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징·폭행·자살예고’ 도 넘은 不服 움직임
  • 이민우 기자 (mwlee@sisapress.com)
  • 승인 2017.03.10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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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 가득 찬 탄핵 반대 집회…사망자 발생했는데 선동 난무

박근혜 전 대통령의 파면이 결정된 3월10일, 헌법재판소 앞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대통령 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 운동본부(탄기국) 소속 보수단체 회원들이 경찰의 차벽으로 돌진하면서 충돌이 빚어졌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경찰버스 위로 올라갔고, 경찰버스 유리창을 부수는 등 과격 행동을 벌였다. 집회 현장을 담던 취재기자도 참가자들에 의해 폭행당하는 상황이 여러 차례 연출됐다.

 

이 과정에서 사망자가 발생했다. 경찰버스에서 떨어진 장비에 머리를 다친 남성 1명은 서울대학교병원으로 이송됐지만 결국 숨겼다. 지하철 안국역 역사 내에서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된 남성 1명도 결국 사망했다. 부상자도 속출했다. 인근 백병원에도 시위 현장에서 총 10명이 실려 왔다. 8명은 경상, 나머지 2명은 중환자실에 있다. 중환자 둘 다 심장박동은 있지만 의식은 없는 상태라고 병원 측은 밝혔다. 의경 일부도 집회 참가자들이 휘두른 둔기에 맞아 병원으로 이송됐다. 탄기국 측 관계자는 “현재까지 2명이 사망했으나, 다른 부상자들도 생명을 보장하기 어려운 상태”라고 설명했다.

 

이날 대한민국 수도 서울에는 경찰 최고 경계태세인 갑호 비상령이 내려졌다. 대규모 집단사태 등으로 치안 질서가 극도로 혼란할 때 발동되는 조치다. 경찰은 청와대와 총리공관, 헌법재판소 주변을 270개 중대, 2만명이 넘는 경찰력을 투입했다. 집회 참가자들의 과격행동이 잇따르자 캡사이신 등을 뿌리며 진압에 나서기도 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일인 10일 오전 서울 안국동 안국역 5번 출구 앞에서 '대통령 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 운동본부(탄기국)' 소속 보수단체 회원들이 탄핵이 인용되자 헌재를 향하며 경찰과 충돌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주최측 “사람이 죽었다” 과격 행동 선동

 

탄핵 반대 집회 참가자들의 시위가 점차 과격해지고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폭력적으로 변하는 양상이다. 탄핵심판 선고 직후 탄기국 측은 “헌재의 판결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며 “헌재 앞으로 행진해 민심을 보여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집회 참가자들은 ‘헌재 해체’ ‘돌격’ 등 구호를 외치며 경찰이 설치한 차벽으로 행진했지만 경찰 병력에 저지됐다. 단상에서는 “헌재까지 가서 우리의 의지를 확실히 보여줘야 한다”며 경찰과의 대치를 독려하기도 했다.

 

갑작스런 탄기국의 움직임에 일부 참가자들이 차벽을 넘어갔지만, 곧이어 경찰 방패에 가로막혔다. 일부 참가자들은 손에 들고 있는 죽봉과 각목을 경찰에게 휘두르는 등 폭력적인 모습을 보였다. 경찰도 집회 참가자들이 휘두르는 태극기를 빼앗아 압수하는 등 총력 대응했다. 경찰을 향해 폭력을 휘두른 일부 참가자들은 현장에서 체포돼 격리 조치됐다. 한 탄기국 소속 집회 진행요원은 경찰 방패를 뛰어 넘어 진입을 시도했지만 현장에서 체포돼 연행됐다. 다른 쪽에서는 집회 참가자들이 경찰의 차벽을 피해 지하철 출입구 난간에 올라서는 아찔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다른 참가자들의 만류로 물러섰다. 일부 시위대는 인근 건물 외벽을 타고 헌재로 향하다가 경찰에 연행됐다. 한 참가자는 흉기를 목에 대고 자해 소동을 벌이다 경찰에 제압당하기도 했다.

