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들이 특검 사무실로 몰려간 이유는
  • 노경은 시사저널e. 기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7.01.03 16:10
  • 호수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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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종, 정몽구 회장 고발 등 악재 계속…현대차의 야심작 강남 신사옥 건설 일정 차질 불가피

현대차그룹이 야심 차게 추진하고 있는 강남 신사옥 ‘GBC’(글로벌비즈니스센터) 건립에 암초가 잇따라 등장하면서 착공 일정이 당초 예상보다 늦춰지고 있다. 현대차는 2014년 9월 부지매각 입찰에서 예상가의 3배에 이르는 10조5500억원이라는 파격적인 금액을 써낸 것을 시작으로 해당 사업에 공을 들여왔지만, 서울시와 강남구 갈등에 따른 문서상 불편에 이어 종교단체 시비까지 악재가 이어지고 있다. 서울시 동남권공공개발추진단 관계자는 “현대차가 여러 사정상 일정을 미루고 있어 당초 계획인 내년(2017년) 1월 착공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2016년 9월 지구단위계획 결정 이후 진작 이뤄졌어야 할 건축허가를 위한 교통 및 환경영향 평가를 아직 완료하지 않은 상태다. 그러나 현대차 관계자는 “애초 1월 착공이라고 못 박은 적은 없다”며 “준공 예정 일정인 2021년을 맞추기 위해 2017년 안에는 착공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현대차는 서울 강남구 삼성동 167번지 옛 한국전력공사 7만3941㎡ 부지에 최고 105층, 전체 면적 56만611㎡의 GBC와 함께 40층 높이의 호텔·업무동, 국제적 수준의 전시장(3층), 컨벤션(3층), 공연장(7층), 전시 기능을 포함한 판매시설(8층) 등 총 6개 동을 지을 계획이다. 전체 면적으로 따지면 92만8887㎡다. 최대 높이는 553m로, 555m인 제2롯데월드타워보다 불과 2m 낮다. 서울시와 현대차는 부지 중앙에 공공보행로를 만든 뒤 이를 코엑스와 탄천·잠실운동장까지 연결하고, 메인타워 104층과 105층은 관광객에게 전망대로 개방하는 등 공공성을 강화할 계획이다.

 

서울시 강남구 삼성동에 세워질 현대자동차 신사옥 조감도 © 서울시 제공

서울시 측 “당초 예정인 1월 착공 어려워”

 

현대차는 독일 볼프스부르크에 위치한 폴크스바겐의 본사 아우토슈타트처럼 GBC를 비즈니스와 관광·문화·컨벤션 복합공간인 ‘한국판 아우토슈타트’로 만든다는 포부를 품고 2016년 초부터 건립을 본격 추진했다. 이에 각계 전문가들은 1990년대 초반 벤처산업 붐이 일면서 강남대로와 테헤란로 등에 형성됐던 서울 강남권 경제의 중심이 2020년대에는 현대차의 GBC 건립으로 인해 삼성역 일대로 이동할 것이라는 전망을 쏟아내며 장밋빛 미래를 예고했다.

 

