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권리’ 특종과 기자윤리 사이에서의 고민
  • 김경민 기자 (kkim@sisapress.com)
  • 승인 2017.01.04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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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들에게 물었다 “JTBC의 정유라 검거 특종 보도, 만약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행방이 묘연했던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가 방송국 카메라에 포착됐다. JTBC는 1월2일 덴마크에 체류 중이었던 정씨 체포 소식을 단독으로 전했다.

 

뉴스룸은 정씨가 체포되기까지의 과정을 담은 화면을 말 그대로 ‘대방출’ 했다. 기자가 정씨의 은신처를 발견한 순간부터 시작해 정씨 집 앞에서 그의 흔적을 찾고, 그를 현지 경찰에 신고하기까지의 모든 과정이 ‘단독’이란 이름을 달고 공개됐다.

 

해당 보도는 국내에 큰 파장을 몰고 왔다. 또한 ‘해당 보도가 과연 저널리즘의 원칙’에 부합했는가에 대한 논란을 일으켰다.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켰다는 의견과 기자는 현장 개입을 최대한 배제하고 보도에만 충실해야 한다는 의견이 부딪혔다.

 

정씨가 체포될 수 있었던 건, 정씨를 취재하고 있었던 이가혁 JTBC 기자의 신고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해당 기자는 덴마크 올보르에 위치한 주택에서 정씨가 은신 중이라는 제보를 받고, 12월30일 오후 결국 그녀의 은신처를 찾아냈다. 반나절 가까이 정씨 은신처 앞에서 이른바 ‘뻗치기’를 했으나 정씨는 커녕 은신처 안의 어느 누구도 만날 수 없었던 기자는 결국 다음날 오후 현지 경찰에 정씨를 신고했다.

 

 

ⓒ 연합뉴스

JTBC가 공개한 화면엔 정씨의 소재를 현지 경찰에 신고하는 기자의 모습과 경찰이 정씨의 집에 도착해 조사를 위해 집에 들어가는 모습, 기자가 현지 사정당국의 협조 요청에 응하는 모습, 마침내 정씨가 경찰의 손에 이끌려 경찰서로 이송되는 모습까지 여과 없이 전파를 탄 것이었다. 마치 한 언론사의 무용담처럼 느껴지기 조차하는 장면들이었다.

 

과연 언론계에 종사하는 타 매체의 기자들은 이 보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시사저널은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타 매체 언론사 기자들에게 물었다.

 

 

▲ 주간지 차장급 A 기자 “기자 개입은 적절치 않다”

“기자로서 나의 역할은 ‘정확하고 공정한 보도’라고 생각한다. 보도자로서 사정기관의 요청에 따라 조사에 협력을 할 순 있지만, 자신이 직접 사건을 신고하고 그 과정을 독점적으로 취재하는 건 보도 윤리에 어긋난다고 본다. 이번 건에서 보여준 것과 같은 기자의 개입은 적절치 않았다고 본다.

 

▲ 지상파 10년차 B 기자 “JTBC의 중압감이 느껴지는 보도”

“최순실 사건에 대한 JTBC의 중압감이 느껴지는 보도라고 본다. 국민감정과 약간 거리가 있을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기자가 신고한 것은 너무 나간 것이라고 본다. 최순실 정국을 주도해온 매체로서 JTBC에게 정유라씨는 중요한 소재였을 거다. 이미 나올 것들은 나온 지금의 상황에선 특히나. 그런 환경 속에서 ‘무리수’로 보이는 행동을 하게 된 게 아닐까 싶다.”

“만약 내가 그 상황이었다면 일단 내 눈으로 정유라씨 얼굴을 확인하고 기사화 한 뒤에 오히려 한국 쪽 사정기관에 알렸을 것 같다. 국내 사정기관에 정씨의 위치를 알리고 조치를 취하라고 공조하지 않았을까.”

