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국민을 그만 고생시켜라
  • 이현우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12.20 13:21
  • 호수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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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 총체적 난국이다. 국정조사에서 새로 밝혀지는 비리들이 상식을 믿었던 범부(凡夫)의 어리석음을 비웃는다. 이전 칼럼에서 필자는 대의제 민주주의에서 무기력하던 시민들이 촛불로 상징되는 광장민주주의를 통해 다시 활성화됐다고 평가했다. 언론의 권력 감시와 비판이 부활한 것을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신호로 읽었다. 그런데 권위주의 잔재 청산과 새로운 정치를 낙관하기가 어렵다. 변화에 조응하는 대안이 부재하고 아직도 구시대적 정치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정치권 때문이다.

 

청와대는 즉시 하야하라는 촛불의 외침을 외면하고 헌법재판소는 모든 탄핵 사유에 대해 판단을 해야 한다고 하니 국민이 원하는 결과까지는 백년하청(百年河淸)이 될 모양이다. 국민을 더 힘들게 하는 것은 대안부재의 정치권이다. 대통령 탄핵에 대해 도덕적인 연대책임이 있는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은 국회 방문에서 국회의장이 제시한 여·야·정 협의체 운영에 대해 즉답을 피했다. 정당들과 협의를 거치지 않는다면 국민에 의해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권한대행이 국정교과서, 사드 배치 등 여론과 배치되는 정책을 추진할 정당성을 가지고 있는지 의문이다.

 

새누리당 정우택 신임 원내대표(오른쪽)와 이현재 정책위의장이 12월20일 오전 국회 더불어민주당 당 대표실을 찾아 취임인사를 하려다 무산되자 뒤돌아서고 있다. 야3당은 친박계 원내 지도부를 협상 상대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 연합뉴스

답답하기는 정당들도 마찬가지다. 새누리당의 친박은 아직도 박근혜 구하기에 미련을 가지고 있는 모양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제대로 고언(苦言)조차 하지 못한 의리와 충성은 조폭의 그것과 다를 것이 없다. 맹목적인 충성이나 하라고 국민이 뽑아준 것이 아니다. 새누리당은 11월초에 대국민 사죄문을 통해 국민이 용서할 때까지 계속 사죄하고 기다리겠다고 했으며, 죽어야 다시 살 수 있다고도 했다. 12월16일 새누리당 원내대표로 선출된 친박의 정우택 의원은 “진보좌파의 집권을 막겠다”고 출사표를 던졌다. 이념 프레임을 동원해서 위기를 모면하겠다는 고육지책이다. 자기반성은 없다.

 

민주당도 보고 있자면 한숨을 자아낸다. 이렇게 국가가 위중한 상황에서 합의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문재인 전 대표의 발언은 모두 대선 겨냥용으로 해석되고 있다. 추미애 대표의 계속된 헷갈리는 행보는 당내 의견을 제대로 수렴하지 못한 결과다. 탄핵만이 목표였는지 탄핵 이후 정국에 대한 총체적 청사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기껏해야 황  권한대행에 대해 자중하라는 엄포를 놓는 정도에 그칠 따름이다. 국민의당은 박지원 원내대표의 정치논평만 바라보고 있다. 안철수 전 대표는 국민의당과 따로 움직이고 있다.

 

국민은 손난로로 손을 녹이고 목이 쉬도록 외치면서 대통령 탄핵을 이뤄냈다. 이렇게 선하고 능력 있는 국민은 다른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다. 그러나 정치인들은 변한 것이 없다. 촛불에 편승하려 할 뿐 국가를 위한 대승적 사고를 하지 못하고 있다. 중립내각 구성이라는 그럴듯한 수사적 언급에 그칠 뿐이며 이를 실천할 의지는 볼 수 없다. 누구를 위해 정치에 몸담고 있느냐고 준엄하게 묻고 싶다. 지금의 정국에선 정치인 모두가 백척간두에 서 있는 것이다. 이제 국민을 그만 실망시키고 코페르니쿠스적 사고 전환을 해야 할 때다. 유약한 시민의 시대는 끝나고 성난 시민의 시대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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