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켓몬고에 빠진 사람들, 기자도 잡아봤다!
  • 김은샘 인턴기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7.02.02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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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켓몬 성지 광화문 점심 때마다 ‘인산인해’…휴대폰 GPS 조작해 희귀 포켓몬 사냥하기도

‘포켓몬’이 한국에 떴다. 지난해 7월 전 세계적 열풍을 일으킨 모바일게임 ‘포켓몬고(Pokémon GO)’가 1월24일 한국에도 정식으로 출시되면서 때 아닌 ‘포켓몬 잡기’ 열풍이 벌어지고 있다. 주변을 둘러보면 ‘포켓몬고’를 하고 있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그래서 기자도 나섰다. 조금 늦었지만 ‘포켓몬 헌팅’ 대열에 합류하기 위해 휴대폰에 포켓몬고를 다운받아 포켓몬 성지라는 서울 종로-광화문 일대를 둘러봤다. 

 

© 시사저널 박정훈

2월1일 광화문으로 향하는 길에 평소 포켓몬 ‘덕후(일본어 ‘오타쿠’를 한국식 단어인 ‘오덕후’의 줄임말)’인 지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은 지인은 대뜸 “나 호주야”라고 말했다. 순간 기자의 귀를 의심했다. 광주광역시에 거주하는 그는 오직 포켓몬을 잡기 위해 호주로 갔다는 것이다. 알고 보니 그는 정말로 호주로 간 것이 아니라 휴대폰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을 조작한 것이었다. 

 

“나 지금 바빠. 희귀 포켓몬인 ‘갸라도스’로 진화시키기 위해 상대적으로 잡기 쉬운 포켓몬 ‘잉어킹’을 101마리 잡아야 하거든. 내일은 유럽에만 있는 한정 포켓몬 잡으러 갈거야.” 그의 말에 따르면 이렇게 GPS를 조작해 위치를 바꿔가며 포켓몬고를 하는 사람이 상당히 많다고 한다. 기자는 그가 훌륭한 포켓몬 마스터가 되기를 빌며 그를 보내주었다. 

 

 

기자의 지인이 GPS를 조작해 얻은 호주한정 포켓몬 ⓒ 김은샘 제공


한발 늦은 출시, 여전한 반응

 

모바일 위치기반 증강현실(AR) 게임 포켓몬고는 미국 게임사 나이언틱 랩스(이하 나이언틱)의 야심작이다. 사실 포켓몬고는 이미 한 번 한국을 쓸고간 바 있다. 지난해 7월 처음 전 세계에 출시됐을 당시 이른바 ‘속초 붐’이 일며 화제가 된 바 있다. 한국엔 정식으로 출시되지 않았던 포켓몬고가 강원 속초에서는 제한적으로 가능하다는 소문에 전국의 게임 유저들이 속초로 몰린 것이다. 

 

인기는 ‘반짝’이었다. 정식 발매가 아니었기에 게임 상 제약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이미 반짝 인기를 얻었었기에, 한발 늦은 한국 정식 출시는 부정적인 평가가 많았다. ‘한물갔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이런 예상을 뒤엎고 1월24일 국내 출시된 포켓몬고는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다. 어플리케이션 분석업체 와이즈앱에 따르면, 국내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사용자 중 약 700만 명이 포켓몬고를 이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이폰 사용자의 수를 감안하면 국내 포켓몬고 이용자 수는 900만 명에 육박할 것이란 게 업계 분석이다. 

 

포켓몬고 사용자층은 1020 세대가 주를 이뤘지만, 3040세대 역시 즐기는 것으로 보인다. 와이즈앱에 따르면 포켓몬고를 이용하는 700만 명 중 10대와 20대가 전체 사용자의 66%를 차지했다. 또 30대와 40대가 30%, 50대 이상도 4% 가량 이 게임을 즐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광화문 일대가 대표적인 포켓몬 성지 중 하나다. 이곳에 가면 포켓몬고에 몰두하고 있는 외국인 관광객들도 쉽게 볼 수 있다. 포켓몬고에 빠져 앞도 보지 않고 걷는 사람들도 부지기수였다. 성지라는 이름에 걸맞게 포켓스톱(포켓몬을 잡을 때 필요한 ‘몬스터볼’ 등의 도구를 얻을 수 있는 일종의 보급소) 역시 풍년이었다. 

