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의 개헌 도우미, 아베의 발목 잡다
  • 김회권 기자 (khg@sisapress.com)
  • 승인 2017.03.07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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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회의’ 관련된 특혜 시비, 아베 장기집권에 독?

일본 도쿄 나가타초의 국회가 개원한 올해 1월20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시정 연설에서 ‘평화헌법’을 입에 올렸다. “우리 헌법에 대해 구체적인 논의를 깊게 다루자”는 그의 호소가 나왔지만 막상 일본 국회는 큰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헌법개정안을 다뤄야 할 국회의 헌법심사회는 중의원, 참의원 모두 한 번도 개최되지 않았다. 

 

짧은 기간 동안 해결하지 못할 과제라고 생각해서일까. 3월5일 자민당 전당대회에서는 총재의 임기를 ‘2기 6년’에서 ‘3기 9년’으로 바꾸는 당규 개정을 결정했다. 아베의 장기집권을 위한 정치적 포석이었다. 이날 당원들을 만난 아베는 “개헌을 향한 길을 국민에게 선명하게 보여주겠다”며 헌법 개정을 향해 전진할 의지를 보였다. 그의 첫 번째 총리 임기가 ‘개헌’이라는 말을 정면으로 내세운 때라면 이번 임기에서는 본격적으로 도전하려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혹시 맞을 지도 모를 세 번째 임기에서는 아마 개헌을 현실로 만들어내는 게 목표일 테다.

 

개헌 일정은 자민당과 연정을 꾸린 공명당의 동의도 필요하다. 공명당의 속내는 키타가와 카즈오 헌법조사회장(공명당)의 말을 빌리면 알 수 있다. “스케줄이 가장 중요하다. 우선 합의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언제까지 반드시 해야 한다는 로드맵이 정해져 있지는 않은 느낌이다. 개헌의 키는 내각이 아닌 의회가 쥐고 있지만 그럼에도 어떤 시점에서는 반드시 개헌에 도전하려는 불쏘시개 노릇은 총리 관저가 맡아야 한다. 

 

우리네 개헌 작업과 마찬가지로 일본도 개헌을 하려면 정당들이 협의를 거치고 개헌안을 정리해 국회에 발의한 뒤 중의원이 의결해야 한다. 그 뒤에는 국민투표 절차가 기다리고 있다. 아마도 올해는 국회에서 발의하는 게 목표라는 얘기가 많고 의결은 그 이후의 숙제라는 게 일본 내 대체적인 분석이다. 만약 중의원에서 발의한 뒤 연립여당인 자민당과 공명당, 그리고 개헌에 호의적인 일본유신회의 찬성으로 의결이 된다면 60일~180일 사이에 국민투표를 실시해야 한다. 이런 과정에 걸리는 시간을 모두 고려해본다면 지금부터 발의 작업을 시작한다고 해도 약 최소 1~2년 정도가 걸린다. 

 

ⓒ AP연합

개헌 일정의 3가지 시나리오

 

그렇다면 개헌 일정은 과연 어떻게 될까. 정치평론가인 시오타 우시우는 세 가지의 개헌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하나는 올해 가을부터 연말 사이에 의회를 해산한 뒤 총선을 실시해 자민당이 승리하고 아베가 자민당 총재 3선에 성공해 2018년 9월 이후의 임기를 보장받는다. 그리고 2019년 3월까지의 1년~1년 반 정도의 시간을 사용해 개헌을 마무리하는 게 첫 번째 시나리오다. 두 번째는 지금부터 1년 정도 공을 들여 개헌안을 발의한다. 발의한 뒤에는 중의원을 해산하고 2018년 3월 쯤 총선거와 헌법 개정 국민투표를 함께 실시하는 방법이다. 제 3안은 2020년 도쿄 올림픽 이후에 개헌을 시도하는 방법이다. 2018년 9월 이후 3선 연임으로 총리에 한 번 더 오른 아베가 올림픽이 끝난 2020년 하반기부터 자민당 세 번째 총재 임기가 끝나는 2021년 9월 사이 1년 남짓을 개헌안 발의와 국민투표에 쏟는 계획이다. 