사업추진 초기만 해도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했다. 2016년 2월 서울시와 현대차는 GBC 건립을 위한 사전 협상으로 밑그림을 그렸다. 서울시는 한전 부지를 제3종일반주거지역에서 상업용지로 바꿔 용적률을 높여주고, 현대차는 1조7491억원의 공공기여금을 내는 조건이다. 이어 서울시가 2016년 안에 도시계획 변경과 건축 인허가 등을 마치면 현대차는 2017년 1월 GBC의 착공에 들어간다는 계획이었다. 이를 위해 현대글로비스를 시작으로 옛 한전 본사에 입주해 있던 현대차그룹 계열사인 현대글로비스·현대종합특수강·현대제철 등 6개 계열사 소속 사원 1000여 명이 2016년 상반기 이주를 완료했다. 기존 한전 사옥은 철거가 진행됐다. 현대차그룹은 당시 지역사회 발전 이바지 차원에서 GBC 건설현장 식당 운영을 포기하고 인근 식당을 이용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그러나 공공기여금 용처를 두고 서울시와 강남구의 갈등이 불거졌고, 여기에 종교계 민원까지 확산되면서 일정은 어긋나기 시작했다. 지난 9월 서울시 도시·건축공동위원회가 통과시킨 GBC 부지 지구단위계획 결정안을 보면, 기존 제3종일반주거지역을 일반상업지역으로 변경해 주거·상업시설을 짓도록 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하지만 강남구청은 현재까지 행정 처리를 미룬 채 토지이용계획을 변경하지 않고 있다. 이로 인해 GBC 부지는 법적으로는 일반상업지역으로 지구단위계획이 변경됐는데도 불구하고, 토지이용계획서 상에는 여전히 제3종일반주거지역으로 남아 있다. 각종 인허가 절차를 진행해야 하는 현대차 입장에서 서류상 용도 미변경은 이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강남구청 관계자는 “서울시의 요청대로 토지이용계획 변경 사항을 등재할 경우, 현재 진행 중인 소송에 영향을 끼칠 수 있어 일시적으로 보류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현재 강남구청은 현대차가 내놓은 공공기여금 1조7000억원의 용도를 둘러싸고 서울시와 소송 중이다. 서울시는 공공기여금을 영동대로 지하 복합환승센터 개발과 올림픽대로와 탄천 동·서로 지하화, 잠실종합운동장 일대 개발 등에 우선 투입하려는 입장이다. 반면 강남구는 현대차의 공공기여금이 강남구에만 최우선으로 사용돼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서울시를 상대로 국제교류복합지구(코엑스〜잠실종합운동장) 지구단위계획구역 결정고시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서울행정법원이 2016년 7월 1심 판결에서 “강남구에 개별적 권리가 있다고 보기 어려워 원고 적격이 없다”며 소송을 각하했지만, 곧바로 항소해 현재 2심이 진행 중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역사문화환경보존대책위 승려들이 2016년 12월27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특검 사무실 앞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정몽구 현대차 회장을 뇌물죄와 뇌물공여죄로 각각 특검에 고발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조계종 “정 회장, 대통령 면담 뒤 사업 진행”

 

한편 현대차는 GBC 부지 인근에 위치한 봉은사를 주축으로 한 조계종의 민원에도 시달리고 있다. 이와 관련, 대한불교조계종의 전국 교구본사 주지 스님들은 서울시가 현대자동차 GBC 개발계획 인허가를 중단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이들은 현대차가 건설할 계획인 초고층 사옥이 너무 높아 인근 봉은사 문화재에 악영향을 끼칠 우려가 있다는 점을 문제 삼고 있다. 스님들은 수차례 결의문을 통해 현대차의 초고층 사옥 건축은 봉은사의 역사문화수행환경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다며 사옥 건축계획을 55층 이하로 전면 수정하라는 경고를 이어왔다. 서울시를 향해서도 박원순 서울시장이 현대차 사옥 개발계획을 강행할 경우 전통문화 파괴의 책임을 물어 전국 사찰의 출입을 금지하고, 서울시장에 대한 주민소환운동을 범불교적 운동으로 전개하겠다며 맞서고 있다.

 

그럼에도 서울시와 현대차가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자 급기야 12월27일 조계종 봉은사 역사문화환경보존대책위원회는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을 ‘박근혜 정부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을 수사하는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뇌물공여죄로 고발했다. 정 회장을 고발한 건 현대차의 서울 삼성동 한전 부지 신사옥 건립과 관련해 대가성 특혜 의혹 수사를 촉구하기 위해서다. 대책위 관계자는 “정 회장은 2015년 1월5일 박 대통령과 면담한 다음 날 한전 부지에 현대차 사옥 건립 등 80조7000억원 투자를 발표했고, 이후 건축 허가 과정은 단 6개월의 사전협상을 통해 모두 마무리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특검은 철저한 수사로 대가성과 졸속 행정의 범죄행위를 규명해 봉은사의 전통문화 수호 및 환경이 침해되는 일이 없도록 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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