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훈 “남루한 사람들의 고통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 조철 문화 칼럼니스트 (sisa@sisapress.com)
  • 승인 2017.02.10 17:56
  • 호수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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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만에 장편소설 《공터에서》 낸 소설가 김훈 격변의 시대 살다간 아버지 모티프로 해

김훈 작가가 《흑산》을 펴낸 지 6년 만에 새 장편소설을 내놓았다. 출판계의 상황을 반영하는지 새 소설 《공터에서》는 비닐 포장으로 그 내용을 꼭꼭 숨긴 채 각 서점에 뿌려졌다. 출간 전 인터넷 연재를 하기도 했지만, 신작을 낼 때마다 소재와 주제 등 모든 면에서 화제를 뿌렸던 과거와 사뭇 달라 씁쓸하기까지 하다. 한 독자는 김 작가의 새 소설을 읽기도 전에 비판적인 댓글을 인터넷 서점의 독자 서평란에 올리기도 했다.

 

“김훈의 소설에서 뭘 더 기대할 수 있을지 심히 의심스럽다. 출판사의 광고를 보자면 자전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것 같은데, 거의 지난 소설의 스테레오 타입이 아닐까 의심스럽다. 소설이 속된 말로 ‘자기만족’도 아니고, 시대에 대한, 역사에 대한, 삶에 대한 물음표를 던지는 것이다. 스스로 표피 외적인 것에 대해 무감각을 자랑하는, 그리하여 문학의 존재 의미를 자기 넋두리로 돌려버리는 오만은 크게 위선적이다. 지금까지 나온 그의 모든 소설을 두 번씩이나 읽었는데, 깊은 자기 성찰 없이 뇌까리는 얘기들은 공허하다.”

이도 저도 아닌 이야기를 할 것이 아니라 제 목소리가 있어야 한다고 본다는 것이다. 그의 소설에 허무주의가 짙게 깔려 있다는 비평가들의 지적이 있었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그의 신작을 기다려온 많은 독자들은 수집가처럼 신작 한 권을 책장에 더하는 것을 기쁘게 맞았다.

 

‘마동수(馬東守)는 1979년 12월20일 서울 서대문구 산외동 산18번지에서 죽었다. 마동수는 1910년 경술생(庚戌生) 개띠로, 서울에서 태어나 소년기를 보내고, 만주의 지린(吉林)·창춘(長春)·상하이(上海)를 떠돌았고, 해방 후에 서울로 돌아와서 6·25전쟁과 이승만·박정희 대통령의 시대를 살고, 69세로 죽었다. 마동수가 죽던 해에, 중앙정보부장 김재규가 대통령 박정희를 권총으로 쏘아 죽였다. 박정희는 5·6·7·8·9대 대통령을 지냈다. 박정희는 심장에 총알을 맞고 쓰러져서 “괜찮다. 나는 괜찮아……”라고 중얼거렸다. 마동수의 죽음과 박정희의 죽음은 ‘죽었다’는 사실 이외에 아무 관련이 없다. 마동수의 생애에 특기할 만한 것은 없다.’

 

《공터에서》 낸 소설가 김훈 © 시사저널 박은숙


20세기 한국 현대사를 온몸으로 겪어낸 이들의 삶

 

소설은 소제목 ‘아버지’로 시작한다. 한 언론사는 《공터에서》를 두고 ‘격변의 시대를 살다간 아버지를 향한 오마주’라는 평을 내놓았다. 출판사 또한 ‘자전적 경험을 실마리로 집필한 작품’이라고 설명한다. 소설 속 마동수는 실제 김훈 작가의 부친 김광주씨(1910〜1973)를 모티프로 한 것으로 보인다. 경향신문 문화부장과 편집부국장을 지냈고, 국내 최초의 무협지 《정협지(情俠誌》를 편역(編譯)한 김씨는 일제강점기 김구와 함께 항일운동을 했고 중국 상하이에서 의과대를 다녔다.

