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이익 수조원대’ 정유사들의 ‘기름 갑질’
  • 이민우 기자 (mwlee@sisapress.com)
  • 승인 2016.12.14 14:45
  • 호수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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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가 확정 안 하고 공급한 뒤 사후 정산 “공급가 기습 인상으로 주유소에 횡포”

충남 부여군에서 20년째 주유소를 운영하고 있는 이윤호 사장(49)은 오래전부터 SK네트웍스 상표(폴사인)를 포기하려고 마음먹었다. 2011년부터 SK네트웍스와 계약을 맺고 타 정유사에서 옮겨왔지만 영업 환경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카드수수료, 유지비 등을 고려했을 때 1년에 2~3개월가량 적자를 보는 일이 발생했다. 말 그대로 ‘손해 보고 장사’한 셈이다. 이 사장은 올해에만 약 5000만원을 손해 보게 되면서 더 이상 SK네트웍스와 계약을 유지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결국 그는 올해 7월 SK네트웍스 측에 “안정적 거래처로서 신뢰를 유지할 수 없기에 계약 해지를 통보한다”며 “빠른 시일 안에 모든 계약을 정리해 달라”는 내용증명을 보냈다.

 

경북 성주에서 주유소를 운영하던 김아무개 사장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주변 공사현장에서 5일간 2만 리터의 석유제품 공급계약 요청을 받았다. 정유사에 공급가격을 문의한 김 사장은 확정가격이 아닌 우선 입금가격(리터당 1541원)만 통보받았다. 김 사장은 당시 정유사의 확정가격이 입금가격보다 20~30원 줄어드는 점을 고려해 공사장과 리터당 1561원에 계약했다. 하지만 정유사가 통보한 월말 단가는 리터당 1546원이었다. 카드 수수료(23.6원)를 제외하면 리터당 8.4원의 손실이 발생하게 됐다.

 

© 시사저널 임준선

문 닫는 주유소, 돈 버는 정유사

 

일선 주유소 사장들은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불합리한 유통구조 때문에 어려움을 호소한다. 주유소들이 기름을 구매할 때 정유사로부터 물량을 먼저 받고, 공급 단가를 월말에 확정하는 ‘월말 단가’ 구조 탓이다. 정확한 공급가를 모른 채 기름을 팔다 보니 매월 마진율 또한 제각각일 수밖에 없다.

 

이 같은 일은 특정 정유사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주유소에 기름을 공급하는 모든 정유사들이 그랬다. 미리 기름을 사서 입금해 놓은 뒤 월말에 단가를 확정하는 유통 구조가 문제였다. 주유소 사장들은 공급가를 모르다 보니 국제유가 흐름, 타 주유소 가격 등을 확인해 보고 가격을 책정했다. 그러다 월말에 갑자기 확정 단가가 예상보다 높게 책정되면 손해를 볼 수밖에 없었다. 억울했지만 폴 계약을 유지해야 하는 ‘을’의 입장에 놓인 주유소 사장들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이 제도가 기름값을 올리는 요인으로 작동하면서 소비자 또한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정확한 공급가를 모른 채 기름을 받다 보니 정산가격이 공급가보다 높아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비싼 가격을 책정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한 주유소 사장은 “몇 차례 손해를 보게 되면 그 경험 때문에 기름값을 낮출 수 없게 된다”며 “가격을 높이면 손님이 줄고 가격을 낮추면 적자를 보게 되니 매일 가격동향을 살펴도 해법은 없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사후 정산 제도는) 대기업이 공급사라는 지위를 부당하게 이용해 유통시장에서 경쟁을 회피하고, 주유소에만 부당한 부담을 지우는 일종의 통제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 시사저널 미술팀

대법원 판결 이후 문제 제기조차 어려워

 

주유소 업계는 사후정산 제도로 인해 업계의 경영난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주유소 휴·폐업률이 계속 높아져만 가는 상황이다. 한국주유소협회에 따르면, 전국 휴·폐업 주유소는 2010년 454곳에서 2012년 643곳, 2014년 693곳으로 꾸준히 증가했다. 올해에는 8월까지 710곳의 주유소가 문을 닫거나 영업을 중단한 상태다. 이 추세가 이어진다면 올해 휴·폐업 주유소는 처음으로 1000곳을 넘길 것으로 보인다. 전국 영업주유소가 1만2041곳(2016년 8월 기준)인 점을 감안하면 한 해 휴·폐업률이 8.3%에 달할 수 있다.

 

반면 정유사들은 올해 수조원대의 영업이익을 올릴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증권 업계에서 예측한 수치를 보면, 올해 SK이노베이션만 3조6700억원, 에쓰오일(S-oil)이 1조9560억원, GS칼텍스가 1조9520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현대오일뱅크를 제외한 3사만 해도 총 7조5780억원의 영업이익을 달성하는 셈이다. 비(非)정유 부문의 실적이 포함된 수치지만 정유 부문의 실적도 고공행진을 이어가는 상황이다.

