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는 있으되, ‘책임’은 없는 현대차 급발진 사고
  • 송창섭 기자 (realsong@sisapress.com)
  • 승인 2017.03.08 09:21
  • 호수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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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사 “운전자가 결함 찾아내라” 모르쇠…전장 비율 높아지면서 사고 해마다 증가

한 사립대에 재직 중인 주아무개 교수는 1월2일 자신의 강남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어이없는 사고를 당했다. 차를 지하주차장에서 지상으로 몰고 올라오는 과정에서 급발진으로 추정되는 사고를 당한 것이다. 시사저널이 사고 차량의 블랙박스를 확인한 결과, 주 교수는 지상으로 올라오기 전 마지막으로 코너를 도는 과정에서 이상 징후를 발견했다. 놀란 나머지 감속페달(브레이크)을 밟았지만, 차는 멈추지 않고 오히려 가속(加速)됐다는 게 주 교수의 주장이다. 결국 차는 운전석 앞쪽 부분으로 기둥을 심하게 들이받고 나서야 멈췄다.

 

 

현대차, 사고 나면 무조건 운전자 과실 탓해

 

당시 주 교수가 운전한 차량은 지난해 출시된 현대차의 신형 제네시스였다. 새 차를 구입한 지 딱 4개월 만에 당한 사고였다. 급발진을 의심한 주 교수는 현대차 서울 남부서비스센터에 관련 사실을 알렸지만, 현대차는 “차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으며, 운전자가 브레이크(감속페달)가 아닌 액셀러레이터(가속페달)를 밟아 사고가 난 것”이라고 대답했다. 주 교수는 “하루에도 수차례 오르락내리락하기 때문에 지하주차장 구조를 잘 알고 있으며, 이 차(제네시스)를 타기 전 그보다 큰 에쿠스를 몰았기 때문에 운전 미숙이라고 보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현재 주 교수는 급발진에 따른 손해배상을 요구하고 있지만, 제조사인 현대차는 “운전자 스스로가 차량 결함을 입증하기 전에는 힘들다”는 입장이다.

 

2016년 1월14일 오후 1시20분쯤 부산 동래구청 1층 민원실에 박아무개씨가 몰던 제네시스 차량이 돌진, 민원실 현관과 여행사 사무실 등이 파손됐다. © 연합뉴스

자동차업계에서 급발진 사고는 더 이상 새로운 화제가 아니다. 한 해에도 수백 건의 사고 차량들이 급발진을 주장하고 있다. 학계에 보고된 자동차 급발진(Sudden Acceleration) 사고는 대체로 출발 단계에 발생한다. 차량이 정지 또는 매우 느린 속도로 출발한 상태에서 갑자기 출력이 올라가면서 제어가 불가능한 상태로 변하는 게 급발진 사고다. 가장 최근 데이터인 2013년 국정감사 자료를 보면, 2009년 7건이었던 급발진 추정 사고는 2012년 136건, 2013년 9월 현재 101건으로 크게 늘어났다. 한국소비자원의 급발진 상담 건수도 2009년 81건에서 2012년 상반기 현재 142건으로 증가했다.

 

안타깝게도 현재로선 급발진 사고의 원인을 정확히 알기 어렵다. 사고를 당한 피해자들의 답답함도 바로 여기에 있다.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도 매년 수차례 사고 차량을 조사하고 있지만, 뚜렷한 원인을 찾지 못하고 있다. 기술적 결함으로 단정 짓기 힘들다는 것에 대해서는 관련 학계의 생각도 비슷하다. 급발진에 대한 학계의 평가 역시 기술적 결함보다는 시스템 오류에 가깝다. 차량 내 전자제어장치 탑재 비율이 높아지면서 생기는 오류라는 것이다. 김필수 대림대 교수는 “전자제어장치가 자동차에 탑재되기 시작한 1980년대부터 관련 사고가 발생한 것을 보면, 전장(電裝)이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면서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컴퓨터 오류를 재현할 수 없듯 급발진을 기술적으로 재현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내부자 고발로 싼타페 급발진 원인 찾아내

 

