찢기고 밟히고, 폭행도구로 까지…태극기의 수난시대
  • 조유빈 기자 (you@sisapress.com)
  • 승인 2017.02.21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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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반대’ 집회서 태극기 이용한 폭행 사건도…“보수단체 전유물 돼 버린 태극기 되찾아오자” 촛불 집회서도 태극기 등장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성을 나타내는 국기인 태극기가 수난을 겪고 있다. 과거 민주화 투쟁 과정에서 등장했던 태극기는 어느 순간부터 보수단체의 상징이 됐다. 최근 탄핵반대 집회참가자들은 태극기를 더욱 적극적으로 앞세우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반대하는 이들이 ‘촛불’에 대항할 상징으로 ‘태극기’를 선택한 것이다. 

 

탄핵을 반대하는 보수단체들이 자신들의 집회를 ‘태극기 집회’라 스스로 이름붙이면서, ‘태극기’는 ‘촛불’과 상반된 민심을 뜻하는 개념이 됐다. 태극기 집회에는 태극기보다 더 큰 대형 성조기도 함께 등장해 ‘성조기 집회’라고 불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변희재 전 미디어워치 대표는 집회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태극기와 성조기를 함께 들고 나오는 것에 대해 “거짓 촛불패들이 사드 반대, 한미동맹 파괴를 선동하는 상황에서 애국심 하나만으로 성조기를 들고 나올 이유가 충분하다”며 두둔했다. 

 

ⓒ 시사저널 박은숙

최근 태극기 집회에서 태극기 훼손은 물론, 태극기봉을 이용한 폭행까지 일어나면서 태극기가 특정 집단의 전유물로 부각·악용되고 있다는 비판 여론도 확산되고 있다. 2월11일에는 태극기 집회를 취재하던 한 언론사 기자가 집회 참가자 수십명에게 폭행을 당하는 일이 발생했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피해를 입은 기자는 “집회 참가자들이 행진하는 모습을 휴대폰으로 촬영하고 있었는데, 한 분이 다가와 ‘초상권을 침해했다’며 욕설을 내뱉었다. 곧 수십 명이 달려들어 주먹이나 태극기봉으로 온몸을 마구 때렸다”고 전했다. 이런 사건들이 반복되자 한국기자협회·한국방송카메라기자협회·전국언론노동조합이 잇따라 항의 성명까지 발표했다. 

 

교통경찰관을 태극기봉으로 폭행하는 일도 일어났다. 2월18일 서울 대한문 앞에서 열린 ‘제13차 탄핵기각 총궐기 국민대회’에 참여한 한 50대 남성이 무단횡단을 하던 중 이를 제지하는 교통경찰관을 태극기봉으로 때린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다. 네티즌들도 인터넷 커뮤니티에 게재한 글을 통해 집회 중에 태극기 깃발이나 봉에 맞았다고 토로했다. 서울역에서 촛불집회를 하는 사람들과 탄핵 반대 집회를 하는 사람들끼리 충돌하는 과정에서 ‘박근혜 하야’를 외쳤는데, 그 과정에서 박사모 회원들이 태극기 깃발로 자신을 내려쳤다는 것이다.  

 

 

집회에 사용된 태극기 훼손, 국기법 위반 

 

태극기 집회에 사용된 태극기가 버려진 채 방치되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집회 현장에 버려진 일부 태극기는 한쪽이 찢겨 있거나 도로에 나뒹굴다 자동차 바퀴에 밟히는 것이 목격되기도 했다. 국기법에 따르면 국기가 훼손됐을 때 지체 없이 소각 등 적절한 방법으로 폐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집회 등에서 수기를 사용할 때는 행사 주최 측이 국기가 함부로 버려지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고 관리 책임을 명확히 하고 있지만 이 같은 점이 전혀 지켜지지 않고 있다.

 

정치권에서도 여야가 태극기를 둘러싸고 각을 세우고 있는 상황이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태극기는 나라의 국격이고 자존심”이라며 “지금처럼 태극기가 곤욕을 치른 적이 없을 것”이라 지적했다. 이에 대해 김진태 자유한국당 의원은 “그렇게 태극기를 잘 모시려고 한명숙(전 민주당 대표)은 태극기를 밟고 행사를 하고, 세월호 집회에서 태극기 불태워도 가만있고, 촛불집회에선 아무도 태극기를 들지 않는 건가”라는 글을 게재하며 반박했다.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에 “태극기는 존엄의 상징이다. 어느 나라 국민이나 자국의 국기에 대한 충성심과 존경심은 형언키 어렵다”면서 “최근 태극기 집회가 진행되면서 나쁜 의미로 태극기가 부각돼 언짢다. 언론에서 ‘태극기 집회’란 용어를 바꿨으면 좋겠다”는 제안을 하기도 했다.

 

태극기가 친박 단체들의 전유물로 여겨지는 것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최근에는 촛불 집회에 참가하는 시민들이 직접 ‘태극기 구하기’에 나섰다. 시민들은 2월18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16차 촛불집회에 태극기를 들고 참가했다. 세월호 봉사단체 ‘노란리본공작소’는 “태극기를 민주시민 곁으로 되찾아 오자는 취지”라며 태극기에 노란 리본을 달아 시민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태극기를 시민들에게 나눠준 노혜경 시인은 “태극기는 결코 박사모나 기타 수구들이 독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며 “촛불집회에 더 적극적으로 태극기를 들고 나와 언론이 촛불 대 태극기라 부르면 아니다, 촛불 대 성조기다 하고 적극 항의하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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