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앞둔 헌법재판소의 과제
  •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sisa@sisapress.com)
  • 승인 2017.01.03 15:50
  • 호수 142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신속·공정한 탄핵심판으로 민주공화국 헌정 정상화시켜야

다시 헌법재판소가 헌정의 중심에 섰다. ‘광화문 촛불’로 상징되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대한 온 국민의 열망이 헌재의 심판에 맡겨진 것이다. 국민의 관심이 헌재의 일거수일투족에 모아지고 있다. 평소 헌법재판관이 누구인지 관심조차 없던 국민들도 그들의 퇴임일자를 꿰고 있을 정도가 됐다. 헌법재판관 한 사람의 공백이 탄핵 반대로 간주되고, 재판관 3명이 공석이면 헌재가 활동정지 상태에 빠진다는 것도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됐다. 헌재가 어떻게, 무슨 결정을 내리는지에 따라 민주공화국의 명운이 달린 셈이다.

 

 

헌법재판, 국가권력 통제 위한 제도

 

이처럼 탄핵의 결정권을 헌재가 가지는 데 불만을 표시하는 사람도 있다. 도대체 국민이 뽑지도 않은 소수의 재판관에게 그런 중대한 결정을 맡기는 게 민주적인가라는 의문을 갖는 것이다. 이번 ‘박근혜 게이트’의 경우에도 주권자인 국민 90%를 넘나드는 절대다수가 탄핵을 원하고 국회 재적 3분의 2를 훨씬 넘는 234명의 국민 대표자인 의원들이 소추결의에 참여했는데 고작 9명의 재판관이 최종결정을 하는 현실에 대해 분통을 터뜨리는 사람도 있다.

 

사실 헌재가 탄핵심판권을 포함해 위헌법률심사권 등 헌법재판권을 가지는 것이 반민주적이라는 주장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의회민주주의의 원조인 영국에서는 아직도 본격적인 헌법재판제도가 없다. 민주혁명의 전통이 강한 프랑스 같은 나라에서 헌법재판이 뒤늦게 도입된 것도 바로 그런 인식 탓이다.

 

‘박근혜 퇴진과 시민정부 구성을 위한 예술행동위원회’ 회원들이 2016년 12월29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마치고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뉴스1

그러나 헌재의 탄핵심판권 자체가 반민주적이라는 주장은 무엇이 민주주의인가에 대한 좀 더 높은 차원의 성찰을 필요로 한다. 우선 민주주의의 현대적 이해는 인간의 존엄과 개인의 행복추구권에 기초한 공화체제라는 가치를 전제로 한 것이다. 흔히들 자유민주주의(liberal democracy)라고 부르는 민주주의의 개념은 사실은 민주주의가 수단적 개념이고 주된 가치는 기본적 인권을 중심으로 한 자유주의와 공화국 원리이다. 개인의 존엄과 정치적 평등을 부인하는 것은 아무리 다수의 의사라 해도 용납할 수 없다는 이념이 자유민주주의다. 헌법재판이 다수의 의지에 반해 개인의 불가침적인 인권과 공화국의 기본질서를 보장하기 위해 정치적 권력을 통제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개념요소와 충돌되지 않는다. 오히려 자유민주주의의 개념 속에서 헌법재판은 민주주의의 필수요소가 된다.

 

헌재의 탄핵심판권이 반민주적이라는 주장은 다음과 같은 현실적 문제에도 답해야 한다. 주권자인 국민이 원하는 것이라면 아무런 제약 없이 실현돼야만 하는가? 국회의 결정은 과연 민주적인 것인가? 주권자인 국민들도 순간적인 감정에 휩쓸려 오판을 할 수 있는 위험성은 얼마든지 있다. 특정 시점의 국민들이 옳다고 판단했던 것도 상황의 변화에 따라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매우 유동적인 것이다. 또한 국민의 대표자들도 전체 국민의 이익을 위해야 한다는 헌법적 명령에도 불구하고 사사로운 정파적 이해관계에 집착해 비상식적인 결정을 하기도 한다. 이들의 결정이 항상 민주적이라고 단정할 수 있는가? 바로 이런 의문들이 헌정질서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국가적 결정을 정치 과정에서의 합의에만 맡길 수 없는 근본적인 이유다.

