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님도 해결 못해 ‘신사임당’이 나섰나
  • 조철 문화 칼럼니스트 (sisa@sisapress.com)
  • 승인 2017.02.24 16:52
  • 호수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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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가에 부는 ‘페미니즘’ 열풍의 진실

여성이 전체 도서 구매의 60% 이상을 차지해서일까. 최근 눈에 띄게 ‘여성을 위한, 여성에 의한, 여성의 책’들이 잇달아 출간되고 있다. 드라마 방영과 함께 신사임당을 조명한 소설이나 관련서가 줄을 잇는가 하면, ‘페미니즘 책’으로 분류된 신간들도 많이 나와 주목을 끌고 있다. 지난해 말, 폐점 14년 만에 다시 문을 연 ‘종로서적’은 아예 ‘여성 중심 서점’을 표방했다.

 

 

여성 대통령 배출한 나라답지 못한 현실 읽혀

 

최근 눈길을 끄는 여성 관련서들을 보면 결코 여성 독자들의 구미만 맞추려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여성잡지나 로맨스 소설이 판치던 예전 풍경과 사뭇 다르다. 한국 여성의 지위가 여성 대통령을 배출한 나라답지 못한 지금의 현실도 읽을 수 있다.

 

최근 뉴욕타임스는 한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을 성평등과 성범죄를 해결하지 못한 지도자로 평가절하하면서 “많은 여성들이 대통령의 스캔들에 ‘여자는 지도자로서 부족하다’는 논리로 악용될 수 있다는 두려움을 갖게 됐다”고 주장했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속담까지 언급하며 한국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가 낮다고 지적한 뉴욕타임스는 “온라인상 많은 남성들이 대통령과 최순실을 ‘자기주장이 강한 여성’을 모욕하는 논리로 공격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런 상황이니 여성들의 목소리가 더 커질 수밖에 없지 않을까. 최근 나온 신간들은 제목만 봐도 결기가 느껴진다. 《스무살 클레오파트라처럼》 《무엇이 아름다움을 강요하는가》 《엄마됨을 후회함》 《졸혼 시대》 《배드걸 굿걸》 《셀프 혁명》 《그럼에도 페미니즘》 등이 대표적이다.

 

최근 서점가에 페미니즘이 열풍인 가운데 2월15일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에서 시민들이 책을 고르고 있다. © 시사저널 고성준

지난해 벌어진 ‘강남역 살인 사건’을 계기로 출간된 《거리에 선 페미니즘》은 50여 명의 발화자(發話者)가 여성혐오에 대한 자신의 경험담과 생각을 토로한 것을 엮은 책이다. 책을 엮은 권김현영 작가는 ‘여성주의 연구 활동가’인 자신조차도 여성혐오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말한다. 여성혐오는 사회 깊은 곳에 뿌리 깊이 박혀 있기 때문에 여성학을 오래 공부한 자신조차도 모르는 사이에 여성혐오를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거리에 나서서 목소리를 높여야 하고, 남자와 여자가 모두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적극 모색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권김현영 작가는 “‘로리타’ 요소가 들어간 문화 콘텐츠를 아무 비판 없이 수용하는 사람들이 너무 답답하다. 사실 모든 어린 것은 예쁘다. 그것이 어린 생명체의 생존 전략일 수도 있다. 예쁜 것들에게 예쁘지 말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어린 것들이 욕망의 주체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야 하는 도의적인 책임이 있는 거다. 사실 나도 《도깨비》 같은 드라마 보면 재미있다. 이미 있는 문화를 수용하지 않을 수는 없지만, 선택적으로 수용하는 게 중요하다”고 문화 현실을 꼬집기도 한다.

 

《그럼에도 페미니즘》은 군대 문제부터 온라인 여성운동까지 여성의 시각에서 한국 사회의 이슈들을 분석한 책이다. 엮은이는 “페미니즘이 등장하는 공간은 데이트 폭력으로 문제시되는 연인 간의 사적인 관계일 수도 있고, 성평등 이야기에 꼭 따라붙는 군 복무 문제일 수도 있고, 임금 격차가 문제시되는 노동 현장일 수도 있다.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공간은 페미니즘적 시각으로 돌아볼 수 있다. 이에 최근 페미니즘 열기의 연원이 된 메갈리아로부터 군대·데이트 폭력·섹스·성매매·노동·속물론 등 우리 삶의 다양한 국면에서 페미니즘의 쓸모를 묻는다. 그 답은 여성학 연구자뿐 아니라, 경제학 교수·신문기자·정치인·여성운동 활동가·섹스 칼럼니스트·대중문화 연구자 등 해당 분야 전문가 12인의 목소리로 묶었다. 필자들은 모두 ‘페미니즘이 여성뿐 아니라 모두의 삶에 풍요를 가져다줄 수 있는 학문이자 운동’이라고 입을 모은다”고 말한다.

 

 

신사임당 ‘허상 깨기’ 열풍도 여성 현실 반영

 

신사임당을 재조명한 책들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온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역사적 인물 신사임당을 현재 관점에서 재해석하면서 여성의 목소리를 한껏 높인 작품들이 많기 때문이다. 최근 출간된 신사임당 관련서만 30여 종에 이른다. 책들 속에서 ‘현모양처’ 그늘에 가려 있던 신사임당은 ‘천재 예술가’로, ‘슈퍼 워킹맘’으로 환생하고 있다. ‘편견과 금기를 깨고 스스로 빛난 신사임당’ ‘자기개발의 선구자 신사임당’ ‘신사임당, 그녀를 위한 변명: 시대와 권력이 만들어낸 신사임당의 이미지 변천사’ 등의 제목에다 각기 기획의도가 다르다고 내세운 것들까지 나와 신사임당 ‘허상 깨기’ 열풍을 느낄 수 있다. 소설 《사임당의 붉은 비단보》를 펴낸 권지예 작가는 “신사임당에 대한 소설은 별로 없었다. 물론 평전은 많이 있겠지만, 나는 소설가니까 예술가의 내면을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우상이 아닌 한 인간을 호명하고 싶었다. 그는 위대한 어머니라는 이름을 얻는 대신 여성으로서, 예술가로서, 살아온 삶을 외면당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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