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컨의 노예 해방도 대통령 행정명령이었다
  • 김회권 기자 (khg@sisapress.com)
  • 승인 2017.02.03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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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혼돈에 빠뜨린 ‘행정명령’에 관한 모든 것

이민자들의 입국을 금지하고 멕시코와 맞닿은 국경에 벽을 건설하는 트럼프의 마이웨이에서 자주 등장하는 단어가 ‘대통령 행정명령’이다. 마치 모든 걸 뚝딱 해결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미국 대통령의 행정명령은 무엇을 근거로 하며 어느 정도의 효력을 발휘할까. 그리고 해제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 이후 행보는 전 세계에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그의 서명이 창조한 강렬함은 전 세계를 엄청난 혼돈 속으로 몰아넣었다. 1월27일 서명한 반(反)이민 행정명령으로 이슬람권 7개국 국민들에 대한 입국제한 조치가 취해졌다. 이란과 이라크, 리비아, 소말리아, 수단, 시리아, 예멘 등 중동·아프리카 7개국 국민들의 입국이 금지되면서 공항에 억류된 사람이 속출했다. 가족과의 갑작스런 생이별에 울음을 터트리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각지에서 반대 시위가 일어나고 있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무슬림 7개국 국민의 입국을 제한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행정명령에 반대하는 시위가 1월28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LA) 국제 공항에서 벌어지고 있다. © AP연합

헌법 근거한 명령이지만 범위 애매

 

미국 대통령의 행정명령은 어떻게 이런 중요한 일을 좌지우지할 수 있을까. 미 대통령은 행정부의 수장이자 동시에 연방정부기관에 명령을 내릴 수 있다. 미 정부 정치자료를 제공하는 ‘ThisNation.com’에 따르면 행정명령의 근거는 헌법 제2장 1조의 ‘집행권’에 있다. 반면 제2장 3조에는 대통령이 법률을 충실하게 집행해야 한다는 점을 명시하고 있어서 애매한 부분이 있다. 뉴스위크는 “(대통령 행정명령) 권한의 범위가 헌법에서 명확하게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고 서술하고 있다. 

 

 

의회를 피할 수 있는 대통령의 강력한 무기

 

대통령의 입장에서 볼 때 행정명령이 갖는 장점은 의회의 승인이 필요 없지만 의회가 통과시키는 법률과 거의 동등한 효력을 갖고 있다는 데 있다. 입법처럼 시간이 걸리지 않기에 대통령이 정책을 바로 실행할 수 있다는 점에서 편리한 수단이다. 특히 야당이 다수당일 때 의회를 우회하는 방법으로 사용됐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임기 초반보다 후반에 행정명령에 적극적이었다. 여소야대 정국이 조성되면서 공화당의 반대로 국정 어젠다를 뒷받침할 입법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미 대통령이 의회를 견제하기 위해 갖고 있는 강력한 무기는 두 가지다. 하나가 의회의 법률을 거부할 수 있는 ‘거부권’이고 다른 하나가 행정명령인 셈이다. 다만 지금은 트럼프를 배출한 여당 공화당이 상하원 모두 다수당이다. 

 

반면 연방제인 미국의 특징에 따라 대통령의 행정명령은 헌법의 근거에 따라 ‘연방정부기관’에 대한 것으로 한정된다. 트럼프의 입국제한조치를 두고 뉴욕과 보스턴에서 반대의 판결을 내놓는 건 그래서다. 입국 금지의 경우는 돈이 들지 않는 행정조치기 때문에 바로 취할 수 있지만 예산이 필요한 행정명령이라면 달라진다. 예를 들어 멕시코와의 국경 장벽을 두고 트럼프는 “멕시코가 비용을 대라”고 말했지만 멕시코가 거부할 경우 결국 미국의 부담이 추가된다. 이럴 경우 정부의 예산안을 의회가 승인하지 않는다면 행정명령의 실현은 요원해진다. 

 

 

대통령 행정명령, 약 1만3000회에 달해 

 

역대 대통령들도 행정명령을 사용했다. 미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 이래 모든 대통령은 행정명령을 활용했고 현재까지 약 1만3000회가 넘게 발동됐다. 역사적인 행정명령도 볼 수 있다. 1862년 링컨의 ‘노예해방선언’도 행정명령이었고 루스벨트가 2차 세계대전 중 일본계 이민자를 강제 수용했던 것도 행정명령으로 가능했다. 흑인들의 민권운동이 활발했던 시절 아이젠하워는 인종 차별을 금지하는 행정명령을 발표하기도 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2014년 연두교서에서 공화당이 하원에서 다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정책 추진을 위해 행정명령을 활용하겠다고 적극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트럼프와 반대로 오바마는 2014년 최대 500만명에 이르는 불법 체류자들을 구제하는 내용의 이민개혁 행정명령을 발동했다.

 

 

사법부, 의회, 대통령만이 무효화 가능

 

행정명령을 무효화시키는 방법은 없을까. 일단 사법부에 호소할 수 있다. 7개국 국적자에 대한 입국을 금지시킨 행정명령에 대해서는 이미 워싱턴과 뉴욕, 매사추세츠 등 3개 주에서는 헌법 위반을 이유로 행정명령 무효 소송이 제기된 상태다. 샌프란시스코는 불법이민자에 관대한 도시에 대해 연방보조금을 삭감하는 다른 행정명령에 대해 1월31일 소송을 제기했다. 샌프란시스코는 상대적으로 불법이민자에게 너그러운 곳으로 통한다. 

 

미국 경제전문 온라인매체인 ‘쿼츠’에 따르면 행정명령을 무효화할 수 있는 방법은 3가지가 있다. 하나는 법원이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면 된다. 또 다른 하나는 의회가 나서서 행정명령을 해제하거나 수정하는 법률을 통과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은 거부권을 가지고 있다. 만약 의회가 통과시킨 행정명령 무효화 법안에 대해 트럼프가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의회는 재적인원 3분의2 이상의 찬성으로 가결시켜야 한다.

 

세 번째는 대통령 스스로가 행정명령을 수정하거나 거두는 방법이다. 다만 두 번째의 경우는 공화당이 다수인 의회 상황 때문에, 세 번째는 트럼프의 독불장군식 의사결정 스타일을 볼 때 좀처럼 일어나지 않을 방법이다. 그래서 첫 번째 방법인 사법부에 호소하는 반란이 지금 미국 전역에서 일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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