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체 수순’ 전경련의 ‘롤모델’ 헤리티지재단은 순수하지 않다
  • 김경민 기자 (kkim@sisapress.com)
  • 승인 2016.12.14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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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련은 헤리티지재단처럼 운영하고 각 기업간 친목단체로 남아야 한다. 이것이 저의 의견이다.”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12월6일 국회에서 열린 ‘국정농단’ 국정조사 1차청문회에서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에 대해 밝힌 의견은 이랬다. 1961년 창립된 전경련은 이날 삼성그룹과 SK그룹이 탈퇴 입장을 밝히고 다른 기업과 은행들까지 잇따라 탈퇴 의사를 밝히면서 55년 만에 존폐의 기로에 서게 됐다. 그것이 해체가 됐든 발전적 형태로의 탈바꿈이 됐든 ‘쇄신’이 필요한 시점을 맞은 셈이다.

 

전경련 쇄신안으로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는 형태가 미국의 ‘헤리티지 재단’이다. 기업이나 정당으로부터 독립성을 획득하기 위해 기부자들의 기부금으로 운영되는 미국의 싱크탱크(정책연구소)들을 따라야 한다는 논리다. 얘기만 들어보면 마치 선진적인 기업 친목단체의 롤모델처럼 제시되고 있는 게 헤리티지 재단이다. 만약 전경련이 헤리티지 재단처럼 ‘싱크탱크’로 바뀌면 이번 전경련 해체의 핵심과제인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을 수 있을까.

 

대답부터 하자면 ‘글쎄’다. 1973년 설립된 헤리티지 재단은 미국의 대표적인 보수주의 성향의 싱크탱크다. 정치·경제·외교·안보 분야 등에서 자유 기업체제와 제한된 정부, 개인 자유 증진과 미국적 가치 증진에 기반한 공공정책을 개발해 왔다. 오랫동안 미국 정부의 정책결정에 큰 영향력을 행사했는데 특히 공화당 정부에서는 대내정책을 설정하는데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 내정자가 12월6일 헤리티지 재단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 AP연합

미국은 전문연구소가 후보자를 도와주는 방식이 빈번하다. 특정 사안에 대해 전문성이 떨어지는 것을 이들 연구소가 뒷받침해준다. 이런 싱크탱크는 선거운동 기간 동안 후보의 공약 설정을 돕는다. 그래서 지지하는 후보가 당선되면 이 기관의 전문인력(연구원)이 백악관이나 정부기관으로 대거 이동해 정권의 브레인으로 활동한다. 정책전문가들에서 정책결정자들로 탈바꿈하는 셈이다. 따라서 특정 정파를 지원하는 싱크탱크란 정권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갖는다. 

 

헤리티지 재단은 비영리기관이지만 헤리티지가 공화당의 싱크탱크란 사실은 워싱턴의 상식이다. 특히 최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의 인수위 역할을 하며 ‘트럼프 싱크탱크’로 불리고 있다. 헤리티지 재단 전 대표인 에드윈 퓰너가 트럼프 캠프의 정권인수팀에 들어가기도 했다. 또 트럼프 정부의 부통령으로 지목된 마이크 펜스는 과거 헤리티지 재단 기반의 소규모 싱크탱크인 ‘인디애나 정책평가 재단’을 운영했고 최근 헤리티지에 직접 들러 정책 발표를 했다. 

 

물론 미국에도 초당적 싱크탱크가 있다. 하지만 현재 전경련의 벤치마크 대상으로 언급되는 헤리티지 재단은 그런 초당적 싱크탱크는 아니다. 전경련은 실제로 헤리티지 재단을 참고해 재단 모델 연구를 진행한 적이 있다. 2011년 전경련이 로비 대상 정치인을 주요 그룹들에 할당해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을 때의 일이다. 당시에도 개혁안 중 하나로 헤리티지 재단이 거론됐다. 

 

구본무 회장이 헤리티지 재단을 언급한 것은 그 운영 방식을 의미한 것으로 보인다. 비영리재단으로 분류되는 헤리티지 재단은 순수하게 기부금만으로 운영된다. 총 운영수입 가운데 개인 기부금은 57%에 달해 대규모 재단 후원금이나 기업후원금보다 월등히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외부 영향력을 최소화하기 위해 기부금 상한액을 규정하기도 한다. 헤리티지 재단은 자체 예산의 30~40%를 정책홍보에 사용하며 의회 보좌관들, 보수적 성향의 정무직 공무원, 언론인들에게 적극적으로 어필한다. 헤리티지 재단의 정파적 편향성은 기금의 출처에 따른 비자발적인 성향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정체성을 ‘보수 성향’으로 규정하는 가운데 나온 것이란 점 역시 주목할 만하다.

 

미국 워싱턴DC에 위치한 헤리티지 재단 본부. ⓒ Ser Amantio di Nicolao, Wikimedia Commons

하지만 미국 내에서도 헤리티지 재단에 대한 비판 여론이 상당하다. 헤리티지 재단의 기부금 상한제나 비영리재단이라는 타이틀이 ‘눈 가리고 아웅’ 이라는 비판도 있다. 정보분석매체인 《소스워치》에 따르면 헤리티지 재단은 정부로부터 돈을 받지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재단 운영 기금의 출처를 분석해보면 공화당의 큰 손으로 알려진 코치 형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돈이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비영리재단이란 운영 방식 역시 세금을 피하기 위한 면죄부일 뿐이란 지적도 있다. 온갖 정치 활동을 다 하면서 면세 혜택만 받는다는 비판이다. 

 

대가성 기부금은 안 받는다는 헤리티지 재단의 공식 설명과 다른 행보도 비판의 대상이 된다. 미국 언론감시단체 FAIR(Fairness&Accuracy in Reporting)에 따르면 1980년대에 한국의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가 당시 220만 달러를 이 재단에 기부했고 이에 대한 보상으로 재단은 아시아연구센터를 만들었다고 한다. 월스트리트저널 보도를 인용한 소스워치에 따르면 1993년과 1996년 사이 한국국제교류재단(KF)이 헤리티지 재단에 기부한 돈이 1000만 달러에 육박한다. 이 매체는 “이 돈은 결국 한국 정부로부터 온 것이나 다름없다”고 전했다.  

 

 

 

 

참고기사 


[미국 대선 UPDATE] 미국 보수의 실세 코치 형제는 트럼프를 싫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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