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노조부터 변해야 한다”
  • 장석준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기획위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7.03.02 14:22
  • 호수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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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정책대안②] ‘하후상박(下厚上薄) 연대임금’ 스웨덴 모델로 비정규직 임금차별 해소 가능

대선 주자들은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제시했다. ‘동일노동 동일임금, 사용사유 제한’과 같은 노동계 요구를 보수정당 대선후보들조차 내세우는 상황이다. 남은 것은 어떻게 실현할 것이냐의 문제다. 시사저널은 ‘비정규직 문제’ 기획 시리즈의 마지막 순서로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현실적 방안을 제시하기 위해 전문가들의 견해를 담는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임금 격차를 해소할 방안은 없을까. 고민해볼 수 있는 대안은 연대임금제도다. 스웨덴 모델이 선례(先例)다. 스웨덴은 1980년대까지 연대임금제도를 실시해 노동시장 내부의 소득 격차를 현격히 줄였다.

 

스웨덴 연대임금제도에서 협상 주체는 노총과 경총이었다. 기업별·산업별 협상이 아니라 제조업 전체를 놓고 협상을 했다. 또한 기업 규모를 따지지 않고 공통 임금인상률을 정했다. 덕분에 중소기업에서는 이 제도가 없었을 때보다 더 빠르게 임금이 인상됐다. 반면 대기업에서는 임금 인상이 억제됐다. 결과적으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 격차가 줄어들었다.

 

연대임금은 특별한 게 아니다. 노동조합이 고임금 조합원의 임금 인상을 양보하는 대신 저임금 조합원의 임금을 대폭 인상하는 협상안을 제시해 관철하면 된다. 달리 말하면, 하후상박(下厚上薄) 임금인상 방식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의 임금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선 노사 양측의 양보를 바탕으로 한 사회적 대타협이 필요하다. © 연합뉴스

지금 한국에서 이런 제도를 실시할 수만 있다면 이상적일 것이다. 스웨덴처럼 제조업 전체를 대상으로 교섭할 필요까지도 없다. 산업별 교섭만 이뤄져도 좋다. 가령 현대기아자동차까지 포함된 금속산업 사용자단체와 금속노동조합이 교섭하는 것이다.

 

물론 노동계에서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기업별 노동조합들이 산업별 노동조합(산별노조)을 만들었다. 하지만 아직도 산업별 단체협상(산별교섭)이 이뤄지지는 않는다. 가령 현대기아자동차 노동조합은 민주노총 전국금속노동조합의 지부이면서도 단체협상은 여전히 별도로 한다. 그러다 보니 대기업-중소기업, 정규직-비정규직의 임금 격차는 날이 갈수록 더욱 심각해지기만 하고, 산업별 연대임금제도는 공허한 이상으로 치부된다. 노동계 안팎에서 대기업 노동조합의 각성과 결단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사회복지세 통해 증세․복지 확대 선순환 이뤄야

 

무작정 대기업 노동조합의 변화를 기다릴 수는 없다. 비록 과도적인 처방일지라도 지금 당장 저임금으로 신음하는 이들의 고통을 경감할 방안이 필요하다. 그런 방안 중 하나가 강상구 정의당 대선예비후보가 제시한 ‘비정규직 차별해소 임금제도’다. 강 후보는 비정규직의 시간당 임금을 정규직 협약임금의 130% 이상으로 정하는 방안을 공약했다. 비정규직은 정규직이 단체협상으로 정한 임금보다 시간당 최소 30% 더 많은 임금을 받게 하자는 것이다.

 

비슷한 사례가 있다. 호주에서는 비정규직의 시간당 최저임금에 25%의 가중치를 부여한다. 즉, 비정규직은 정규직 최저임금의 125%를 최저임금으로 받는다. 비정규직은 정규직에 비해 노동시간이 짧은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렇게 해야 그나마 임금 총합의 격차가 줄어들 수 있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에 근접하려는 적극적 차별시정 정책인 셈이다. 대기업이나 공기업의 정규직 노동조합은 이런 적극적 차별시정 정책의 법제화에 힘을 보태야 한다.

 

상대적 고임금을 고수하는 대기업 노동자들도 할 말은 있다. 언제 1997년 같은 대량 해고 위협이 닥칠지 알 수 없다. 조선업 노동자들은 벌써 벼랑 끝에 놓여 있다. 한국이 북유럽 같은 복지국가도 아니니 현재의 임금수준을 양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오늘도 자신들에게 주어진 시간을 잔업과 특근에 쏟아 붓는다.

 

때문에 복지 확대와 이를 위한 증세(增稅)를 동시에 요구해야 한다. 복지가 확대되고 교육과 주거비용이 줄어들면 노동자 가계가 지금처럼 임금에 목매달 이유도 줄어든다. 복지가 늘려면 이를 뒷받침할 재정이 있어야 한다. 한데 증세만큼 인기 없는 정책도 없다. 역시 악순환이다. 상대적 고임금 노동자들이 나서서 이 악순환을 깨야 한다. 소득세를 인상하자고 주장해야 한다. 소득세를 인상하면 1% 재벌이나 부유층뿐만 아니라 고임금 노동자도 세금이 늘어난다. 임금을 더 많이 받는 만큼 소득세를 더 많이 내야 한다. 그래도 고임금 노동자들에게는 이게 임금 인상 자제론보다 훨씬 받아들일만한 주장일 것이다.

 

증세는 고임금 노동자 입장에서도 일방적 양보나 희생은 아니다. 세금 증가는 저소득층뿐만 아니라 중산층에게도 복지 증가로 되돌아오기 때문이다. 정부가 돈을 다른 데 쓸까봐 걱정된다면 ‘사회복지세’ 도입을 요구하면 된다. 사회복지세는 근로소득세에 부가해 걷은 추가 세수를 오직 복지 지출에만 쓰는 목적세다. 사회복지세를 통해 증세-복지 확대의 선순환을 경험하게 되면 복지증세 지지 여론도 높아질 것이다.

 

비정규직을 위한 적극적 차별시정 정책의 법제화나 복지증세운동은 현재 노동계가 사회 붕괴를 막기 위해 떠안아야 할 최소한의 임무다. 이조차도 안 한다면 언제 실현될지 알 수 없는 연대임금제도는 불가능하다. 사회연대를 위해 노동계가 전향적 입장을 제시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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