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야 할 때를 알고 떠나는 올랑드
  • 최정민 프랑스 통신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12.19 13:53
  • 호수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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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율 4% 프랑수아 올랑드 佛 대통령, 대선 불출마 선언

12월1일 저녁 8시.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를 통해 2017년 대선에 출마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프랑스에서 임기 중인 대통령이 재선을 포기한 것은 1958년 제5공화국 체제가 들어선 이후 올랑드 대통령이 처음이다. 재선 출마 포기를 선언하기 전까지 올랑드 대통령의 지지율은 4%에 불과했다. 이러한 전대미문의 지지율로는 출마를 한다 해도 당선이 어렵다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올해 마지막 실업률 발표가 그에게 한 가닥 희망이었다. 실제로 11월24일 프랑스 노동부가 발표한 10월 실업률은 9.7%로 전 분기 대비 0.3%포인트 하락하는 데 그쳤다. 예상보다 낮은 하락률을 기록했으나 그간의 부진한 성적을 만회하고 성난 민심을 수습하기에는 역부족인 수치였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 © AP 연합

총리까지 대통령과 대립각

 

올랑드 대통령의 운신의 폭을 더욱 좁게 만든 것은 11월27일  내각 수장인 마뉘엘 발스 총리가 프랑스 주간신문 ‘르조르날 드 디망쉬’와의 인터뷰에서 차기 대선 출마 의지를 표명하면서부터다. 대통령과 총리, 즉 정권 수뇌부가 대립하는 모양새가 되어버린 것. 익명을 요구한 발스 총리의 한 측근은 프랑스 공영 방송의 보도를 통해 “대통령의 주변은 마치 사이비 종교 집단과 같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는 “모든 사람이 대통령을 차기 후보로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대통령 주변 어느 누구도 인정하지 않는다”며 “엘리제(대통령궁)는 ‘태양의 신전’이 되었다”고 성토했다. 정부 대변인인 테판 르폴은 ‘르조르날 드 디망쉬’ 보도 이튿날인 11월28일 오전 8시 프랑스 라디오 유럽 1에 직접 출연해 “대통령과 총리가 경선에서 맞붙는 상황은 없다”라며 권력 상층부 갈등설을 조기 차단하고 나섰다.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조롱에 가까운 지지율에도 꿈쩍 않던 대통령, 대통령과 선을 그으려는 수뇌부의 갈등에 오히려 집권 사회당 의원들이 대놓고 불만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세바스티앙 드나자 사회당 의원이 이런 불화에 대한 언론의 질문에 “내 심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면 방송에 못 내보낼 말들이 나올 것”이라고 말한 것은 당내 분위기를 잘 보여주고 있다.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대통령과 총리는 예정에 없던 점심 독대 자리를 마련하며 막판 조율에 나섰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이틀 후였던 12월1일 대통령은 자신의 결심을 공표했다. 담화는 엘리제궁에서 생방송으로 이루어졌다. 발표 15분 전까지 어떤 보좌진도 대통령의 결정에 대해 알지 못했다는 후문이다.

 

재선 도전 가능성을 끝까지 저울질했던 올랑드 대통령이 명예로운 퇴진을 선택한 것은 임기 동안의 경제 정책 실패, 그리고 마지막까지 기대했던 실업률 반등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미 올랑드 대통령은 집권 이듬해인 2013년부터 “임기 말에 실업률이 호전되지 않는다면 재선의 꿈을 접을 것”이라고 공언해 왔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경제학자인 다니엘 코헨은 올랑드 정부와 대통령의 실패에 대해 “‘납세 쇼크’로 지지율은 물론 경제성장률까지 발목이 잡혔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잇달아 발표된 올랑드 정부의 경제 성적표에서도 이러한 분석은 고스란히 드러난다. 파리국제정치학교 산하 경제연구소가 산출한 결과에 따르면, 올랑드 집권 원년이었던 2012년부터 2017년까지 일반 프랑스 가정을 대상으로 원천 징수되는 세금의 증가폭은 무려 473억 유로(58조원)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프랑스 경제전망연구소(OFCE)는 “올랑드 정부는 납세 충격이 경제 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는 사실을 과소평가했다”며 “이러한 방향은 당시의 높은 실업률과 양립할 수 없는 것이었다”고 지적했다.

 

 프랑스 경제 전문지인 레제코 역시 실패한 조세정책을 지적한 바 있다. 레제코는 “과세 여파로 매년 경제성장률이 0.8%포인트씩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전했다. 또한 고용 창출을 목적으로 ‘세금 공제’나 ‘책임협약’ 등 기업에 우호적인 정책을 도입했지만, 뚜렷한 실효를 거두지 못한 것도 올랑드 대통령의 뼈아픈 실책으로 꼽았다. 유일하게 긍정적인 평가를 받은 부분은 공공부문 부채 비율을 3.3%로 잡은 것이다. 물론 집권 초반에 제시했던 2.7%라는 목표를 이루진 못했지만, 3%대로 진입시킨 것은 분명 뚜렷한 성과라는 분석이다.

 

이러한 총체적 실패를 올랑드 대통령 혼자만의 책임으로 몰아가는 것이 옳으냐는 것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과세 충격만 하더라도 이미 올랑드 정부에 앞섰던 우파의 프랑수아 피용 총리 내각에서 추진하던 과세 정책의 연장선이었기 때문이다.  집토끼였던 좌파 지지 세력을 떠나게 만들었던 우편향적 정책들 역시 올랑드 대통령의 의지라기보다 내각 수장이었던 마뉘엘 발스 총리의 강경 드라이브가 주된 요인이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이중국적을 가진 테러범에 대한 국적 박탈과 관련한 논란이었다. 올랑드 대통령은 이번 담화에서도 이 법안을 언급하며 유일하게 후회스러웠던 점이었다고 밝혔다.

 

 

결심에 우호적 평가 잇따라

 

조롱에 가까웠던 언론 보도 행태 역시 올랑드 대통령에겐 결정적 장애물이었다. 대통령의 사생활에서 최근 불거진 탄핵 소란까지 프랑스 언론의 올랑드 공격은 쉬는 날이 없었다. 오죽하면 11월21일 카트린 드되브와 줄리에트 비노쉬 등 문화계 인사들이 주축이 된 저명인사들이 언론의 올랑드 때리기를 중단할 것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프랑스 사회당을 넘어 좌파 결집의 선봉에 서기 위해 올랑드 대통령은 재선 포기라는 최후의 카드를 꺼내 들었지만 그 효과가 얼마나 있을지는 미지수다. 다만 4%의 지지율에 불과했던 그였지만 이번 선택에 대해 프랑스인 10명 중 8명이 우호적 반응을 보였다고 프랑스 시사주간 렉스프레스는 보도했다. 정치 평론가인 크리스토프 바르비에는 “대통령을 위해서도 좋은 선택이었다”고 평가했다. 유럽연합의 녹색당 의원이었던 다니엘 콘벤디트는 “9분여의 담화는 대단히 인상적이었다”며 “올랑드는 그의 겸허한 선택으로 역사에 남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향후 정치 지형에 대해선 “이젠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다고 믿어왔던 초강력한 대통령의 시대는 종언을 고했다고 봐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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