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까지 ‘박사모’와만 소통한 박 전 대통령
  • 송창섭 기자 (realsong@sisapress.com)
  • 승인 2017.03.12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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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저녁의 ‘전격 사저 입성’, 박사모 등 지지세력만 사전에 알아···헌재 판결 ‘불복’ 입장 논란 예상

2017년 3월12일 오후 7시39분. 박근혜 전 대통령이 쓸쓸하게 서울 삼성동 사저(私邸)로 돌아갔다. 시작은 화려했지만 끝은 미약했다고 할까. 대통령직 수행을 위해 삼성동 사저를 떠난 지 1476일만의 복귀다. 청와대에서 제공한 경호 차량에서 내린 박 전 대통령은 약 6분 간 지지자들과 사저 앞에 대기한 전직 청와대 비서실장, 친박 의원들과 인사를 나눈 뒤, 사저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이후 민경욱 자유한국당 의원을 통해 박 전 대통령은 “제게 주어졌던 대통령으로서의 소명을 끝까지 마무리하지 못해 죄송스럽게 생각한다”며 “이 모든 결과에 대해서는 제가 안고 가겠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고 믿고 있다”라고 밝혀, 헌재 판결에 사실상 불복할 뜻임을 내비쳤다. 특히 시간이 걸리더라도 진실을 밝히는데 노력하겠다고 해, 대통령직 파면 이후 진행될 검찰 조사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날 삼성동 사저 주변은 긴박하게 돌아갔다. 오전까지만 해도 청와대는 “(박 전 대통령께서) 특별한 말씀이 없어 복귀 시점을 예단하기 힘들다”는 입장이었다.

 

ⓒ 시사저널 임준선


삼성동 사저 현장, 오후 3시부터 “대통령님 오신다”

 

사저 복귀는 이날 오후 4시를 넘기면서 청와대 밖으로 알려졌다. 삼성동 사저 주변에는 ‘근조’(謹弔)라고 쓰인 검은 리본을 단 박사모(박근혜 대통령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대사모(대통령님을 사랑하는 모임), 탄기국(탄핵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운동본부) 회원 700~800명이 모여 “탄핵 무효” “헌법재판소·국회 해산” 등의 구호를 외쳤다. 일부 회원들은 ‘멸공의 횃불’ 등 군가와 애국가 등을 부르면서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켰다. 이날 경찰은 1000여명의 경찰력을 동원해 만일에 생길 불상사를 대비했다. 

 

박 전 대통령 지지자들은 손에 태극기를 들고 헌재의 탄핵 결정이 원천적으로 무효라며 강력하게 반발했다. 서울 사당동에서 왔다는 한 시민은 “헌재가 고영태를 조사하지 않고 대통령을 파면할 수 있느냐”면서 “사태를 이렇게 만든 이정미(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 재판관과 박영수 특검을 당장 구속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동안 청와대는 헌재 판결 이후 박 전 대통령이 관저에 머문 것에 대해 “4년 간 제대로 사저를 손보지 않아 당장 옮길 수 없다”는 논리를 폈다. 박 전 대통령 사저는 1983년 완공된 지하 1층, 지상 2층 건물로 오른편으로는 롯데캐슬 킹덤, 왼편으로는 고급빌라가 위치해 있다. 뒤편으로는 삼릉초등학교, 전면부에는 4층짜리 건물이 자리 잡고 있다. 이 때문에 경호를 책임져야 할 경호실에서는 경호 공간 마련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박 전 대통령은 이곳에서 1990년부터 청와대로 가기 전까지 23년을 머물렀다.

 

헌재 선고 직후 청와대는 삼성동 사저에 대한 개보수 작업에 들어갔으며, 오후 4시10분 실내 인테리어 업체 차량으로 추정되는 승용차가 물품을 싣고 떠났다. 이후 4시27분 침대·화장대 등 박 전 대통령 물건을 실은 청와대 차량이 사저에 도착해 20여분간 이사가 진행됐다.

 

그렇다면 박 전 대통령은 왜 이날 사저로 돌아오기로 결정한 것일까? 당초 청와대 주변에서는 박 전 대통령이 3월13일 월요일에 청와대를 떠나는 일정이 유력했다. 하지만 탄핵이 결정된 이후 전직 대통령 신분이 된 박 전 대통령이 청와대 공관에 계속 머무는 것에 대해 논란이 불거졌으며, 사저 개보수 작업이 예상보다 빨리 진행되면서 전격 결정된 것으로 전해졌다. 일각에서는 국민들의 시선을 의식, 휴일 저녁을 택한 게 아니냐는 의견도 제기하고 있다.

 

정작 사저 주변에서는 이날 오후 3시부터 일부 박 전 대통령 지지자들 중심으로 “오늘 중 대통령님께서 사저로 돌아온다”는 이야기가 나돌았다. 오후 3시를 지나면서 서울 봉은사로부터 사저 앞 선릉로112길 사이 경찰의 철제펜스가 설치되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주옥순 엄마부대 대표는 시사저널 기자와 만나 “높은 분으로부터 오늘 대통령이 돌아오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당시만 해도 언론에는 당일 삼성동 사저 복귀가 전혀 보도되지 않았다. 주 대표는 일부 박 전 대통령 지지자들에게 “오늘 대통령께서 돌아오시니 질서를 지켜달라”고 말했다. 또 5시12분경 정광용 박사모 회장이 소형 스피커를 들고 지지자들을 찾아가 “오늘 대통령님께서 사저로 돌아오신다고 들었다. 뜻 깊은 날이다. 불상사가 나지 않도록 다들 노력하자. 사저로 돌아오시는 날이니 대통령님께서 편히 쉬시도록 질서를 지켜 달라”고 말했다. 이후 5시39분에 허태열·이병기·이원종 전 청와대 비서실장, 44분에는 조원진 의원, 50분에는 김진태 의원, 55분에는 박대출 의원 등이 사저를 찾았다. 이후 사복경찰 100여명이 사저 주위에 투입되면서 삼성동 복귀가 임박했음을 알렸다.

 

ⓒ 시사저널 임준선


박 전 대통령 지지자들, 언론에 깊은 불신 나타내

 

이날 박근혜 전 대통령 지지자들은 언론에 대해 상당한 적개심과 불신을 나타냈다. 사저 앞 우신빌딩 옥상에 설치된 YTN과 SBS 방송 카메라를 향해 “왜 사저 안을 마음대로 찍느냐. 경찰은 당장 빨갱이 언론을 건물에서 끌고 나와야 한다”고 반발했다. 또 다른 지지자는 “손석희(JTBC 보도부문 사장)와 홍석현(중앙일보 회장)을 구속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작 삼성동의 주변 주민들은 극도의 불안감을 표시했다. 삼성2동 현대교회 앞에서 만난 한 주민은 “탄핵이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지지자들이 당분간 사저 주변에 머물면서 동네가 시끄러울 수밖에 없지 않겠나”라며 “탄핵지지 세력과 충돌하는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한편 박 전 대통령은 6시 55분 청와대 관저를 떠나 경찰 경호 속에 서울역-삼각지-반포대교를 지나 7시39분경 사저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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