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 세력·보수 기독교 ‘박근혜 아바타’ 황교안 받치는 두 축
  • 박혁진 기자 (phj@sisapress.com)
  • 승인 2016.12.12 10:04
  • 호수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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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권한대행 황교안 총리의 강점과 약점

노무현 정부 마지막 해이던 2007년, 검사장 인사에서 황교안 국무총리(당시 성남지청장)는 물을 먹었다. 2006년에 이어 두 해 연속이었다. 황 총리는 서울중앙지검 2차장이었던 2006년, 중앙지검 1~3차장 중 유일하게 승진하지 못했다. 그는 이듬해 성남지청장으로 자리를 옮겨 ‘와신상담’했다. 하지만 2007년 인사에서도 검사장이 되지 못했다. 황 총리와 사시 23회 동기였던 한상대 전 검찰총장이 2006년 이미 검사장으로 승진해 법무부 법무실장 등 요직을 두루 거칠 때였다. 한 전 총장은 황 총리와 사시 기수는 같지만 나이는 두 살 어렸다. 황 총리는 두 해 연속 인사에서 미끄러지자 사표를 내기로 결심했다. 그런 그를 검찰에 붙잡아 뒀던 것이 당시 법무부 장관이었던 김성호였다. 김성호 전 장관은 ‘공안검사 황교안’을 아깝게 여겨 법무연수원 기획부장으로 그를 붙잡아 뒀다. 서울중앙지검 2차장-성남지청장을 거쳐 법무연수원 기획부장으로 자리를 옮기는 것은 이례적 인사였지만 그는 1년 더 검찰에 몸을 담았다.

 

그 사이 정권이 바뀌었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자 그는 노무현 정부에서 탄압받은 공안검사라는 피해자 이미지가 덧입혀지며 검사장으로 승진했다. 그래서 황 총리는 지금도 주변에 김 전 장관을 ‘은인’으로 표현하고 다니는 것으로 알려졌다. 

 

© 시사저널 박은숙

‘검사 황교안’보단 ‘크리스천’으로 기억돼

 

2007년 김 전 장관의 만류로 사의를 거둬들이면서 황 총리의 공직생활도 변하기 시작했다. 사실 ‘검사 황교안’은 검찰 내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인물이었다. 단순히 그가 공안검사였기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그는 공안검사로서 굵직한 사건들을 많이 수사했다. 황 총리는 KAL기 폭파범 김현희 사건, 국정원 X파일 사건, 강정구 전 동국대 교수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 등을 수사했다. X파일 사건은 그가 검사로서 체면을 구긴 대표적 사건으로 꼽힌다. 황 총리는 2002년 서울지검 공안2부장에 있으면서 정형근 당시 한나라당 의원의 폭로로 제기된 ‘김대중 정부 국정원의 도청 의혹’ 사건을 맡았다. 그는 주임검사로서 1년 동안 사건을 수사하며 대부분의 피의자에 대해 무혐의 결론을 내렸다. 3년 뒤 이 사건은 이른바 ‘국정원 X파일 사건’이란 이름으로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고, 황 총리는 서울중앙지검 2차장으로 이 사건을 지휘했다. 그런데 이 사건에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가 합류하면서 3년 전과 전혀 다른 수사결과가 나왔다. 수사팀에서 국정원을 압수수색하는 등 강도 높은 수사를 통해 국정원의 도청 사실을 밝혀낸 것이다. 2005년 당시 주호영 한나라당 의원은 이를 문제 삼아 국감에서 X파일 사건 수사 책임자였던 황교안 2차장을 교체할 것을 주장했다. 2015년 6월 국무총리 인사청문회에서 황교안 후보자는 이와 관련해 “당시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고, 그에 따른 결과가 나왔을 뿐”이라고 항변했다. 하지만 2002년 수사 때 국정원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면 불법감청 기기들을 증거로 확보할 수 있었는데도 압수수색도 없이 무혐의로 결론 내는 등 허점 많은 수사였다는 것이 검찰 내부의 대체적인 평가였다. 평소 말을 많이 하지 않는 성격인 데다, 내세울 만한 이렇다 할 수사 결과물이 없던 ‘검사 황교안’은 검찰 내에서 존재감이 크지 않았다.

 

오히려 그와 일해 봤던 검찰 직원들은 ‘검사 황교안’보다는 ‘크리스천 황교안’을 먼저 기억한다. 황 총리와 근무 경험이 있는 한 변호사는 “어느 근무지를 가든 매주 수요일 점심마다 기독교인들을 모아 ‘신우회’를 했다”며 “그것 말고는 크게 기억나는 것이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황 총리는 사법연수원 수료 후 야간신학대학을 다니며 신학과정을 이수했고, 목동의 한 교회에서 전도사로 일한 바 있다. 37세였던 1997년에는 종교 관련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검사님,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나요?》란 이름으로 낸 책에는 종교와 관련한 대법원 판례들이 담겨 있다. 책의 부제는 ‘기독교인들이 알아야 할 법률상식’이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교회 내 근로기준법 문제나 종교인 과세 문제도 일부 다뤘다. 황 총리는 이후에도 《종교 활동과 분쟁의 법률지식》 《교회와 법이야기》 등을 출간했다.