 

주권자인 국민마저도 헌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정치적 주권을 행사할 수 있다거나, 국회마저도 그 결정의 타당성을 헌재의 판단에 맡겨야 하는 제도는 이런 취지에서 헌법제정권자가 도입한 것이다. 모두 국가적 결정의 과정에 특정인이나 특정 집단에 의한 독재가 가능하지 않도록 하는 민주공화주의 정신에 따른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반영한 것이다. 헌법재판은 전통적으로 입법·행정·사법의 권력분립만으로는 국가권력의 오남용을 통제할 수 없다는 경험 때문에 헌법적 가치판단을 준거로 국가권력을 통제하기 위해 현대 민주주의에서 새로이 발전시킨 제도이다. 1987년 체제는 이 제도를 활성화함으로써 기본적 인권과 민주주의의 안정화에 기여해 왔다. 예컨대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건의 경우 헌재는 국회의 탄핵소추가 타당하지 못하다고 봐 기각했고, 다수 국민은 그 결정에 환호를 보냈다. 따라서 헌재에 의한 탄핵심판제도 자체를 반민주적이라고 단정할 것은 아니다.



권한대행은 임시방편, 최대한 빨리 수습해야

 

그렇다고 헌재의 결정을 마냥 손 놓고 바라만 보고 있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수도가 서울인 것이 관습헌법이라는 허황된 논리로 신행정수도건설법을 위헌 선언해 행정수도 건설을 무산시킨 결정과 같이 헌재도 오판할 수 있는 국가권력의 하나이므로 주권자인 국민들이 두 눈 부릅뜨고 감독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을 맡게 된 헌재에 주어진 과제도 바로 헌법에 탄핵심판제도가 마련된 본질적 이유에 입각해 국민적 탄핵결의의 타당성을 제대로 판단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헌재는 임명권자로부터 독립돼 심판해야 한다는 헌법적 명령에 충실해야 한다. 세간에 지금 헌재의 구성이 매우 보수적이어서 사유가 충분함에도 불구하고 탄핵기각 결정이 내려질 수도 있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없지 않다. 박근혜 대통령이 헌재소장을 임명하고 친박 주도의 새누리당 추천을 받은 헌법재판관이 심판에 관여하는 것도 그런 우려에 한몫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탄핵심판은 고위공직자에 의한 ‘헌법침해로부터 헌법을 수호하고 유지하기 위한 제도’이다. 헌법수호 기능을 통해 민주주의를 더욱 안정화시키는 것이 탄핵심판의 본질이라는 점에서 헌재는 오로지 공정한 심판을 통해 그런 우려를 불식시켜 줘야 한다.

 

탄핵심판에서 특별히 고려돼야 할 공정성의 내용은 탄핵심판제도의 본질에서 나온다. 탄핵심판은 직무수행상 헌법과 법률을 위반한 공직자를 파면시킴으로써 공직의 정당성과 합법성을 회복하는 것이 제1차적 임무이다. 물론 대통령에 대한 징계이므로 적법한 절차에 따라 재판이 진행돼야 할 것이다. 그러나 탄핵심판은 형사상 책임을 묻는 재판이 아니고 헌정질서에 중요한 공직 자체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므로 탄핵시킬 만한 하나의 사유라도 확인되면 신속히 탄핵을 결정하는 것이 헌법정신에 부합한다. 헌재법에서 탄핵심판절차에 형사소송법령을 준용하도록 하면서도 ‘헌법재판의 본질에 반하지 않은 경우’로 그 한계를 설정한 것은 바로 이런 취지를 반영한 것이다.

 

탄핵심판에서 신속성이 공정성의 한 요소라는 점은 권한대행체제의 헌법적 한계에서도 확인된다. 정부수반인 대통령의 공백을 막기 위해 민주적 정당성이 취약한 국무총리가 권한을 대행하는 체제는 헌정의 흠결을 임시방편으로 수습하는 과도적인 것이므로 적극적인 국정처리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수습하는 것이 헌정의 정상화에 긴요하며 이를 실현하는 것이 헌재의 과제이다. 헌재가 신속·공정한 탄핵심판으로 민주공화국 헌정을 조속히 정상화하는 과제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길 충심으로 고대한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