 

물론 제도를 개선하려는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일선 주유소 사장들은 물론 주유소협회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그 결과, 공정거래위원회는 2008년 국내 정유사를 대상으로 기름을 납품할 때 대략적인 가격만 통지하고 일정기간 후 할인 또는 인상 가격을 최종 통보하는 사후 정산 행위를 한 것에 대해 ‘불공정 거래 행위’라며 제재를 가했다. 당시 공정위는 “정유사가 대략적인 가격 통보 후 타사의 동향을 살펴 최종가격을 결정해 정유사 간 가격경쟁을 회피했고, 결과적으로 주유소가 유리한 조건으로 구매할 수 있는 기회가 박탈됐다”며 시정조치를 내렸다.

 

이후 2010년 에쓰오일 측은 공정위 판단에 불복하며 소송을 제기했다. 대법원은 2013년 4월 사후 정산 행위가 주유소에 부당한 행위가 아니라고 판결해 정유사의 손을 들어줬다. 당시 대법원은 “해당 상권 내에서 최저가격을 보장하면서 자영주유소를 관리해야 할 필요에 따라 서로 다른 경쟁 정유사의 가격동향을 살펴 경쟁사보다 더 높지 않은 가격으로 최종가격을 결정했던 것”이라며 “통상 다른 경쟁사에 비하여 높은 가격으로 석유제품을 구매했을 가능성이 낮기 때문에 주유소가 불이익을 입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의 판단 이후 문제 제기조차 어렵게 됐다. 중소기업중앙회에서 2015년 이 문제를 제기했지만, 공정위 측은 대법원의 판결이 있는 상황에서 다시 문제를 거론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전달해 왔다.

 

주유소 업계의 반발이 계속되자 정유사 측은 주유소협회와 협상 테이블에 앉았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도 근본적인 해법은 찾지 못했다. 다만 주유소 측이 요구하면 정산 방식을 선택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뒀다. 하지만 공급받을 당시 확정 단가보다 더 많은 가격을 지불한 뒤 사후 정산 때 대부분 돌려받는 방식이어서 정산을 포기하는 주유소는 없었다. 주유소협회 관계자는 “정유사와 주유소는 동등한 위치일 수 없다”며 “당연히 ‘불합리한 계약을 개선해 달라’고 요구하는 일은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분명 문제가 있는 유통 구조를 띠고 있지만 대법원의 판단 이후 문제 제기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사후정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잔액도 정유사로부터 돌려받지 못하는 사례가 있어 경영상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주유소협회를 비롯한 일선 주유소 사장들은 사후 정산 제도에 대한 개선을 강하게 요구해 왔다. © 연합뉴스

대법원조차 몰랐던 정유사의 ‘갑질’

 

더욱 심각한 문제는 확정 단가를 정하는 과정이다. 앞서 사례에 언급된 이윤호 사장의 설명에 따르면, SK네트웍스는 정제 비용에 운반비, 홍보비 등을 포함해 단가를 책정한다. 다른 공급 대리점에서 리터당 1300원에 공급한다면 SK네트웍스의 확정 단가는 10원이나 15원 정도를 더 붙인다는 게 이 사장의 설명이다. 고객에게 포인트를 제공하는 점, 다른 공급 대리점을 이용했을 때 본사의 압박 등을 고려해 조금 더 비싸더라도 SK네트웍스로부터 공급을 받는다. 하지만 1년에 2~3차례에 걸쳐 30~50원가량 차이가 나도록 확정 단가를 높이는 일이 생긴다.

 

올해의 경우 5월과 6월, 10월에 이 같은 일이 발생했다. 5월에 다른 대리점에선 휘발유를 리터당 평균 1315원에 공급했다. 하지만 SK네트웍스에서 최종 통보한 확정 단가는 리터당 1347원에 달했다. 6월에는 대리점 휘발유 평균 단가가 1300원으로 떨어졌지만, 주유소 확정 단가는 1355원으로 오히려 올랐다. 대리점 평균 단가를 보고 판매가격을 낮췄던 이 사장은 손해를 봤다. 이 사장은 이를 “정유사의 횡포”라고 표현했다. 때문에 해당 월에 본 적자 규모만 5000만원에 달했다.

 

참다못한 이 사장은 SK네트웍스 대전지사 측에 폴 계약 해지까지 통보하며 강하게 항의했다. 그러자 해당 지사 담당자는 “회사에서 정한 단가가 안 내려가서 우리들도 어쩔 수 없다. 상부에서 그렇게 결정한 것”이라며 “다음 달 잘 내 드리겠다”는 식으로 넘겼다고 한다. ‘주유소에서 손해를 보지 않는 구조’라고 판단한 대법원의 설명과 현실은 완전히 달랐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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