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A가 내린 결론, “러시아가 트럼프를 대선에서 도왔다”
  • 김회권 기자 (khg@sisapress.com)
  • 승인 2016.12.14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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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중앙정보국(CIA)의 발표 하나가 미국 대선의 결과를 바꿀 수 있을까. 일단 어느 정도 판을 흔드는 데는 성공한 것 같다. 미국 대선에 러시아 해커가 개입한 것 같다는 이야기는 얼마 전부터 흘러나왔다. 루머처럼 취급받던 이 얘기를 무겁게 만든 쪽이 CIA다. CIA는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이 승리할 수 있도록 러시아가 사이버 공격을 했다는 쪽으로 입장을 정리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리고 이런 내용은 12월9일 워싱턴포스트 인터넷판이 관련 내용을 보도하면서 알려졌다.

 

소식통의 입을 빌려 워싱턴포스트는 "CIA는 러시아가 트럼프의 승리를 노리고 정보를 조작하고 있었다고 결론짓고 있다"고 전했다. 미 정부 관계자는 "러시아의 목표는 2명의 후보 중 1명의 후보가 유리하게 되는 것, 즉 트럼프의 당선을 돕기 위한 것이라고 CIA가 분석하고 있다"고 말했다. 

 

ⓒ EPA·연합뉴스

트럼프 측은 보도가 나온 직후 CIA의 신뢰도를 문제 삼는 분위기다. 미국의 정보기관은 신뢰도에 의문이 있으니 이런 분석은 믿을 수가 없다는 얘기다. 트럼프 정부 인수위원회는 "이번 보고서는 사담 후세인이 대량 살상 무기를 보유하고 있다고 발표한 것과 동일한 소스에서 온 것"이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선거는 사상 최다 인원이 참가했고 우리는 가장 많은 선거인을 획득해 승리했다. 선거는 이미 오래 전에 끝난 일이다. 지금은 전진하며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어야 할 때다."

 

사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트럼프의 대통령 취임을 바라고 있다는 건 더 이상 놀라운 이야기가 아니다. 트럼프는 선거 기간 동안 KGB 출신인 푸틴에게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심지어 "버락 오바마보다 뛰어난 지도자"라는 말도 했다. 

 

‘위키리크스’는 미국 대선 운동이 한창 벌어지던 시기에 힐러리 클린턴의 민주당 선거캠프 내부에서 주고받은 이메일을 공개했다. 여기에는 재계와의 밀월 관계를 엿볼 수 있는 내용 등이 포함돼 당시 클린턴의 선거전에 타격을 줬다. 실제로 이 해킹에 러시아의 해커들이 관여했다는 게 CIA의 결론이다. 공개된 정보에는 트럼프와 공화당에 관한 내용은 거의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대부분 클린턴과 민주당에 관한 자료들이다. 뉴욕타임스는 "러시아는 공화당 전국위원회를(RNC)도 해킹했는데, 이들의 정보를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고 CIA가 결론을 내렸다"고 보도했다. 여기에 더해 CIA는 최소 대선 2주전에 유권자 등록 데이터베이스에 러시아 정부와 관련 있는 해커 그룹이 불법 침입한 것을 발견했다고 보도했다.

 

CIA는 해커 그룹과 러시아 정부와의 관계에 대해 올해 상반기에 이미 파악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반면 트럼프 측은 CIA의 조사 결과를 정치적인 의도를 품은 것으로 평가하며 증거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고 비난했다 .

 

실제로 타임지 올해의 인물로 뽑힌 뒤 가진 인터뷰에서 트럼프는 "나는 그런 이야기를 믿지 않는다. 러시아가 간섭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내가 뭔가를 할 때마다 상대편은 '러시아가 방해했다'고 하더라"고 트럼프는 항변했다. 여기에 더해 "해킹은 러시아 뿐만 아니라 중국일 수도 있고 뉴저지 출신의 사람도 가능하다"고 반박했다. 뉴저지 출신은 아마도 인근 뉴욕 상원의원을 지낸 클린턴을 겨냥한 코멘트였다.

 

트럼프 입장에서야 억울할 수도 있지만 그는 이미 오해를 살만한 발언을 한 전력이 있다. 7월27일 선거 운동이 한창 진행되던 시절, 트럼프는 러시아에 마치 해킹을 요구하는 듯 한 발언을 해 공분을 샀다. “러시아가 내 말을 듣는다면 사라진 클린턴의 3만개 이메일을 찾아내길 바란다.” 이 말은 러시아가 자신을 돕기 위해 민주당 전국위원회(DNC)의 메일을 해킹했다는 의혹을 일축하는 과정에서 나왔지만 적정선을 넘어섰다는 비판을 호되게 받아야 했다. 미국의 서버가 다른 국가에 해킹된 것을 지지한다? 마치 그렇게 느껴질 법한 발언은 격렬한 논쟁을 불러왔다. 트럼프는 뒤늦게 "빈정거렸을 뿐"이라고 주장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공화당 내에서도 비슷한 언급이 있었다. 미치 맥코넬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는 9월에 있었던 국가 기밀 정보에 관한 설명회에서 해킹과 러시아의 관계에 대한 의혹이 있다고 밝힌 적이 있다. 다만 워싱턴포스트가 이번 CIA의 결론에 관해 코멘트를 요구하자 그는 응답하지 않았다.

 

워싱턴포스트는 러시아의 목적이 트럼프 당선에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고 확신하는 CIA의 분석이 지난주 상원 의원들 사이에서는 공유된 상황이라고 전했다. CIA는 러시아 정부와 관계된 개인들의 이름을 특정하고 있다고 한다. 그들이 민주당 전국위원회와 클린턴의 이메일 수천통을 해킹해 제공한 것으로 보고 있다.

 

워싱턴은 이 사안을 두고 바쁘게 움직일 모양새다. 오바마 대통령은 러시아의 해킹에 대해 전면적으로 조사하고 자신이 퇴임하기 전인 2017년 1월까지 조사보고서를 작성하도록 지시했다. 리사 모나코 백악관 국가안보 대테러담당 보좌관은 "2008년, 그리고 이번 선거에서 악의적인 사이버 공격이 있었다는 것을 확인하고 있다"며 "상세하게 조사하고 사후 검증을 실시해 이번에 발생한 사건을 이해하고 교훈을 공개하는 것이 우리의 책임이다"고 강조했다. 미국 대통령 선거와 해킹이라는 초유의 상황, 이것의 마무리는 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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