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드라마, 김은숙으로 시작해서 김은숙으로 끝나다
  • 하재근 문화 평론가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12.22 15:21
  • 호수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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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후예》에 이어, 연말 최고의 화제작 《도깨비》로 증명된 김은숙 작가의 능력

2016년을 김은숙 작가가 열고 닫는다는 말이 나온다. 올 초 김 작가의 《태양의 후예》가 엄청난 인기를 얻은 데 이어, 최근 tvN에서 방영을 시작한 《쓸쓸하고 찬란하神 도깨비》(《도깨비》)가 연말을 강타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깨비》는 1회 시청률 6.322%(닐슨코리아 유료 플랫폼 기준)로 tvN 사상 최고의 첫 방송 시청률을 기록했고, 2주 차에 12%를 돌파하면서 가장 빠른 시청률 상승세를 보였다.

 

특히 화제성이 신드롬 수준이다. 방송 첫 주에 굿데이터코퍼레이션 TV화제성 드라마 부문 1위를 차지했다. 2위인 《푸른 바다의 전설》의 화제성 점수는 4315점이고, 그 전에 신드롬을 일으켰던 작품들의 첫 주 점수가 《태양의 후예》 5518점, 《응답하라 1988》 5260점, 《구르미 그린 달빛》 4720점이었던 데 비해, 《도깨비》는 무려 7449점을 기록했다. 그야말로 메가톤급인 것이다. TV출연자 화제성 드라마 부문에서도 공유·이동욱·김고은이 《푸른 바다의 전설》의 전지현·이민호를 밀어내고 1~3위를 싹쓸이한 것을 비롯해, 육성재와 유인나에 이르기까지 《도깨비》의 주요 출연진이 모두 10위 안에 이름을 올렸다.

 

tvN 드라마 《도깨비》 © tvN

서사성이 약하다는 기존의 약점도 보완

 

또 OST 음원은 음원시장을 강타하고, 극 중에 잠깐 소개된 김용택 시인의 책은 베스트셀러가 됐다. 케이블 채널 광고 단가 기록도 갈아치웠다. 기존 1위가 《삼시세끼 어촌편》의 1150만원(15초)이었는데, 《도깨비》는 1380만원(15초)을 찍었다. 증권가에서 《도깨비》를 계기로 CJ E&M의 실적이 개선될 것이란 분석이 나오면서 CJ E&M 주가도 올랐다.

 

《도깨비》는 935년을 산 불멸의 도깨비 김신(공유)이 자신을 소멸시킬 도깨비 신부를 찾았으나, 막상 찾은 도깨비 신부 지은탁(김고은)을 사랑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거기에 기억을 잃은 저승사자(이동욱), 대대로 김신을 섬기며 재벌이 된 집안에서 태어난 유덕화(육성재) 등이 도깨비와 동거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들, 저승사자와 써니(유인나)의 기묘한 인연 등이 추가돼 다양한 몰입의 지점들을 만들어낸다.

 

김은숙 작가 © tvN
《도깨비》의 이응복 PD는 이미 김은숙 작가와 콤비를 이뤄 《태양의 후예》를 성공시켰다. 이 PD는 《태양의 후예》에서 탁월한 영상미를 선보였는데, 《도깨비》에서도 매 장면이 화보라는 찬탄이 나오고 있다. 특히 김신이 도깨비가 되는 과정을 담은 1회는 드라마 수준을 뛰어넘어, 영화를 방불케 한다는 평가까지 나왔다. 중화권 유명 배우이며 SNS 팔로워가 3000만 명에 달하는 서기(舒淇)가 “모든 장면이 가슴 뛰게 아름답다”며 《도깨비》 관련 이미지를 SNS에 게시할 정도로, 《도깨비》의 영상미는 흥행 성공의 중요한 동력이 되고 있다.