 

 

보수 + 기독교 = 탄탄한 정치적 기반

 

공안검사로 오랫동안 공직생활을 하며 보수의 입장을 대변했다는 점과 독실한 종교인이라는 점은 황교안 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 혹은 정치인으로서 어느 정도의 지지기반을 가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황 총리는 법무부 장관 재직 시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과 관련해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구속영장 청구를 반대했다. 그는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를 하며 정권과 각을 세웠던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옷을 벗기는 데도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 황 총리는 채 전 총장과 관련한 ‘혼외자 의혹’이 불거지자 검찰총장 감찰을 지시했다. 법무부 장관이 검찰총장에 대한 감찰을 지시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황 총리는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과 통합진보당 해산도 이끌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황 총리는 ‘보수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실제로 보수 성향을 띠는 사이트에 들어가면 황 총리를 ‘대한민국을 종북으로부터 지키는 수호자’라고 칭찬한 표현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황 총리의 또 다른 지지기반은 기독교, 보다 정확히 말하면 보수화 성향을 나타내는 대형교회다. 보수 성향의 대형교회가 황 총리를 지지하는 이유는 그가 단순히 기독교인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교회 내 민감한 이슈들에 대해 대형교회의 가려운 부분들을 황 총리가 긁어주고 있기 때문에 그를 지지한다고 봐야 한다. 이는 그가 2012년 출간한 《교회가 알아야 할 법이야기》에서 잘 드러난다. 황 총리는 이 책에서 ‘교회를 노동법상의 사용자로, 교회 직원을 노동법상의 근로자로 보는 것은 심히 부당한 결론이다’ ‘목회자의 사례비는 일반 급여와 그 성격이 현저히 다르고, 그 원천이 된 성도들의 헌금에 대해 이미 성도들이 세금을 납부한 것일 뿐 아니라, 종교 자유의 보장을 위해서도 소득세 비과세 대상이 돼야 한다는 주장이 적지 않다’고 썼다. 이는 보수 대형교회의 근로기준법 및 종교인 소득신고에 대한 입장과 정확히 일치한다. 이 때문인지 모르지만 기독교계는 황교안 총리가 인사청문회에서 각종 논란에 휩싸여 어려움을 겪을 때 ‘황교안 지키기 운동’에 나서기도 했다. 당시 기독교인들 카카오톡에는 ‘황교안 지키기 기도문’이 급속도로 퍼졌었는데, 그 내용 중 일부는 이렇다.

 

‘황교안 총리 후보 지명자를 기도해야 합니다. 그는 자랑스러운 기독인입니다. 어릴 때부터 XX교회를 다녔고, 그 바쁜 공직생활(검사) 중에도 야간신학대학을 나온 전도사입니다. 황교안 후보는 현재 안티 기독교 분자들과 불교인, 종북좌파들의 극렬한 반대를 받고 있습니다. 황 후보자는 하나님의 공의를 드러내는 일에 다니엘과 같이 쓰임 받는 하나님의 일꾼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그에겐 천군만마와 같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보수 기독교는 정치적 보수 세력과 크게 다르지 않은 주장을 펼친다. 특히 정치적 보수 세력과는 북한 문제를 교집합으로 해서 강한 결속력을 나타내고 있다. 이런 정치적 기반은 단순히 ‘총리 황교안’을 넘어서 대선후보로 나설 때도 강점이 될 수 있는 부분이다.

 

2005년 12월14일 국정원(국가정보원)의 불법도청 X파일관련 수사를 벌였던 서울지검 2차장 황교안 검사가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시사저널 이종현

극우 이미지 강해 확장성은 한계

 

황 총리는 한편에서는 ‘보수의 아이콘’이라고 칭송받지만, 이는 그가 대중정치인으로서 확장성에 한계가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황 총리는 박근혜 정부의 이념적 지향을 그대로 보여주는 인물이다. 단순히 박근혜 정부에서 그가 주도했던 일뿐만이 아니라 그가 가지고 있는 역사관에서 이런 모습이 잘 드러난다. 그간 행적이나 사상을 볼 때 황 총리를 박 대통령의 ‘아바타’ 정도로 인식하는 대중이 다수다. 박 대통령이 12월9일 국회 탄핵소추안 가결로 인해 입지가 좁아진 상황에서 이것은 황 총리에게 치명적인 약점이다. 그가 헌법재판소 심리 기간 중 국정을 안정적으로 운영한다면 박 대통령에게 등을 돌린 보수 세력 중 일부의 마음을 얻을 수 있겠지만, 여기에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 보수 기독교 세력의 지지를 받고 있다는 점은 황 총리의 정치적 기반인 동시에 약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종교 편향성 논란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가 총리 후보가 됐을 때 불교계에서는 종교 편향을 이유로 총리 지명을 반대했다.

 

‘검사 황교안’은 검찰 내에서 주류보다는 비주류에 가까웠다. 하지만 보수 정권이 들어서면서 그는 ‘물 만난 고기’가 됐다. 이명박 정부 때는 ‘기독교’란 코드로 정권과 통했고, 박근혜 정부에서는 ‘보수’의 수호자로 대통령의 마음을 샀다. 참여정부에서 두 번이나 검사장 승진에서 미끄러졌던 그는 보수 정권 9년을 거치면서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올랐다. 황 총리가 2011년 검사복을 벗을 때만 해도 국무총리는 물론이고 법무부 장관이 될 것이라고 예견한 검찰 직원들은 없었다. 하지만 그는 현 시점에서 대한민국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공직자가 됐다. 극우 보수 세력에서는 어느새 황 총리를 대선 주자 반열에 올리고 있다. 그는 고건 전 총리처럼 최소한의 역할만 하며 안정적 국정운영을 할 수도 있고, 보다 주도적 운영을 통해 존재감을 더욱 드러낼 수도 있는 위치에 왔다. 과연 그의 선택지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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