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동자 구속에도 '다이빙벨' 후폭풍은 현재진행형
  • 구민주 기자 (mjooo@sisapress.com)
  • 승인 2017.01.25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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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빙벨' 상영 강행하자,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6억6000만원 BIFF 예산 삭감 지시

현 정권 핵심실세로 꼽혔던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을 주도한 혐의로 1월21일 구속됐다. 특검은 두 사람의 혐의에 대해 ‘자유민주주의의 이념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중대 범죄’로 규정했다. 23일 문체부는 “문화예술 지원의 공정성 문제를 야기한 데 대해 참담하고 부끄럽다”며 대국민 사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두 사람은 블랙리스트 작성 뿐만 아니라 문화계 각종 현안들을 정권의 입맛에 맞게 좌지우지했다. 대표적인 것이 2014년 10월 부산국제영화제(BIFF)에서 <다이빙벨> 상영을 강행한 것과 관련해 이어진 보복성 예산 삭감이다. 특검은 블랙리스트 수사 과정에서 ‘김 전 비서실장이 BIFF 예산을 삭감하라고 지시했었다’는 문체부 관계자의 진술을 확보했다. 김 전 실장의 이같은 지시는 2014년 10월 BIFF가 세월호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다이빙벨’ 상영을 강행한 데 대한 보복이었다. 실제 다음해인 2015년 BIFF의 예산은 14억6000만원에서 8억원으로 줄었다. 이용관 당시 집행위원장은 부산시의 압박에 못 이겨 사퇴했다. 

 

김 전 실장이 구속된 날인 1월21일, 부산 서면 촛불집회 현장에 나온 한 부산 시민은 “그간 의혹만 무성했던 현 정부의 BIFF 탄압이 드디어 실체를 드러냈다”면서 “부산의 최대 상징을 건드린 벌을 제대로 받길 바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2016년 10월15일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 전당에서 2016 부산국제영화제(BIFF) 폐막식이 열렸다. © 연합뉴스

“부산시 압박 상상이상…보복 예상해” 

 

1월5일 BIFF 측은 2014년 <다이빙벨> 사태와 관련해 갖고 있던 자료를 모두 특검에 제출했다. 여기엔 당시 한선교·하태경 새누리당 의원의 요청으로 BIFF가 만들었던 <다이빙벨> 선정 방식에 관한 보고서와, 영화제 예산 선정을 둘러싼 영화진흥위원회 비공개 회의록 등이 포함됐다. 이 비공개 회의록에는 BIFF 예산 삭감 과정이 고스란히 담겼다. 1월22일 부산 해운대 영화의 전당에서 기자와 만난 김지석 BIFF 부집행위원장은 “회의록을 보면 전년도 예산·영화제에 대한 평가 등 기존의 예산 배정 기준을 모두 무시한 채 얼마나 황당한 논의를 거쳐 BIFF 예산을 삭감했는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이 밝힌 회의록 내용엔 당초 BIFF에 대한 예산 전액 삭감을 논의하다가 여론을 의식해 6억6000만원만 삭감하기로 최종결정하는 과정도 담겨 있다. 

 

 김 위원장은 <다이빙벨> 상영을 결정한 직후 문체부로부터 상영 취소를 압박하는 전화가 왔을 뿐 아니라, 부산시 관계자들의 방문도 수시로 있었다고 밝혔다. 하도 압박이 심하다보니 ‘영화 상영 당일 무슨 불상사가 생길 수 있겠다’ 싶어, 하루 종일 상영관 앞을 지키기도 했다고 한다. 그는 “상영을 강행하면서 이후 어떤 형태로든 보복이 올 것이라고 모두 짐작하고 있었다”면서 “그럼에도 BIFF 내 그 누구도 ‘상영을 취소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하는 이가 없었다”고 덧붙였다.

 

사태를 겪은 후 상처 입은 BIFF를 수습하는 과정은 더욱 혹독했다. BIFF는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 사퇴 후 새로 선출된 김동호 조직위원장을 중심으로 조속한 정관 개정에 나섰다. 골자는 영화제를 시의 영향력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하자는 것이었다. 그에 따라 그동안 부산시장이 차지했던 BIFF 당연직 조직위원장 자리를 없애고, ‘상영작 선정 권한은 온전히 선정위원회에 있으며 누구도 간섭할 수 없다’는 조항을 명시했다. 시의 영향권에 있는 지역 언론사들도 조직위원에서 제외하고 그 대신 영화인으로 자리를 채웠다. 곧장 강력한 반발이 따라왔다. 정관 개정 실무 책임자였던 김 위원장은 “살면서 그렇게 힘든 적이 없었다”면서 “당시 반대 측으로부터 온갖 수모란 수모는 다 겪었다”고 기억했다.

 

BIFF 정상화 두고 영화계 여전히 내홍

 

숱한 갈등과 반발이 있었음에도 김 위원장은 개정된 정관에 대해 “사태의 발단이 된 영화제의 독립성·자율성 침해를 막을 최선의 형태”라고 확신했다. 또한 영화제의 조속한 정상화를 위해 2016년 10월6일, 다수 영화인들의 보이콧에도 불구하고 계획대로 21번째 영화제를 개막했다.

 

이에 대한 영화계 내부 반발은 지금까지도 거세다. 부산민예총·영화인협동조합 등이 결성한 ‘BIFF를 지키는 시민문화연대’측은 정관 개정의 주체와 시기가 부적절하다고 지적한 동시에 영화제를 강행한 것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황의완 영화인협동조합 이사장은 “서병수 부산시장의 분명한 사과와 이용관 전 위원장의 명예회복이 선행되지 않은 상황에서 영화제를 연 것은 결코 옳은 결정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피해당사자인 BIFF가 왜 이리 대응에 소극적인지 모르겠다”며 “BIFF를 지키기 위해 모인 연대가 되레 BIFF와 각을 세워 싸워야 하는 상황이 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김지석 BIFF 부집행위원장은 “현재로선 서 시장에게 책임을 물을 구체적 물증이 부족할 뿐 아니라, 시와 척을 지는 것이 장기적으로 영화제에 해가 될 수도 있어 신중하게 고민 중이다”라고 밝혔다. 우선 특검에 관련 자료를 제출한 만큼 그 결과를 기다리겠다는 것이다.

 

BIFF 정상화를 둘러싼 영화계 내홍은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의 2심 결과에 따라 새 국면을 맞을 것으로 전망된다. 1심을 뒤집고 무죄 판결이 나면 지금의 갈등이 어느 정도 소강상태로 들어갈 가능성이 크지만, 그 반대의 경우 내홍이 장기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가운데 1월21일 BIFF측은 올해 열릴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 날짜를 10월12일로 확정 발표했다. 그러나 벌써부터 영화제가 정상적으로 치러질 수 있을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BIFF 안팎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이청산 부산민예총 이사장은 “내상 입은 BIFF, 일 년 내내 영화제를 준비하는 영화인들, 그리고 축제를 즐겨야 하는 시민 모두 피해자”라면서 “블랙리스트 명단에 오른 1만여 명만이 피해자의 전부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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