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방석 출근길’ 이유 살펴봤더니…
  • 신수용 인턴기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7.02.27 15:13
  • 호수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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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동안 운행 중인 경기 버스 내부시설 점검은 뒷전

경기도와 서울시를 오가는 시민들이 매일 출퇴근길마다 ‘이코노미클래스 증후군’을 경험하고 있다. 이코노미클래스 증후군은 비행기의 좁고 불편한 이코노미 좌석에 장시간 앉으면 생기는 근육통, 발 통증, 호흡 곤란과 같은 증상을 가리킨다. 좌석이 꺼지고 안전벨트와 등받이가 고장 나도 수리하지 않고 달리는 버스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앉아 있는 게 서 있는 것만도 못하다는 불만이 제기된다. 박아무개씨는 “버스 시트가 푹푹 파여 있어 엉덩이가 배긴다”며 “특히 맨 뒷자리는 피해서 앉는다”고 말했다. 올해 대학 졸업을 앞둔 박씨는 “통학의 피로도가 너무 심해서 2년 동안 버스를 타고 나머지는 학교 기숙사에서 지냈다”고 밝혔다.

 

망가진 좌석 등받이를 수리하지 않고 운행하는 버스도 있다. 김아무개씨는 “(등받이가)고정되지 않고 계속 움직이는 좌석이 많다”며 “3년 동안 같은 버스만 타는데 늘 똑같은 상태였다”고 말했다. 김씨는 “출퇴근 시간에 등받이 불량의자에 걸리면 낭패를 보게 된다”며 “사람이 많아 자리를 옮기지도 못하고 1시간 이상 버텨야 하니까 허리가 엄청 아프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서울과 경기도를 오가는 약 54만 명의 승객들은 매일 1시간가량 ‘불편한 좌석’을 감내해야 한다. © 시사저널 박정훈


좌석 꺼지고 안전벨트도 엉망

 

좌석뿐만 아니라 안전벨트 오작동에 대해 호소한 이들도 많다. 민아무개씨는 “고속도로를 경유하는 버스를 타기 때문에 안전벨트를 항상 착용하는 편인데 안전벨트가 고장 난 좌석이 많다”고 지적했다.

 

2월13일 월요일 저녁 기자가 직접 용산, 강남, 건국대 등지에서 경기도행(行) 좌석버스를 이용해 봤다. 구형 좌석버스의 경우 36개 좌석 모두의 시트가 뭉개져 있었다. 네모난 방석에 엉덩이 크기의 구덩이가 움푹 들어간 모양이었다. 의자 등받이에 바짝 허리를 대봤지만 폭삭 가라앉은 시트 아래로 주르륵 미끄러졌다. 다른 승객들은 앉은 것도 누운 것도 아닌 애매한 모습으로 폭삭 내려앉은 ‘시트 홀’에 파묻혀 있었다. 버스 1대당 평균 30분가량 앉아 있었는데, 허리가 욱신거릴 정도로 불편함을 느꼈다.

 

 

경기도 버스 내부시설 관리 예산 ‘0’

 

경기도 버스는 세금 먹는 하마다. 한 해 약 1900억원이 투입됐지만, 최장 11년까지 운행하는 버스의 노후한 내부시설 개선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예산 대부분이 버스회사의 재정을 보조하는 데 쓰인다. 버스재정지원금 중 시설개선 항목이 없는 것은 아니다. 시설개선비로 지출된 예산은 3년간 약 700억원인데, 저상(低床)버스 운영과 자동세차기, 어라운드 뷰 모니터(AVM) 설치와 같은 시설물 구입에 쓰였다.

 

버스재정지원금 중에서는 환승할인 손실보전금, 즉 환승할인에 투입된 예산이 가장 많다. 경기도는 3년간 환승할인 손실보전금으로 5000억원 이상을 썼다. 경기도 인구가 증가하면서 평균 약 54만 명이 매일 서울시로 오가는 출퇴근 전쟁을 벌이고 있다. 경기도 시내버스 1만518대의 절반에 가까운 5031대가 경기도와 서울시를 오간다. 서울시에서 운행하는 버스 7427대와 맞먹는 수치다. 경기도청 관계자는 “의자 수선이나 내부 시설물 시정에 대한 조항이나 배정된 예산은 없다”며 “버스 내부시설 관리는 전적으로 업체의 소관이다”고 말했다.

 

경기도 좌석버스에서 발견된 고장 난 등받이(왼쪽)와 움푹 파인 좌석 © 시사저널 박정훈


버스 내부시설 노후화를 막을 평가제도도 부실하다. 지난 3년간 약 470억원이 투입된 경기도 버스 재정지원 항목에는 ‘인센티브’가 있다. 이는 경영(40%) 및 서비스(60%) 평가를 통해 지급된다. 경기도 버스 서비스평가는 외부 용역과 평가원에 의해 이뤄진다. 평가원이 버스에 탑승해 평가하지만 운전태도, 안전수칙 준수, 친절 등 운전기사의 근무 현황에 방점을 둔다. 서울시는 다르다. 서울시는 운행실태점검원이 하루 5대씩, 매년 약 8000회 이상 차량을 무작위로 골라 탑승해 일일이 차체를 점검한다. 이를 통해 노후하거나 고장 난 시설물이 없는지 점검해 예산에 반영한다.

 

통근시간은 직장인의 업무능률, 나아가 삶의 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다. 2013년 한국교통연구원에 따르면, 통근시간(편도)이 1시간인 직장인들의 행복상실 가치가 월 94만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인의 평균 통근시간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의 2배인 58분이다. 한국인의 평균 통근시간은 더욱 증가할 전망이다. 서울시와 경기도를 오가는 ‘장거리 통근족’이 계속 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내의 주거비가 상승하면서 사람들이 경기도로 몰리고 있다.

 

행정자치부에 따르면, 국내 주민등록 인구수는 지역별로 서울시가 약 900만 명을 기록한 데 비해 경기도는 1271만6780명으로 가장 많은 인구수 기록을 경신했다. 그런데도 대중교통과 같은 공공서비스 질은 낮아지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김순관 서울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승객의 편리, 즉 서비스의 질이 중요하다”며 “유가가 저렴했던 지난해에는 버스 이용률이 줄었다”고 밝혔다. 김 선임연구위원은 “교통 인프라가 잘 갖춰진 상황에서 장거리에는 버스 대신 자동차나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며 “서비스의 질을 높이지 않으면 버스는 더 큰 외면을 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버스업체 관계자는 ‘좌석 불량’ 문제와 관련해 “몇몇 버스에 해당되지 모든 버스가 그런 것은 아니다”며 “고장 난 버스가 정확히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지만 운전기사가 매일 확인하는 부분이다”고 말했다. 그는 또 “육안으로 확인하기 힘든 부분은 매년 1회 전수검사를 진행하고 민원이 있을 때 교체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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