문제는 이러한 기술적 한계가 자동차 제조사들에 면죄부를 주는 수단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운전자들이 차량 결함을 주장하며 법원에 소송해도 제조사의 책임을 물은 경우는 단 한 건도 없다. 소비자 스스로가 기술 결함을 입증하지 못할 경우 제조물책임법(PL법)에 따른 손해배상을 제조사에 물을 수 없다는 논리다. 다시 말해, PL법을 적용받기 위해서는 사고자 스스로가 실수나 운전미숙 등이 없었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물론 국내 대표 자동차 제조사인 현대·기아차의 입장도 별반 다르지 않다. 급발진 사고라고 주장하는 소비자들에게 현대·기아차는 한결같이 ‘감속페달(브레이크)과 가속페달(액셀러레이터)을 착각한 운전자 과실’이라고 대답하고 있다. 오히려 일부 고객에게는 무대응 전략을 펴 빈축을 사고 있다.

 

이러다 보니 소비자들의 불만은 갈수록 커지는 모습이다. 일각에서는 사건 발생 후 피해자와 상담하는 과정에서 자동차 제조사들의 고압적인 태도가 더 큰 문제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권아무개씨는 새해 첫날 아내와 함께 경북 경산시 와촌면에 있는 팔공산 갓바위에 갔다. 오후 5시쯤 약사암 쪽 내리막길에 주차해 놓은 차에 시동을 건 권씨는 브레이크를 살짝 밟았다. 하지만 차는 되레 가속이 되면서 80m여를 달려 주차된 다른 차량 2대를 들이받고서야 멈췄다. 사고 직후 권씨는 경북 영천과 포항의 현대차 서비스센터를 찾아갔지만, “브레이크가 아니라 액셀러레이터를 밟은 거 아니냐”는 소리를 듣고 분통을 터트렸다. 서비스센터의 설명에 납득하지 못한 권씨는 서울 양재동 현대차 본사를 찾아가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국과수(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의뢰하든지, 법대로 하든지 마음대로 해라. 우리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소리만 들어야 했다.

 

사고 발생일로부터 10일 뒤, 권씨는 현대차로부터 EDR(Event Data Recorder·사고기록장치) 자료를 넘겨받았다. 자료에는 △권씨가 계속 브레이크를 밟았으며 △엔진회전수(RPM)는 2700 이상 △스로틀밸브 100% 열림 △제동페달 작동 여부 ON △ABS 작동 여부 OFF △ESC(전자식 주행 안정화 컨트롤) 미작동 △최고속도 시속 19km 등이 기록돼 있었다. 권씨는 “어떻게 시속 19㎞로 달려 주차된 차량 2대를 폐차시킬 정도로 부술 수 있겠나”라며 분통을 터트렸다.

 

이렇다 보니 조사 방식에 이의를 제기하는 의견도 적지 않다. 관련 기록을 자동차 제조사에만 전적으로 의존하기 때문에 권씨의 경우처럼 결과 자체를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한국소비자원도 2012년 발간한 급발진 보고서에서 “CCTV 설치장소가 많아지고 블랙박스를 장착한 차량이 늘어나면서 급발진 주장 동영상이 원인을 규명하기 위한 증거자료로 제시되는 사례가 늘고 있으나 운전자의 브레이크 조작 등을 확인할 수 없어 규명에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차체 결함으로 밝혀질 경우 막대한 손해배상을 물어야 하기 때문에 제조사 입장에서는 관련 정보 제공에 미온적일 수밖에 없다. 지난해 여름에 발생한 부산 싼타페 사건이 최근 다시 주목받기 시작한 것도 그 때문이다. 당시 경찰은 해당 사고를 운전자 부주의로 결론 내렸지만, 지난해 9월 현대차 내부자가 공익제보 형식으로 관련 차종의 기술 결함을 지적하면서 이 사건은 재조명받고 있다.

 

2월22일 국회 정무위 소속 박용진 의원 주최로 열린 자동차 결함 간담회에서 한 급발진 사고자가 사고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 박용진의원 제공

사고는 지난해 8월2일 한아무개씨가 몰던 2002년형 현대 싼타페 차량이 부산 감만동에서 다대포해변으로 이동하는 도중에 발생했다. 한씨 차량이 현대2차아파트 사거리를 지나던 중 RPM이 오르고 심한 굉음이 발생하면서 가속이 붙어 사고가 난 것이다. 이 사고로 일가족 4명이 그 자리에서 숨지고, 운전자 한씨도 이후 사망했다.

