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밀리면 죽는다”, 진박 vs 범박
  • 박혁진 기자 (phj@sisapress.com)
  • 승인 2017.01.09 09:20
  • 호수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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眞朴 vs 汎朴 내전… 2차 대규모 탈당 가능성도

비박계 의원들이 탈당하면서 마무리될 것 같았던 새누리당 내분이 격화되고 있다. 친박 중심의 단일 대오를 형성하면서, 인명진 목사를 통해 이미지 쇄신을 하려던 계획은 사실상 물 건너갔다. 오히려 친박계 내에서도 ‘건널 수 없는 강’이 존재한다는 사실만 확인하면서 2차 탈당 가능성만 커졌다. 비박이 탈당한 상황에서 새누리당은 핵심 친박이라고 할 수 있는 진박(眞朴)계 의원들과 코어그룹에 속해 있지 않지만 지난 공천 과정에서 친박의 지원을 받은 범박(汎朴·범친박)계로 나뉘어 있다. 진박 의원들을 정확하게 누구라고 얘기하기는 어렵다. 다만 최근 인명진 비상대책위원장 취임 후 돌았던 살생부 명단과 큰 틀에서 다르지 않다는 것이 새누리당 내부의 대체적 인식이다.

 

새누리당 관계자나 출입기자들 사이에서는 서청원 의원을 필두로 최경환·윤상현 의원 등을 비롯해 홍문종·조원진·김진태·이장우 의원 등 20명 내외를 진박으로 분류하고 있다. 이들을 제외하면 대체로 범박으로 분류되는데, 정우택 원내대표를 비롯해 정진석·원유철·이주영·이명수 의원 등이 대표주자로 꼽힌다. 최근 서 의원과 인 비대위원장이 벌였던 ‘설전’은 사실상 두 그룹 간 대리전으로 볼 수 있다.

 

인명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가운데)이 2016년 12월23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위해 입장하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범박, 인적 청산 후 충청 중심 대선 준비

 

두 그룹 간 주도권 싸움은 당분간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두 그룹이 그리는 그림이 다르기 때문이다. 일단 범박계는 친박 핵심 인적 청산을 통해 당 정체성을 바꾸려 하고 있다. 여기까지는 잘 알려져 있다. 이후 계획은 충청권 중진들이 무게중심을 잡고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을 대선후보로 영입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새누리당 외곽조직을 담당하는 한 인사는 “TK(대구·경북)를 중심으로 한 새누리당 친박 핵심 인사들에 대한 인적 청산이 이뤄지면 이후 충북은 정우택 원내대표, 충남은 정진석 전 원내대표를 중심으로 조직을 재정비해 대선을 치르려는 계획이었다”며 “정통 보수정당 이미지에 충청 지역표와 반기문 브랜드까지 더해지면 대선도 가능하다고 봤다”고 말했다. 비대위원장으로 영입된 인명진 목사 역시 충청 출신이다.

 

진박그룹의 생각은 다르다. 대선보다는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를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 따라서 여기서 밀리면 말 그대로 ‘폐족(廢族)’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위기감에 휩싸여 있다. 이정현 전 대표가 탈당한 것도 이런 연장선상에서 해석할 수 있다. 다른 새누리당 진박 의원들과 달리 호남지역 의원인 이 의원이 계속 새누리당에 남아 있을 경우 다음을 기약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TK를 기반으로 한 새누리당 의원들의 경우 상황이 다르다. 여전히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하는 당원들 중 상당수가 TK에 몰려 있기 때문에 새누리당을 떠날 수 없다. 모두 손가락질해도 당을 떠나지 않는 이유다. 새누리당 출입기자들은 이를 두고 “재집권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라고까지 표현한다. 한 종편의 새누리당 출입기자는 “자신들만으로는 정권 재창출이 어렵다고 보고 있다. 대신 대구·경북을 중심으로 한 보수 세력의 지지를 두텁게 한 다음 후일을 도모하려는 전략을 펴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최근 새누리당 산하 여의도연구소에서 낸 리포트에서 ‘정치개혁의 최우선 과제로 선거제도 개혁’을 내세운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 여의도연구소는 2016년 12월15일 발간한 ‘이슈브리프’에서 ‘현재의 소선거구제를 중·대선거구제로 바꿀 필요가 있으며 이 담론을 대선 정국에서 부각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사실 중·대선거구제는 그동안 제1당이었던 새누리당이 아닌 정의당을 비롯한 소수 정당이 주장해 왔다. 소선거구제라는 승자독식체제에서는 아무래도 지역을 기반으로 한 거대 정당보다는 이념 위주의 군소 정당이 불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최순실 사태를 계기로 친박계가 소수로 전락할 위기에 몰린 시점에서 중·대선거구제를 대선 이슈의 하나로 들고나온 것이다. 이에 대해 한 정치 평론가는 “중·대선거구제가 되면 새누리당은 보수층 유권자 30% 정도의 지지를 받아 현재의 의석비율을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며 “그동안 소선거구제나 권역별 비례대표를 주장했던 새누리당이 갑자기 이런 주장을 들고나온 저의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2016년 12월1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친박계 의원들의 모임 ‘혁신과 통합 보수 연합’ 창립총회에 서청원 새누리당 의원이 입장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진박 “인적 청산 당하면 정치생명 끝난다”

 

두 그룹이 각각 그리는 청사진이 다르기 때문에 싸움은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승자는 현 시점에서 알 수 없다. 진박이 우세하다고 예측하는 사람들은 “새누리당은 서청원 의원과 최경환 의원 등이 가장 큰 지분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움직이지 않으면 다른 의원들도 움직일 수 없다”고 말한다. 결국 인명진 목사를 내세운 범박이 이길 수 없다는 것이다.

 

범박이 이길 것이라고 보는 사람들은 “친박당 이미지를 벗지 못할 경우 공멸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결국은 초·재선 의원들이 진박에 등을 질 것”이라고 말한다. 친박 핵심이었던 정갑윤 의원이 1월4일 탈당한 것을 진박 분열의 신호탄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한 새누리당 당직자는 “정갑윤 의원 탈당 이후로 몇몇 친박계 핵심 의원 역시 인 위원장에게 탈당 의사를 표명하며 거취를 위임할 계획인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인 위원장을 필두로 당 지도부가 지원하고, 진박에서도 일부 이탈자가 나오면서 결국 범박이 이길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실제로 서청원 의원을 지지하는 일부 의원들이 인 위원장의 행태를 고발하기 위한 의원총회 소집을 요구했으나, 정 원내대표는 이에 즉각 응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2선 후퇴’를 선언한 최경환 의원 역시 인 위원장의 탈당 압박에 개의치 않고 대구·경북 지역 신년 행사에 참석하며 당원들이 동요하지 않도록 당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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