 

경복궁 내에서 기자가 직접 포켓몬고를 체험하는 모습. © 시사저널 박정훈

정부서울청사 근처의 비석이 포켓스톱 중 하나였는데, 그 주위에 가니 포켓볼을 얻으러 온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광화문 근처의 회사에 다니는 엄광록씨(44)는 “점심시간이라 직장 동료와 함께 포켓몬을 잡으러 나왔다”고 말했다. 포켓몬고를 좋아하지만 ‘덕밍아웃(자신이 덕후라는 것을 드러내는 행위)’하고 싶지 않다는 김아무개씨(44)는 “일단 나를 움직이게 만드는 게 좋다”며 “날씨도 좋아 산책하는 겸 나왔다”고 말했다. 포켓몬 헌터들은 새로운 포켓몬을 잡기 위해 바쁘게 걸음을 옮겼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빠지게 한 포켓몬고의 매력은 무엇일까. 출시되기 이전 속초에서도 게임을 즐겼다는 오정민씨(27)는 “증강현실 기술이 흥미롭다”며 “포켓몬이 내 주변에 진짜 있다는 게 신기해 자꾸 하게 된다”고 말했다. 평소 이런 저런 특별한 것들을 수집하길 좋아한다는 김가원씨(22)는 “새로운 포켓몬을 한 마리씩 모으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말했다. 포켓스톱 중 하나인 보신각 근처에서 만난 윤지희씨(22)는 “회사가 종로라 점심시간마다 포켓몬을 잡는 재미가 좋다”며 “동네에 포켓스톱이 하나뿐이라, 가족이 전부 차를 타고 포켓스톱을 찾아다녔다”고 말했다. 이어 윤씨는 “부모님께서 재밌어 하시고 함께할 수 있다는 게 좋다”고 덧붙였다. 

 

포켓몬고를 즐기는 사람끼리 ‘뜻밖의’ 교류를 하기도 한다. 포켓몬고 때문에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말도 걸게 됐다는 진서현씨(27)는 “길거리에서 서로 정보 공유도 한다”고 말했다. 김가원씨는 “날이 추워 7024번 버스를 타고 신촌 세브란스 병원을 순회하면 포켓몬 ‘파티’에 참여할 수 있다”고 팁을 전했다. 

 

게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게임의 특성상 게임 사용자는 휴대폰 화면 속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이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기자가 광화문 일대를 취재하는 중에도 횡단보도 등에서 스마트폰만 보고 있는 사람이 많았다. 무엇보다 안전에 유의해야 한다는 지적들이 나오는 이유다. 최아무개씨(74)는 “게임이 뭐라고 앞도 안보고 걷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포켓몬 성지로 알려진 광화문 일대에서 포켓몬고에 열중한 사람들의 모습. ⓒ 시사저널 김은샘

증강현실 게임, 인기가 지속되기 위한 동력 필요

 

 포켓몬고의 흥행을 계기로 국내 게임업계에서는 증강현실에 대한 관심이 다시 뜨거워지고 있다. 포켓몬고의 한국 출시를 앞두고 바깥 활동량이 줄어드는 겨울에 얼마나 많은 인파가 동참할지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지금까지의 반응을 봐선 기우인 듯하다. 하지만 여전히 ‘반짝 인기’일 가능성은 남아 있다. 게임 개발사 나이언틱의 포켓몬고 업데이트에 관심이 몰리는 이유다. 포켓몬고 사용자들 사이에서는 3월 대규모 업데이트가 이뤄진다는 소문이 퍼졌지만 아직까지 공식적으로 확인된 것은 없다. 

 

포켓몬고가 반짝 인기에 그치지 않고 게임 유저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스스로 ‘포켓몬고 중독자’라는 국내 한 게임업체 종사자 최아무개씨(30)는 “기본적으로 캐릭터로 승부하는 게임”이라며 “스토리라인이 풍부해진다면 더 재밌을 것 같다”고 말했다. 자칭 ‘포켓몬 덕후’ 이송씨(22)는 “유저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면 캐릭터의 시각적 측면을 부각시켜야 한다”며 애정어린 조언을 했다. 애니메이션처럼 캐릭터의 특성과 귀여움을 살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씨는 “애니메이션이나 게임 내러티브에 나타나는 캐릭터들을 NPC(게임 안에서 플레이어에게 퀘스트 등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하는 도우미 캐릭터)로 추가해서 서사적 측면을 강화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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