 

현대차 내부고발자는 지난해 9월 싼타페의 고압 연료펌프 볼트에서 흘러나온 연료가 연료크링크실로 들어가 뒤섞이면서 RPM이 올라간다는 현대차 내부 보고서를 공개해 파문을 일으켰다. 현재 현대차는 2002년 11월부터 2005년 10월 사이 생산된 싼타페 차량에 대해 무상수리를 진행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자동차 엔지니어는 “현대차 내부 자료를 얻지 못하고 운전자 스스로가 차체 결함을 찾아내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현재로선 부산 싼타페 차량과 현대차 내부 보고서에서 밝힌 차체 결함 간 연관성은 상당히 높아 보인다.

 

2월22일 ‘자동차 결함 피해자 제보 간담회’에 참석한 한씨의 사위 박아무개씨는 “경찰 측에 제조사 개입이 아닌, 감정 가능한 사설기관에 감정하자고 제의했지만, 말도 안 된다는 답변만 받았다”고 주장했다. 박씨에 따르면, 당시 경찰은 오로지 국과수의 감정서만이 법적 효력이 있다는 이야기만 늘어놓았다. 간담회에서 박씨는 “국과수는 브레이크 점등 여부·외관상태·육안검사 등 아주 기초적인 감정만 가능하고, EDR·ECU(Electronic Control Unit·전자제어장치)·TCU(Telecommunication Control Unit·통신제어장치)·엔진내구성 등 전자계통 및 기계구동계통을 연구할 만한 장비나 인력은 없다”면서 “그런데도 추가로 감정·조사하고 싶다고 하자 관련 비용은 물론 방법도 운전자가 알아서 해야 한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주장했다.

 

현재 경찰이 급발진 사고 여부를 파악하는 데 사용하고 있는 것은 EDR 기록이 전부다. EDR은 사고 이전 혹은 사고 상황 중 차량의 동작, 시계열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는 장치다. 하지만 EDR 기록을 빼내기 위해서는 CDR(Crash Data Retrieval)이라는 별도의 장치가 필요하다. 문제는 제품 값이 비싸다는 점이다. 또 결과물만으로 급발진 여부를 파악하기 힘들다는 점도 문제다. 경북 경산에서 발생한 권씨의 사례처럼 EDR에 사고 당시 스로틀밸브가 열려 가속에 의한 속력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더라도 원인을 가속페달 때문으로 볼 수는 없다. 김필수 대림대 교수는 “EDR은 에어백이 터지지 않으면 작동이 되지 않도록 설계돼 있다”고 말했다.

 

ⓒ 시사저널 미술팀

이렇다 보니 EDR 결과는 피해자들을 쉽게 납득시키지 못하고 있다. 권씨는 간담회에서 “사고 발생 후 현대차에 EDR 분석 담당자의 연락처를 알려달라고 하니 내부 기밀사항이라 외부인에게 절대 알려줄 수 없다는 말만 들었다”고 주장했다. 차량 내 전자장치 비율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자동차 급발진 현상은 앞으로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주장이다. 급발진 사고는 대부분 자동 기어변속기가 탑재된 가솔린 차량에서 생겨난다. 디젤엔진 및 수동 기어변속기 탑재 비율이 50%가 넘는 유럽에서는 급발진이 큰 문제가 되지 않고 있다.

 

 

OBD-II 등 관련 기기 장착 의무화해야

 

원인을 알 수 없기에 해법마저 찾을 수 없는 것일까? 현재 현대·기아차는 “우리도 왜 이런 사고가 발생하는지 이유가 궁금하기는 마찬가지”라는 입장이다. 결국 해법은 운전자와 제조사 모두가 수긍할 만한 방법을 찾는 데 있다. 자동차급발진연구회 등 일부 연구단체에서는  EDR 대안으로 OBD(On-board Diagnostics·운행기록 진단장치)-Ⅱ단자의 활용을 제안하고 있다. 이 기기를 장착하면 가속페달 작동량과 엔진 회전수, 차량 속도 등 20여 가지의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일종의 운전자 블랙박스와 같은 용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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