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중소기업인과 대기업의 골프장 분쟁 내막
  • 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승인 2017.03.02 13:10
  • 호수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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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매출 역성장에 위장계열사 의혹 휩싸인 현대엔지니어링

현대차그룹 계열사인 현대엔지니어링 ‘성상록호(號)’가 출범 초기부터 삐걱거리고 있다. 성상록 부사장은 2월6일 현대엔지니어링 사장에 취임했다. ‘조직 혁신을 통한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한다’는 것이 성 사장의 취임 일성이었다. 하지만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다. 회사 실적이 우선 성 사장의 발목을 잡았다. 이 회사는 2001년 현대건설에서 분리돼 재설립됐다.

 

 

현대엔지니어링 매출 15년 만에 역성장

 

지난 15년간 매출은 880억원에서 7조3485억원으로 100배 가까이 증가했다. 김위철 전임 사장 때는 현대엠코와의 합병이 성사되면서 외형이 급격히 확대됐다. 매출은 2조6236억원에서 5조6892억원으로 두 배 이상 커졌다. 2015년 말 이 회사의 연결 기준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7조3485억원과 4430억원을 기록했다. 장외시장에서 현대엔지니어링의 주가는 1주당 61만원을 오르내리고 있다.

 

현대엔지니어링이 최근 실적 하락과 위장계열사 의혹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 현대엔지니어링

지난해 변수가 발생했다. 현대엔지니어링의 매출은 6조9406억원으로 전년 대비 4079억원(5.6%)이나 감소했다. 최근 15년 만에 처음으로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한 것이다. 해외 건설 수주액도 크게 줄었다. 계약액 기준으로 2015년 57억 달러(업계 1위)에서 지난해 23억5700만 달러(업계 4위)로 반 토막이 났다.

 

주목되는 사실은 현대차그룹의 또 다른 건설 계열사인 현대건설(29억7400만 달러)보다도 수주액이 감소했다는 점이다. 현대엔지니어링의 개인 최대주주는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11.72%)이다. 정몽구 회장도 이 회사 지분 4.68%를 보유하고 있다. 현대건설과 현대글로비스, 기아차 등 계열사까지 포함하면 특수관계인 지분은 89.68%에 이른다.

 

때문에 현대엔지니어링은 그동안 현대차그룹 승계의 핵심으로 거론됐다. 정몽구 회장에서 정의선 부회장으로 경영권이 승계되는 과정에서 이 회사가 ‘캐시카우’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됐다. 시장에서는 현대엔지니어링의 기업공개 추진설까지 거론되고 있다. 상장을 통해 확보한 자금으로 정 부회장이 현대차와 현대모비스 등 핵심 계열사의 지분을 사들일 것이라는 게 재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현대차그룹 계열사로부터 받는 일감도 매년 증가하고 있다. 이 회사가 지난해 6월 금융감독원에 공시한 자료에 따르면, 계열사 의존도는 2014년 1조684억원에서 2015년 1조2964억원으로 21.36%나 증가했다. 매출 대비 계열사 의존도도 20.21%에 달했다. 아파트 브랜드인 ‘힐스테이트’도 현재 현대건설과 공유하고 있다.

 

같은 기간 현대건설이 계열사에서 받은 물량은 1705억원에서 1177억원으로 크게 줄었다. 계열사에서 받는 일감은 매출의 1% 수준으로, 총액은 현대엔지니어링의 10분의 1 수준에 불과했다. 그나마도 2015년의 계열사 의존도는 전년에 비해 30.97%나 감소했다. 

 

실제로 현대엔지니어링은 2014년 당기순이익의 절반이 넘는 1688억원가량을 현금으로 배당했다. 정 부회장은 약 205억원의 배당금을 받았다. 성상록 신임 사장 입장에서는 이 부분을 간과할 수 없다. 수익 구조를 빠르게 정상화시켜야 승계 구도 역시 차질 없이 진행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성 사장이 취임 일성으로 ‘조직 혁신’을 내세우면서 내실보다 미래 성장에 방점을 찍은 것도 이 때문으로 풀이된다.

 

현대엔지니어링 측은 “(매출 하락은) 시장 상황이 좋지 않아 나타난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강조했다. 회사 관계자는 “지난해 해외 수주가 크게 감소했다. 당초 예정된 수주가 올해로 이월되면서 일시적으로 매출이 감소했다”며 “다른 건설사들도 비슷한 상황이다. 우리 회사의 경우 매출은 감소했지만 영업이익은 오히려 늘었다. 수익성 위주의 공사로 선회했다는 점에서 올해는 상황이 나아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2월 취임한 성 사장이 풀어야 할 숙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시사저널은 2013년 10월과 12월 각각 현대엔지니어링(당시 현대엠코)의 1000억원대 골프장 강탈 의혹과 위장계열사 논란을 단독 보도한 바 있다.(시사저널 제1256호·1260호 참조) 최근 이 문제가 다시 도마에 오를 조짐을 보이고 있다.