 

참가자들끼리 폭행하는 장면도 연출됐다. 경찰버스 인근에 있던 한 참가자가 다른 참가자들에 의해 ‘좌파’로 지목돼 무대로 끌려와 폭행당했다. 한참이 지난 뒤에야 보수단체 소속 진행요원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일부 참가자들은 카메라 기자가 들고 다니던 사다리와 경찰이 설치한 안전펜스를 기자들을 향해 던졌다. 카메라 렌즈가 부서지고 얼굴에 멍과 피가 난 이들도 있었다. 결국 취재진들은 격앙된 참가자들에 밀려 쫓겨났다.

 

‘계엄령을 내려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무대에 올라선 정광용 탄기국 대변인은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는 계엄령을 선포해야 한다. 국회의원 전원을 체포하고 배신의 무리를 색출해야 한다”면서 “탄기국의 모든 역량을 모아서 거짓 기사를 쓰는 기자나 유언비어를 퍼트리는 네티즌들을 색출하겠다”고 위협하기도 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일인 3월10일 오전 서울 안국동 안국역 5번 출구 앞에서 '대통령 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 운동본부(탄기국)' 소속 보수단체 회원들이 탄핵이 인용되자 기자들을 폭행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지도부 패닉 상태…과격 선동만 난무

 

집회 주최측의 선동도 도를 넘었다. 마이크를 잡고 진행을 하던 이들은 “사람이 죽었는데 이대로 있을 거냐”며 “경찰 차벽을 향해 돌격하라”고 지시했다. 박사모, 탄기국 등으로 구성된 국민저항본부는 “법치주의는 무너졌다. 그러나 우리가 함께 무너져서는 안 된다”며 “애국 국민들께서는 각자 가능한 방법으로 혁명주체가 되어 이 투쟁에 동참해 달라”고 호소했다. 무대에 오른 한 참가자는 집회 참가자들이 연좌시위를 벌이자 항의를 하며 마이크를 집어던지는 모습도 연출했다.

 

집회 참가자 사이에서 ‘가짜뉴스’도 여과 없이 유포됐다. 집회 참가자들은 현장에서 ‘애국 태극기 집회에 참여한 탄핵 반대 시위자 14명이 사망했다’는 내용의 메시지를 회람한 것으로 확인됐다.

 

극단적인 행동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박사모 회원인 가수 이광필씨는 자신의 블로그에 “이광필, 일요일에 조국 위해서 산화한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그는 “각하시켜 대한민국이 혼란에서 안정을 찾기를 간절히 원했지만 졌다. 중국과 결사항전 하고 싶었으나, 못하고 먼저 간다. 약속한 것인데 실행하겠다”며 분신자살을 예고했다. 앞서 이씨는 헌재심판 판결 전날인 3월9일 박사모 공식 카페에 “대통령이 파면됐을 때 국회의사당 본회의장에서 분신하겠다”고 밝힌바 있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경찰은 10여 명을 즉각 이씨 자택으로 보내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이 인용 되자 보수단체 회원들이 헌재방향으로 진입도중 사상자가 발생 했다. ⓒ 시사저널 임준선

3월8일에는 탄기국의 사무총장인 민아무개씨(57)가 헌법재판소 인근에서 집회 도중 의경 2명을 폭행했다. 다음날에는 정미홍 전 KBS 아나운서가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을 통해 “탄핵이 인용되면 목숨을 내놓을 것”이라고 밝혀 논란이 되기도 했다.

 

경찰 관계자는 “어떤 사태가 벌어질지 몰라 긴장도가 매우 높은 상황”이라며 “집회·시위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한다는 방침에는 변함이 없지만, 불법 폭력시위에는 법과 원칙에 따라 일관된 기조로 엄정히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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