 

개헌이라는 배를 끌고 가려면 엄청난 정치적 에너지가 필요하다. 아베의 정치적 에너지는 지지세력으로부터 나온다. 안정적 정권운영은 내각 지지율이 초석이다. 특히 아베 정권의 핵심 응원 세력 중 하나가 ‘일본회의’다. 일본 시사주간지 ‘아에라’가 취재한 기사를 보면 일본회의는 1997년 5월 당시 2대 우파 조직인 ‘일본을 지키는 모임’과 ‘일본을 지키는 국민회’가 합병하면서 탄생했다. 회원 수 약 3만8천명에 중의원, 참의원 등 의원들의 참여까지 상당하다. 원래 일본회의는 극우 조직이 대부분 그렇듯 ‘위험한 세력’으로 인식돼 왔다. 하지만 중국의 급속한 성장으로 일본의 국제적 지위가 상대적으로 떨어지고 국내에서도 격차 확대에 대한 불안이 커지면서 일본회의가 주장하는 ‘강한 일본’, ‘일본 우선주의’의 주장이 조금씩 세를 넓혔다. 

 

그들에게 아베 정권 탄생은 기회였다. 아베 역시 일본회의 깊숙이 관여하고 있어서다. 국회의원의 3분의 1, 아베 정권의 각료 중 절반 가량이 일본회의를 지지하고 있다는 얘기도 있다. 이전에는 ‘반대하는 운동’을 전개하던 일본회의가 아베 정권이 등장한 이후에는 거꾸로 ‘방향성을 제시하는 운동’으로 전환했다. 수동에서 능동으로 바뀌었다는 얘긴데 제시한 방향성 중 대표적인 게 바로 ‘개헌 운동’이다. 일본 극우의 타파 대상은 약해진 일본을 만든 전후 체제다. 그리고 지금의 평화헌법은 반드시 바꿔야 할 전후체제의 상징이다. 이건 아베 내각과 일본회의의 생각이 같다. 

 

일본 극우단체인 '일본회의'가 아베 정권 들어 제시한 방향성 중 대표적인 게 바로 '개헌 운동'이다.

개헌의 정치적 에너지가 발목을 잡는 역설

 

외신에서 정권 차원의 스캔들로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오사카시의 학교 법인 모리모토학원의 국유지 헐값 취득 문제도 아베와 일본회의라는 연결고리와 얽혀 있는 문제다. 이 학원은 초등학교 건설 용지로 국유지를 평가액보다 훨씬 싸게 구입해 문제가 되고 있는데 올해 4월 문을 연 이 초등학교 명예 교장을 아베의 아내인 아키에 여사가 맡아서 문제가 됐다. 

 

특혜 시비의 중심에 선 모리모토학원이 더 큰 주목을 받은 건 카고이케 야스노리 이사장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소유한 유치원 어린이들에게 아베 총리를 찬양하는 선서문을 낭독하게 했는데 그 동영상이 공개되면서 파문이 더욱 커지고 있다. 그런데 '버즈피드 저팬'은 이런 특혜와 파문의 중심에 서 있는 카고이케 이사장이 “일본회의 오사카의 운영위원”이라고 보도했다. 

 

스캔들의 정치적 영향은 어떨지 정확히 예측하기는 어렵다. 다만 워싱턴포스트는 ‘아베가 총리가 된 뒤 최대의 위기’라고 평가했다. 만약 스캔들이 눈덩이처럼 커지고 아베의 특혜 개입이 좀 더 명확해진다면 정권에 치명상이 될 수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개헌을 위한 정치적 에너지가 됐어야 할 그의 지지세력이 오히려 개헌의 발목을 잡는, 역설적인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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