 

최근 정의선 부회장에게 발송된 내용증명


중소업체 골프장 강탈 의혹도 수면 위로

 

당시 골프장 강탈 의혹을 제기한 시행사 대표가 2월초 정의선 부회장에게 내용증명을 보낸 사실이 시사저널 취재 결과 드러났다. 거기에는 자신이 현대엔지니어링에 골프장을 빼앗긴 데 대한 억울함을 호소하고, 이에 대한 선처를 사실상 그룹 오너인 정 부회장에게 당부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현대엔지니어링은 2009년 강원도 춘천에 위치한 오너스골프클럽(오너스GC)의 시공사였다. 하지만 사업이 어려움을 겪으면서 시행사가 엠스클럽으로 변경됐다. 700억원의 PF(프로젝트 파이낸싱) 보증을 떠안는 조건이었다. 이후 380억원의 사업비를 별도로 투자했다. 부족한 자금은 회원권을 분양한 돈으로 충당하기로 양측은 합의했다. 문제는 현대엔지니어링이 회원권 분양 대행사로 워너관광개발을 지목했다는 점이다. 당시 현대엔지니어링이 엠스클럽 측에 보낸 공문에 따르면, ‘워너관광개발은 남양주 및 제주 해비치GC의 회원권을 성공적으로 분양했다. 회사 역시 워너관광개발의 회원권 분양 계획에 맞춰 사업을 수주했다’고 언급돼 있다.

 

하지만 2008년 터진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회원권 분양에 차질이 생겼다. 현대엔지니어링도 일정 부분 사업 부실에 대한 책임이 있음에도 PF 대출의 보증 연장을 거부했다. 현대엔지니어링 측은 “엠스클럽의 채무 한도가 포화 상태여서 자칫하면 회사가 PF에 대한 대위변제를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고 이유를 밝혔다. 반면 엠스클럽 측의 설명은 달랐다. 골프장 개발 사업은 초기에 막대한 자금이 소요된다. 시공사가 지급보증을 서는 것이 관례였다. 우리은행에서도 당시 계열사의 지급보증을 조건으로 200억원의 추가 대출이 가능하다는 의사를 밝힌 만큼 현대엔지니어링이 보증 연장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고 엠스클럽 측은 주장했다.

 

그러는 사이 엠스클럽이 은행권에서 빌린 PF의 원금 회수 압박이 가중됐다. 자칫하면 계열사 전체로 리스크가 확대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결국 엠스클럽은 워너관광개발에 사업권을 넘기기로 현대엔지니어링과 합의서를 작성했다. 양측은 5차례에 걸쳐 합의서 문구를 조정했다. 합의서를 새로 쓸 때마다 엠스클럽에 지급하기로 했던 보상금은 계속 줄어들었다. 1차 협상 때 380억원이던 보상금이 5차 때는 아예 0원으로 바뀌었다. 현대엔지니어링 측은 “절차에 따라 합의서를 작성한 만큼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엠스클럽 측은 “자금력이 없는 중소기업의 약점을 악용했다”며 “현대엔지니어링의 횡포로 1000억원 이상의 가치를 가진 골프장을 사실상 강탈당했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된 손해배상 소송이 현재 3년 가까이 진행 중이다.

 

양측의 앙금은 형사 고소로까지 이어졌다. 현대엔지니어링은 2014년 엠스클럽의 오도환 대표를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서울남부지검은 2014년 5월 관련 사건을 ‘혐의 없음’(증거 불충분)으로 종결지었다. ‘고소인이 작성한 합의서의 수정 내용을 보면 불리한 조건으로 합의를 했다고 볼 가능성도 있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그렇지 않아도 ‘최순실 게이트’의 후폭풍이 재계를 강타하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최근 구속되면서 여파가 SK와 한화·CJ·부영 등으로 확대될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재벌 2·3세들의 ‘갑질’ 폭행 사건이 잇달아 언론에 보도되면서 재계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다. 이 같은 상황에서 터진 대기업 계열사 ‘갑질’ 의혹은 새롭게 회사 지휘봉을 잡은 성 사장뿐 아니라 현대차 오너 일가에도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강원도 춘천에 위치한 오너스골프클럽 © 오너스골프클럽 홈페이지 캡쳐

현대엔지니어링 “위장계열사는 사실 아냐”

 

특히 현대엔지니어링이 회원권 분양 대행사로 지목한 워너관광개발의 경우, 지속적으로 위장계열사 의혹을 받고 있다. 이 회사는 당시 자본금 5000만원의 신생 업체였다. 자본력이 없다 보니 600억원대의 운영비도 현대엔지니어링에서 빌려 썼다. 이 회사의 회계감사를 진행한 삼정회계법인은 “계속기업으로서 그 존속능력에 의문을 제기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 회사가 채무 불이행 상태가 되면 지급 보증을 선 현대엔지니어링이 채권을 떠안아야 한다. 그럼에도 현대엔지니어링은 여러 계열사가 지급보증을 선 엠스클럽 대신 워너관광개발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뒷말이 나오고 있다.

 

워너관광개발의 주주 3명이 모두 현대차그룹 출신이라는 점도 뒤늦게 밝혀졌다. 최대주주인 박아무개씨가 최근 지분을 팔고 나갈 때까지 이들은 각각 45%와 36%, 19%의 지분을 보유했다. 방송인 신동엽씨도 지난 2011년 3월부터 2012년 7월까지 워너관광개발 감사로 등기됐다. 신씨는 정의선 부회장과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지면서 위장계열사일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점쳐지고 있다.

 

성 사장이 일련의 문제들을 어떻게 매듭지을지도 향후 주목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도 현대엔지니어링 측은 “위장계열사 문제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2013년 공정위 조사에서도 무혐의로 나왔다”며 “현재 재판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조만간 1심 선고가 나올 예정이기 때문에 지켜봐 달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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