 

▲ 인터넷매체 부장급 C 기자

“언론의 비개입 원칙엔 분명 어긋났다. 그런데 과거와는 언론의 의미가 좀 달라졌다고 본다. 이제 누구라도 휴대폰만 있으면 보도를 할 수 있다.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그대로 전달하는 것도 중요한 뉴스가치를 지닌 시대라고 본다.”

“나라도 아마 신고를 한 뒤 카메라를 들이댔을 것 같다. 일단 국민감정이 원하는 것 아닌가. 국민들은 정유라씨가 잡히는 모습을 보고 싶어 했을 것이다.”

 

▲ 경제일간지 D 기자 “언론인은 역사의 관찰자로 남아야”

“JTBC 기자가 사정당국에 신고한 정황은 심적으론 이해가 간다. 하지만 역사의 관찰자로 남아야 되는 언론인의 입장에서 보도윤리를 어긴 것도 사실이다. 가장 현명한 방법은 신고를 하되 신고 이후 상황에 대해선 취재를 하지 않거나, 다른 마을 사람에게 해당 사실을 알려 신고 협조를 얻는 방법 등이 아니었을까. 이 역시 개입하는 행위로 볼 수는 있지만, 그 상황에서는 차선의 타개책이라고 생각한다.”

 

▲ 주간지 E 기자 “기자는 감시자지 해결사가 아니다”

“단독 영상에 대한 욕심이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저렇게 ‘만들어 먹는’ 기사는 악용될 소지가 있다. 이 사안에 대해서는 박수를 받겠지만, 이 방법이 차후에 악용될 위험성이 있다는 것이 문제다. 언론이기라기보다 자경단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나라면 차라리 뻗치기를 해서 영상만 따고 그 집 앞에서 리포트를 했을 것이다. 뻗치기 중에 도망을 간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영상을 따서 리포트를 해야 한다. 경찰이나 검찰이 할 일이 있는 것처럼, 기자는 기자가 할 범위가 있고 할 일이 있다.”

“기자는 감시자이지 해결사가 아니다. 시민의 욕망은 정치권이 구현해내야 하고, 부조리에 대한 적발은 사정당국이 해야 하며, 기자는 이 과정들을 감시하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 감시자여야 할 언론이 해결에까지 나서게 된다면, 이는 곧 새로운 권력의 탄생을 의미한다.”

 

▲ 일간지 F 기자

“기자들 사이에서는 논란이 될 수는 있는데, 논란이 된다는 것 자체가 기자들이 일반 국민과 정서적으로 따로 논다는 이야기라고 본다. JTBC 기자가 정유라씨를 신고하는 게 취재 윤리에 문제가 있다고 하는데, 이런 취재 윤리가 존재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선수는 개입하면 안 된다는 불문율을 어겨서 생긴 논란인데, 그런 불문율은 누가 만들었나.”

“JTBC 보도가 잘못됐다고 보지 않지만, 만약 내가 그 현장이라면 신고는 하지 않았을 것 같다. 신고하고 난 뒤에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고 내가 통제하기 어려운 게 1차 이유다. 그냥 뻗쳐서 계속 기다릴 것 같다. 그리고 정유라씨의 얼굴이 내 눈에 확인 된다면 기사를 썼을 것이다.”

 

▲ 월간지 G 기자 “말이 단독 보도지 ‘함정 취재’였다”

“기자로선 분명 욕심이 나는 상황이었을 거다. 단독으로 정유라씨의 소재를 파악했고, 아직까지 최근 모습이 알려지지 않았던 정씨의 모습을 포착할 기회가 눈앞에 와있는 거였다. 당연히 정씨를 문 밖으로 끌고 나오고 싶었을 거고, 카메라 앞에 세우고 싶었을 거다. 하지만 기자가 스스로 신고하고 경찰이 오는 모든 과정을 ‘단독’이란 이름을 붙여 보도한 것은 언론인다운 보도는 아니었다고 본다. 말이 단독이지 함정취재다. 자기가 함정을 파서 거기에 희생양을 몰아넣고 카메라를 들이대는 게 과연 올바른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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