 

《공터에서》는 일제시대, 삶의 터전을 떠나 만주 일대를 떠돌 수밖에 없었던 아버지가 겪어낸 파란의 세월, 해방 이후 혼란스러운 시간과 연이어 겪게 되는 한국전쟁, 전후의 피폐한 상황 속에서 맺어진 남녀의 애증과 갈등, 군부독재 시절의 폭압적인 분위기, 베트남전쟁에 파병된 한국인들의 비극적인 운명, 대통령의 급작스러운 죽음과 군사반란, 세상을 떠도는 어지러운 말들을 막겠다는 언론통폐합, 이후 급속한 근대화와 함께 찾아온 자본의 물결까지 시대를 아우르는 사건들이 전쟁으로 폐허가 된 서울에 정착해 삶의 기틀을 마련하려는 마씨 집안의 가족사에 담겨 있다.

 

앞서의 독자 기대와는 달리 김 작가가 언어로 붙잡고자 하는 세상과 삶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김 작가는 소설을 통해 ‘개’가 되기도 하고 ‘이순신’이 되기도 했다. 에세이집까지 다양하게 내놓으면서 선상에서 밧줄을 잡아당기는 선원들이기도 했고, 자전거의 페달을 밟고 있는 자기 자신이기도 했고, 심지어는 민망하게도 혹은 선정주의의 혐의를 지울 수 없게도 미인의 기준이기도 했다. 그는 현미경처럼 자신과 바깥 사물들을 관찰하고 이를 언어로 어떻게든 풀어내려고 하며, 무엇보다도 어떤 행위를 하고 그 행위를 하면서 변화하는 자신의 몸과 느낌을 메타적으로 보고 언어로 표현해 낸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훈 지음 해냄 펴냄 360쪽 1만4000원


“내 마음의 기억과 인상의 파편들을 엮은 글”

 

‘난 아버지를 묻을 때 슬펐지만 좋았어. 한 세상이 참 힘들게 갔구나 싶었지. 이런 인생이 다시는 태어나지 않기를 빌면서 흙을 쾅쾅 밟았어. 형은 그 힘들게 지나간 자취가 너무 힘들어서 견딜 수 없는 거지. 형은 아버지를 피해 다니려다가 또 다른 수렁에 빠져가고 있는 게 아닐까? 난 여기서 살 거야. 나도 결혼했으니까 아버지가 되겠지.’ 

《공터에서》 속, 작가의 분신으로 보이는 마차세가 아내에게 한 말이다. 작가는 마차세의 말처럼 살아온 듯싶다. 그는 광야를 달려야 할 말이 고삐에 걸려 있던 자리로 되돌아와야 하는 것처럼, 벗어나려 해도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의 고삐에 삶이 얽매여 있는 이들의 비참하고 비애로운 이야기들을 통해 이다지도 막막한 세상에서 몸 비빌 수 있는 작은 거점이 존재하는가를 처절하게 되묻는다. 《공터에서》는 두렵고 무섭지만 달아나려 해도 달아날 수 없는 현실에서 우리 자신이 어떤 삶을 꾸려 나갈 수 있을까를, 우리의 영혼을 쉬게 할 작은 거점이 어디인가를 돌아보게 만드는 작품이다.

 

총 33장, 원고지 869매로 집필한 소설에는 192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우리 현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굵직한 사건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는데, 이러한 사건들은 마씨(馬氏) 집안의 가장인 아버지 마동수와 그의 삶을 바라보며 성장한 아들들의 삶을 통해 드러난다. 김 작가는 만주와 지린, 상하이와 서울, 흥남과 부산, 그리고 베트남과 미크로네시아 등에서 겪어낸 등장인물들의 파편화된 일생을 고스란히 보여주며, 그 신산스러운 삶을 바라보는 서늘한 시선을 드러낸다. 

 

“이 작은 소설은 내 마음의 깊은 바닥에 들러붙어 있는 기억과 인상의 파편들을 엮은 글이다. 나의 등장인물들은 늘 영웅적이지 못하다. 그들은 머뭇거리고, 두리번거리고, 죄 없이 쫓겨 다닌다. 나는 이 남루한 사람들의 슬픔과 고통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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