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교과서에서 삭제된 5·18 사격 헬기 실체
  • 조유빈 기자 (you@sisapress.com)
  • 승인 2017.02.03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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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당시 헬기 사격 증거 37년 만에 확인 불구 교과서 삭제 논란

5·18 민주화운동 당시 구 전남도청 앞을 비행하던 헬기 사진이 국정교과서 최종본에서 삭제돼 정치권 및 광주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 5·18 역사왜곡대책위원회는 2월2일 성명서를 내고 “현장검토본 공개 당시 고등학교 한국사 국정교과서에 실렸던 헬기사진을 최종본에서 삭제하는 등 5·18 민주화운동의 역사를 왜곡한 국정 역사교과서를 즉각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광주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이 반발하는 헬기 사진에는 광주 금남로 상공을 비행하는 군 헬기와 시민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교육부가 지난해 11월28일 공개한 검토본에는 ‘5·18 민주화운동’과 ‘전두환 정부의 출범’을 설명하는 부분에 이 헬기 사진이 들어있었지만 최종본에서 삭제됐다. 대신 시민들이 구 전남도청 앞 분수대에서 궐기대회를 하고 있는 사진이 실렸다.

 

국정교과서 현장검토본에 실려있던 5·18 ‘헬기사진’이 최종본에서 빠졌다. 5.18역사왜곡대책위원회는

야권 및 시민단체 헬기 사진 삭제에 강하게 반발

 

헬기 사진 삭제가 반발을 사는 이유는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이 헬기에서 시민들을 향해 무차별적인 사격을 했다”는 증언이 사실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그동안 헬기 사격이 있었다는 증언과 목격자는 많았으나 증거가 없어 정부와 군 당국에서는 헬기 집단 발포 사실을 일절 부인해왔다. 특히 군 당국은 헬기 사격은 물론이고, 헬기를 출동시킨 사실을 확인할 기록조차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37년 만에 ‘헬기 무차별 사격’은 진실로 밝혀졌다. 광주시가 노후한 전일빌딩(1980년 당시 구 전남일보 소유 건물) 리모델링 사업을 추진하면서 전일빌딩 외곽 흔적에 대해 정밀 조사를 의뢰했고, 빌딩에서 총탄 흔적이 무더기로 발견됐기 때문이다. 전일빌딩은 5·18 최후 항쟁지인 옛 전남도청과 함께 시민들이 계엄군의 무력진압에 대항하며 지킨 장소다. 이 빌딩의 외벽에서 탄흔 3개, 10층 기둥과 바닥 등에서 최소 150개의 탄흔이 확인됐다. 

 

지난 1월12일 국과수는 광주시에 전달한 ‘전일빌딩 법의학 감정서’를 통해 “발사 위치는 호버링(일정한 고도를 유지한 채 움직이지 않는 상태) 헬기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광주시는 “5·18 당시 헬기에서 총을 쐈다”는 증언 등을 고려해 이 흔적들을 5·18 헬기 사격 총탄 흔적으로 결론을 내렸다. 5·18 이후 수많은 목격자들이 외쳐 온 ‘무차별 헬기 사격’이 있었다는 사실이 국가기관에 의해 공식적으로 인정된 것은 37년 만에 처음이다. 

 

5·18 역사왜곡대책위원회는 “헬기 사격이 밝혀진 상황에서 헬기사진을 삭제한 것은 민간인에 대한 무차별 사격과 살상을 부정하려 한 것이라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진을 삭제한 것은 전일빌딩 10층에 남은 180개의 탄흔이 5·18 때 헬기 사격에 의해 생긴 것이 유력하다는 국립과학수사원의 분석 결과까지 부정하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특히 조기 대선 정국에서 유력 대권 주자들이 5·18 진상규명을 정부 과제로 규정하고 사건의 진상 규명에 적극 행보를 보이고 있다. 광주시가 관련 지원 조직 출범까지 앞둔 상황이라 논란은 더욱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는 지난 23일 광주ㆍ전남언론포럼 초청 토론회에서 “차기에 들어설 민주정부는 광주의 진실을 제대로 밝히고 책임을 묻고 보상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며 “책임 있는 사람들이 사실을 은폐하고 있다”고 말했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광주 금남로 상공에 헬기가 떠 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하 국과수)은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군의 헬기 사격에 대해 “가능성이 매우 크고 헬기 사격상황이 유력하게 추정된다.

“헬기 사진 삭제, 무차별 살상 부정하려 한 것”

 

국민의당 안철수 전 상임공동대표도 같은 날 5ㆍ18발포명령자 규명을 다음 정부가 해야할 일이라고 지목한 바 있다. 국민의당은 2월3일 국회 정론관에서 열린 현안 브리핑을 통해 “군 헬기 사진이 교체된 시기와 전일빌딩의 탄흔이 5·18 당시 헬기 사격에 의해 생긴 것이 유력하다는 국과수의 분석결과가 나온 시기와 일치한다. 수많은 시민들이 군에게 학살당한 역사마저 은폐하려고 하는 박근혜 정부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헬기 사격 진실이 37년 만에 확인됨에 따라 광주시는 전일빌딩 리모델링 계획을 접고 5·18 유적으로 보존하기로 했다. 윤장현 광주시장은 “전일빌딩의 역사와 상징성이 검증된 만큼 철거 및 대규모 리모델링 계획을 접고 원형을 복원하고 추념공간을 만들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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