 

여기에 불멸의 존재로서 인간사에 냉담하지만 마음속엔 따뜻한 연민이 있고, 또 소녀(지은탁)에게 은근히 상냥한 김신의 반전 캐릭터가 여심을 저격했다. 도깨비 신부 단 한 명만을 사랑할 수 있고, 그 신부를 천년 가까이 기다려 만났다는 ‘운명적 사랑’의 설정, 하지만 그 사랑으로 인해 김신이 소멸해 버릴 수 있다는 안타까움도 인기 요인이다. 여기에 브로맨스 꽃미남 군단 코드도 엮었다. 김신·저승사자·유덕화라는 3명의 미남이 동거한다는 설정을 통해서다. 어떻게 보면 시트콤처럼 낯간지러운 설정이지만, 어쨌든 여심은 반응했다. 4회 순간 최고 시청률이 남녀 주인공이 아닌 김신과 유덕화의 투샷에서 나올 정도다.

 

김은숙 작가는 이 작품에서 서사성이 약하다는 기존의 약점도 보완했다. 각 캐릭터의 사연을 공들여 주조해 이야기의 깊이를 강화한 것이다. 그래서 김신은 천 년 전 이야기부터 시작했고, 지은탁은 태어나기 전 시점부터 소개됐다. 김 작가는 이에 대해 “주변으로부터 늘 듣는 이야기가, 대사발만 있다는 지적이었다. 그거마저 없는 거보단 낫다는 생각을 한다”면서도 “이번 작품은 서사를 마지막까지 잘 이끌어서 열심히 하려고 한다”고 한 바 있다. 마지막까지 서사가 잘 이루어질지는 아직 모르지만, 초반의 서사성만은 전작들을 뛰어넘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여심 저격하는 ‘심쿵 포인트’의 대가

 

‘여심(女心) 분석’이라는 학위가 있다면 김은숙 작가야말로 박사감이며, 이 시대 여성의 ‘심쿵 포인트’를 가장 잘 그려낸다는 찬탄이 그전부터 있어왔다. 그런 김 작가의 능력이 《도깨비》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됐는데, 그건 바로 시청자를 환상에 빠뜨리는 캐릭터와 설정, 그리고 뇌리에 꽂히는 대사를 뽑아내는 능력이다. 김 작가의 캐릭터 창조 신공은 주로 남자 캐릭터에서 빛난다. 《파리의 연인》의 박신양, 《시크릿 가든》의 현빈, 《상속자들》의 이민호, 《태양의 후예》의 송중기, 《도깨비》의 공유에 이르기까지 일세를 풍미한 남자 캐릭터들이 그의 손에서 만들어졌다.

 

김 작가는 여자들이 원하는 ‘엄청난 남자’가 어떤 사람인지, 그가 여자에게 어떻게 다가왔을 때 여자들이 ‘심쿵’하는지를 동물적으로 알아낸다. 그것이 과거엔 주로 까칠한 재벌이었고, 《태양의 후예》에선 군인으로 새로운 포인트를 줬는데, 그 군인은 돈이 없는 대신에 거의 초인에 가까운 능력자였다. 그리고 《도깨비》에선 돈과 초인 코드를 결합해 남자주인공을 무한한 재력에(재벌을 집사로 부릴 정도) 초인적 능력까지 갖춘 ‘신’으로 만들었다. 이에 대해 김 작가가 “일단 남주(인공)가 도깨비이고 신이다. 재벌 10명이 와도 못 이긴다. 엄청나게 멋있다”라고 말했다.

 

여기에 감각적인 폭풍 전개 직진로맨스, 착착 꽂히는 대사 투척으로 시청자의 얼을 빼놓는다. 과거 “애기야 가자” “왜 말을 못해”(《파리의 연인》), “이게 최선입니까” “이 여자가 나한테는 전도연이고 김태희입니다”(《시크릿 가든》), “나 너 사랑하냐?”(《상속자들》), “사과할까요 고백할까요” “그 어려운 걸 자꾸 해냅니다 내가” “이 시간 이후로 내 걱정만 합니다”(《태양의 후예》) 등이 팬들을 설레게 했고, 이번엔 “저 시집갈게요, 아저씨한테. 사랑해요” “어이가 없네. 내가 재벌인데” 등의 대사와 함께 공유가 읽은 시구(詩句)도 회자된다. 《도깨비》로 김은숙 작가는 ‘심쿵 포인트’를 잡아내는 대가라는 것을 다시금 입증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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