 과거 한국을 소재로 한 방송에서 문제를 일으킨 적이 있습니다. 2015년 6월 후지TV가 방영한 ‘이케가미 아키라 긴급 스페셜, 알고 있는 것 같지만 모르는 한국의 수수께끼’라는 프로그램에서 한국 여고생의 발언이 조작된 채 나가 문제가 됐습니다. 

 

당시 길거리 인터뷰에 응한 여고생은 “(일본의) 문화가 매우 많다. 그리고 외국인이 많이 방문하는 것 같다”고 말했는데 일본어 자막으로는 “(일본이) 싫어요. 한국을 괴롭히지 않았나요”라고 설명돼 전혀 다르게 말한 것으로 표시됐습니다. 결국 이 사건은 후지TV가 사과하면서 일단락 됐습니다. 

 

(도움 : 이애림 전 시사저널 일본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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